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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흠의 눈] 권혁에게 보내는 조언

기사입력 2015.07.07 07:00 / 기사수정 2015.07.06 19:01

이은경 기자



올 시즌 프로야구 전반기 최고의 핫 플레이어를 꼽자면 아무래도 권혁(한화)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권혁 이야기를 할 때 ‘혹사 논란’ 같은 단어를 빼고 말할 순 없지만, 한화의 드라마틱한 역전승들이 가능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믿을맨 권혁이 있어서였다.
 
권혁은 원래 삼성에서도 아주 위력적인 불펜 투수였다. 권혁은 왼손 투수로 구속이 145km 정도까지 나오는데, 왼손 투수의 구속은 오른손 투수보다 5km 정도 더 나오는 것으로 계산해야 한다. 그만큼 타자들이 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권혁은 구속이 빠른데다 큰 키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오버스로 투구폼이라 타자로선 권혁의 볼 각도가 정말 치기 힘든 각도다.
 
권혁은 7월 6일 기준으로 46경기에 나와서 68⅓이닝을 던졌다. 많이 던진 건 맞다. 다만 무조건 ‘혹사’라며 비난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화라는 팀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권혁이 선수층이 두텁고 성적은 1위를 지키는 팀에서 이렇게 던졌다면 그 팀 벤치는 비난받을 만하다. 그러나 한화는 몇 시즌간 꼴찌를 했던 팀이다. 당장 포스트시즌에 가는 게 중요한 팀이다. 이기기 위해선 권혁을 호출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화는 선발 투수들이 위력적이지 않다. 지난 주중 경기에서 한화 김성근 감독이 7점 차로 앞서는데도 권혁을 비롯한 필승조를 투입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은 “그럼 누굴 쓰느냐”고 항변했는데, 한화 현실에선 맞는 이야기다. 만일 한화에 오승환 같은 마무리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1~2점만 앞서고 있어도 마무리를 믿으면 되니까. 그러나 한화는 일단 경기 중반까지 5~6점을 리드하고 불펜 필승조를 투입해야 승리를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한화 선발진을 무조건 약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좀 오랜 기간 믿어볼 필요도 있다. 야구 시즌은 마라톤과 같아서 매 경기를 단거리 경기처럼 전력질주해서 치르긴 어렵다. 아무리 한화의 팀 상황이 절박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권혁처럼 좋은 불펜 투수들이 있으면, 선발도 그 영향을 받아서 좋아지게 마련이다. 선발 입장에선 내가 6~7회까지 버텨줘야 한다고 계산을 하는지, 아니면 5회까지만 잘 버티면 이후에 불펜을 믿을 수 있다고 계산을 하는지에 따라 경기력이 확 달라진다. 그래서 불펜 좋은 팀은 선발도 좋아지게 돼 있다.

게다가 불펜진에 믿음이 실리면 타선도 탄력을 받는다. 한화의 올 시즌 경기를 보면, 한화가 끌려가는 경기라고 하더라도 불펜에서 권혁이 버텨주면서 타선이 점수를 쫓아가고, 기어이 끝내기까지 쳐내면서 역전승을 거두는 패턴이 잦았다. 올 시즌 ‘마리한화’ 야구는 권혁이 가져온 시너지도 분명 영향을 끼쳤다. 그럼 면에서 한화 벤치가 선발진이 흔들릴 때도 조금만 더 믿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원래 선발 투수의 위기가 가장 많이 찾아오는 때가 1회, 그리고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는 5회, 그리고 경기를 마무리하는 9회다. 타순도 절묘하게 이 때 1~4번 타순이 걸린다. 한화 경기를 보면 바로 이런 시기마다 기존 투수를 믿지 못하고 교체할 때가 자주 있다.
 
또 한 가지 권혁의 피로도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불펜 투수의 피로도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불펜 투수는 불펜에서 대기하는 동안 몸을 풀면서 공을 던진다. 이때 투구수 역시 경기 투구수 외에 추가 투구수로 카운트해야 한다. 여기에 투수 교체 후 마운드에 올라가면 연습 투구를 4~5개 정도 기본적으로 한다. 이 역시 추가 투구수로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따지면 경기에서 15개 정도 공을 던진 불펜 투수라고 해도 실제로는 30개 이상 던진 셈이 되는 것이다. 비록 몸을 풀면서 던지는 공이 전력투구가 아니라고 해도 피로도가 가중되는 건 사실이다.

또 불펜투수는 경기 중반까지 내내 ‘내가 언제 나가나’ 신경을 쓰면서 대기를 한다. 그 자체로 피로도가 상당하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서는 불펜 투수들이 실제 공을 던지는 것과 상관 없이 3연속 대기를 하면 그 다음날 하루는 무조건 대기조에서도 뺀 채 휴식을 주곤 한다. 이런 피로도까지 계산하면 올해 권혁의 피로도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혁은 세밀하고 컨트롤이 좋은 스타일은 아니다. 힘으로 던지는 스타일이고, 배짱이 두둑하다기보다 여린 면이 있다. 올 시즌 권혁을 두 번 이상 만난 상대팀 타자들이 최근에는 점차 권혁의 공에 방망이를 대고 있다. 이렇게 커트가 늘어나면 투구수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렇게 쌓이는 피로도를 관리하는 게 권혁에겐 가장 중요하다.
 
권혁은 과거 삼성에선 저평가된 측면이 있었다. 올해 한화에서 자신이 얼마나 위력적인 투수인지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한화가 극적인 경기를 자주 하면서 짜릿한 끝내기, 뒤집기 경기가 많이 나왔다. 권혁은 올해 선수로서 자신의 성적과 페이스, 팀 성적과 화제성을 모두 잡았다. 요즘 권혁을 보면 엔도르핀이 돌아서 피로도를 잊은 듯한 느낌이 든다. 한창 흥이 올라서 신나게 던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지난 주말 경기를 보니 권혁 목 부위에 부항 자국이 보였다. 더위가 시작되면서 권혁 뿐아니라 모든 투수들의 볼끝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구단 트레이너와 코치 등 전문가가 물론 도와주겠지만, 피로도를 관리하는 건 결국 선수 자신의 몫이다. 지금의 성적에 취해있지 말고, 보강 운동을 정말 많이 해야 한다는 조언을 투수 출신 선배로서 해 주고 싶다. ‘선발 투수 만큼 보강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혹사 논란’ 같은 이야기는 떨쳐내고, 내년에도 흥이 나서 공을 던지는 권혁의 모습을 보고 싶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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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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