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정규시간이 끝나고 추가시간 막바지. 포항의 골이 터졌다. 기적같은 역전우승. 2011-12시즌 프리미어 리그 맨체스터 시티와 QPR의 시즌 마지막 경기도 이와 비슷했다.
단 한 경기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선두는 44년 만의 우승을 노리는 맨체스터 시티. 2위는 지역의 오랜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두 팀은 공히 27승 5무 5패로 승점이 같았다. 다만 시티가 골득실차에서 90득점 27실점(+63)으로 88득점 33실점(+55)의 유나이티드를 미세하게 앞서고 있었을 뿐이다.
운명의 날 2012년 5월 13일. 맨유는 선덜랜드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반 19분 웨인 루니의 헤딩골이 터지며 1-0으로 승리했다. 같은 시간에 벌어진 시티와 QPR의 경기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시티의 홈구장인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일방통행. 점유율 81%-19%, 코너킥 수 19-0, 전체 경기의 94%가 QPR 진영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 객관적 통계다.
하지만 전반 39분 파블로 사발레타의 선제골로 맨시티의 1-0 리드. 후반 3분 단 한 번의 수비 실수로 동점골 허용. 이 슛이 QPR의 첫 유효슈팅이었다. 후반 21분 QPR의 제이미 맥키가 팀의 두 번째 유효슈팅을 골로 연결하며 스코어는 1-2. 90분은 이미 다 흘러갔고 주어진 추가시간은 5분. 그 시간에 한 골을 넣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봐야 우승컵을 들기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90+1'분에 제코가 동점골을 터뜨렸고 시티의 선수들은 별다른 세리머니 없이 공으로 달려들었다. 단 1초라도 더 경기를 하기 위해 얼른 공을 가져다 센터서클에 갖다 놓으려는 처절한 몸짓. 종료 직전 아구에로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침착하고 정확한 슈팅으로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터뜨린 건 글자 그대로 기적이었다. 골에 대한 묘사는 이 정도만 하기로 하자. 지금도 유튜브에는 이 날의 ‘기적’을 기록한 여러 버전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음으로.
유럽에선 수많은 팀이 수많은 경기를 벌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 경기만큼 극적으로 승부가 뒤집히며 우승팀이 바뀐 경우는 없다. 1993-94시즌 준우승팀 블랙번 로버스가 80년 만에 우승배를 들어 올리던 1994-95 시즌(이 때의 주포가 알란 시어러와 크리스 서튼이다)도 마지막 경기에서 승자가 갈렸는데, 블랙번은 지고 맨유는 비기면서 블랙번의 우승이 확정되었다. 당시 프리미어 리그 우승컵을 실은 헬리콥터가 두 도시의 중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2012년에 이 헬리콥터는 맨체스터와 선덜랜드 중간 지점에서 역시 우승팀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었다.
논어에 나온다.
曾子 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증자 왈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해석: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일의 끝을 신중히 하고 먼 것을 추구하면 백성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 (1/9)
일의 처음을 삼가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는 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다 잡았던 우승컵을 눈 앞에서 단 10초 차이로 놓쳐버린 울산 선수단의 심정은 오죽 쓰라리랴. 포항에게 축하를. 울산에게 박수를. 내년 시즌 울산의 쾌속진군이 이어지기를. 금년시즌 마지막 경기, 1부리그 잔류냐 강등이냐를 놓고 벌이는 강원 대 상주의 외나무다리 혈투도 멋지게 마무리되기를.
막판 극적인 골 이야기를 하자니 또 하나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2005년 6월 15일 네덜란드 엠멘에서 벌어진 U-20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 0-1로 끌려가던 대한민국이 후반 추가시간에 두 골을 몰아치며 2-1로 역전한 경기. 종료휘슬이 울리고 현실을 믿을 수 없어서, 너무나 황당해서, 억울한 마음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다양한 표정을 짓던 녹색 경기복 나이지리아 선수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 경기의 득점자 박주영 백지훈은 지금 어디에? 두 선수 모두 ‘신종추원’의 정신으로 한 번 더 대표팀으로 돌아와 주기를.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포항-울산전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