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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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그의 발끝이 대표팀을 구했다.

기사입력 2005.06.04 10:35 / 기사수정 2005.06.04 10:35

손병하 기자


박주영이 무너지던 한국 축구를 일으켜 세웠다

▲ 박주영 선수
ⓒ2005 대한축구협회

3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위치한 팍타코르 경기장에서 열렸던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의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4차전에서, 박주영의 천금과 같은 동점골에 힘입어 1-1 힘겨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주어진 90분이 끝나 갈 무렵. 아크 정면에서 나왔던 김두현의 슈팅이 골키퍼를 스쳐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정경호에게로 흘렀고, 정경호는 중앙에 있던 박주영에게 패스했다. 이를 박주영이 공을 침착하고 정확하게 골문 안으로 차 넣으면서 기적 같은 무승부를 일구어냈다. 이날 경기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던 측면 돌파가 정경호의 발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기회에서 침착했던 박주영의 킬러 본능이 돋보인 한 판이었다.

비록 1-1로 비기면서 승점 1점을 획득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과 선수들의 정신 자세, 그리고 본프레레 대표팀 감독의 작전력 등은 모두 낙제점인 경기였다.


대표팀 모든 것에 실패한 경기.

경기 전부터 우려했던 부분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무더운 기온에 따른 경기력 저하, ‘떡 잔디’로 불리며 최악으로 평가되었던 그라운드 컨디션, 그리고 심판 판정 등과 관련한 원정 경기의 불리함. 모두가 우즈벡을 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이라고 얘기했던 부분들을 결국 우리 대표팀은 하나도 풀지 못했다.

올 들어 최고를 기록한(31도) 기온에 제대로 적응치 못해 움직임의 둔화를 가져 왔고, 이는 선수들이 눈에 보이는 쉽고 편한 플레이를 선택하도록 이끌었다. 전방 공격수들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공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없었고, 미드필더들은 측면 돌파에 의한 득점 기회를 잡아야 하는 정석을 외면 한 채, 가까운 선수에게 ‘패스-패스’ 하면서 더위에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선수들의 안일한 경기 운영은 이 날 경기에서 기록했던 코너킥의 수를 통해 단적으로 증명된다. 이날 대표팀은 단 한 개의 코너킥을 얻는데 그쳤다. 심판의 편파 판정에 의한 프리킥 등과 관련한 사항들은 제쳐 두더라도, 상대 문전에서 얼마나 활발하고 위력적인 공격을 펼쳤는가를 평가하는 잣대 중 하나인 코너킥의 수가 적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 골 엔드라인 쪽까지 공격을 펼치는 적극성을 띄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 전-후반 동안 우리 대표팀의 공격인 중앙으로 40% 이상이 계속 집중될 만큼, 공격 전술의 변화나 공격수들의 창의적인 움직임은 나오지 않았다. 효과적인 공격력을 보였던 것은 전반 40분 박주영-안정환-차두리로 이어지는 패스에 의한 기회를 만든 장면과, 후반 11분 차두리의 리턴 패스를 받은 박주영의 골(오프-사이드로 무효 선언)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나마 이런 장면들도 전술적인 움직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선수들 개개인의 역량에 의해 나온 단발성 플레이에 불과했다.
 

결국 정신력에서 준비가 부족했다.

물론 이 모든 경기력 저하의 주원인은 더위였다. 하지만 그 더위를 이기기 위한 정신 무장이나, 선수들의 적극적이고 성실하지 못한 플레이는 곧 이어질 쿠웨이트 전뿐 아니라, 앞으로의 대표팀을 위해서도 꼭 고쳐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에 비해 잔디 길이가 길고 그라운드가 군데군데 망가지는 등, 엉망이었던 그라운드 컨디션에 적응하지 못하며 경기 초반 패스 미스와 드리블에서 실수를 연발했던 대표팀. 어쩔 수 없는 현지 상황에 의한 실수는 최소 경기 초반으로 끝나야 했다는 점에서 대표 선수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 중 하나인 적응력이 아쉬웠다.

후반 18분 우즈벡의 샤츠키흐에게 내준 선취 골 역시 그 시발점은 박주영의 부정확한 긴 패스가 이영표의 머리를 넘겨 사이드 아웃이 되면서였고, 박동혁의 결정적인 실점 상황도 그라운드의 상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떡 잔디’의 문제를 출국 전부터 알고 그에 대비한 훈련까지 했었다면 최소한 후반전에는 같은 실수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었다는 점에 있다.

박주영과 이영표, 박지성 등 비교적 이날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도 경기 초반, 익숙하지 않은 경기장 분위기와 그라운드 컨디션으로 인해 패스 미스 등을 남발하며 경기를 힘들게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들은 곧 그라운드의 상황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훌륭히 적응해 나가 여타 선수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모습들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하나 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본프레레 감독, 당신의 능력은 어디에

마지막으로 본프레레 감독의 경기 운영과 작전력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는 경기였다. 본프레레 감독은 이미 경기 전부터 이번 경기에서 일어날 일련의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구성하고 그에 대한 훈련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이 예상했던 사태들에 대해 제대로 적응하며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하고 있으면, 감독이 나서서 적극적인 지시와 작전 변화, 혹은 선수 교체 등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대표팀의 공격진이 부진하고 의미 없는 플레이를 반복하고 있었다면, 안정환, 차두리 등의 교체시기를 앞당겨 새로운 선수들로 인한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어야 했고, 파괴적인 포지션 이동 등으로 변화를 꾀했어야 했다. 거의 전무 했던 측면 돌파를 살리기 위해서는 측면 돌파에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정경호를 빨리 교체했어야 했고, 박주영 등의 득점력을 활용하기 위해서 포지션 이동도 적극적으로 고려했어야 했다.

또, 전반 후반 이후, 체력 저하로 인해 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유상철을 과감히 교체해 체력, 특히 무더위와 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파악이 더 빨랐어야 했다. 후반 44분 유상철과 김두현을 교체한 것은 결과론 적으로 김두현이 박주영의 결승 골의 시발점이 되는 슈팅을 날리긴 했지만, 훨씬 더 빨리 교체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뒤지고 있는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후반 45분이 다 되어서야 교체를 한 것은 의미를 찾기 힘들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대표팀을 절망케 했던 위기의 나락에서 결국 ‘대표팀 새내기’ 박주영이 A-매치 데뷔 골을 터트리면서 기사회생한 대표팀. 물론 승점 7점을 기록한 대표팀에게 아직 절망보다는 희망이 더 많이 남아 있다.

본프레레의 지도력도, 선수들의 개인 능력에 의한 의문점도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쉽게 쉽게’ 라는 대표팀 선수로서는 가져서는 안 될 정신적 해이는 두 번 다시 그라운드에서 찾아볼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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