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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가타부타] '개콘'의 와일드카드 '버티고', 슬랩스틱 진수 보이며 잘 버티다!

기사입력 2013.04.01 17:43 / 기사수정 2013.04.30 19:10

김승현 기자


▲ 개그콘서트 버티고

[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단어의 의미에 충실한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가 등장했다. 슬랩은 철썩 때리는 것, 스틱은 단장(짧은 지팡이) 또는 몽둥이를 뜻한다. 스틱은 손바닥이 대신하고 연이은 따귀 세례는 시청자들의 배꼽을 빼놓고 있다. 바로 '개그콘서트' 코너 '버티고' 이야기다.

'버티고'는 본래 통편집 당하며 사장될뻔한 코너였다. 하지만 지난 2월 11일 방송된 설 특집 '당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개그콘서트'에서 공개됐고 극적으로 부활했다. 패자부활전을 통해 합류한 '버티고'는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코너로 급부상했다.

버티고의 상승세는 수치에 반영됐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0일 방송분은 전국기준 21.8%를, 24일 방송분은 22.1%를 기록하며 코너 시청률 1위를 기록, 와일드카드의 저력을 과시하며 잘 버티고 있다.

버티고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장 감독인 개그맨 권재관이 촬영장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대기하는 김장군, 김지호, 류정남에게 "남자 주인공에게 사정이 생겼다"며 "이는 차차 알아가게 될 것"이라며 불길한 기운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대체 배역 김장군, 김지호, 류정남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 배우 허안나와 촬영에 돌입한다.



대본에는 뺨을 맞는 장면이 포함돼 있고 먼저 투입된 김장군은 허안나에 따귀를 맞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김장군은 촬영장에서 도망치고 남은 김지호와 류정남은 일동 침묵한다. 따귀 세례도 재밌지만 웃음의 백미는 이 장면이다. 많은 시청자는 김지호와 류정남이 앞으로 벌어질 더 무시무시한 상황을 예측하고 벌벌 떠는 모습에서 박장대소한다. 외면하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이들에 더 강도 높은 따귀 세례가 이어진다. 이에 '걸음아 날 살려라'하며 줄행랑치고 미련없이 배우의 꿈을 포기한다.

연이은 '짝' 소리에 촬영장의 살벌한 분위기를 파악한 김준호가 구원 투수로 나선다. 터프한 목소리로 남자답게 등장하지만 결국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KBS 14기 공채 개그맨인 김준호가 24기인 허안나에게 맞는 장면은 말 그대로 '하극상 개그'다. 허안나는 앞의 세 배역보다 손바닥에 온 힘을 집중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무대 위에서 암묵적 동의가 주는 기회를 부여받은 허안나는 만족해하고 이를 본 김준호는 주춤한다. '씁쓸한 인생' 코너에서 큰 형님 역할을 맡은 김준호는 버티고에서 그 이상의 씁쓸함을 감당해낸다. 이것은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가 되며 개그콘서트의 '개국 공신'이 무대 위에서 웃음을 주는 살신성인의 자세는 그 자체로 돋보인다.



버티고는 지난 2007년 방송됐던 코너인 '불청객들'을 연상케 한다. '불청객들' 또한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배우들에게 횡포를 놓는 훼방꾼인 김병만과 정종철이 등장해 큰 인기를 얻었다. 배우들의 진지한 대사 뒤에 이어지는 이들의 방해 공작은 배우의 힘을 빼놓고 동시에 관객의 얼도 빼놓는다. 아울러 김병만과 정종철의 우스꽝스러운 복장은 코너 시작부터 몰입하게 하는 요인이다.


두 코너는 배경은 비슷하지만 예고된 뺨 세례와 예기치 못한 방해 공작의 차이에서 웃음 포인트는 다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톡 쏘는 발언이 나오는 '불청객들'과 달리 시청자들은 '버티고'를 보며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면서 웃는다. 그러한 상황 설정만으로 '버티고'가 형성한 웃음 코드는 확립됐다.

'버티고'는 따귀 세례가 웃음에 방점을 찍기 때문에 분명 가학적이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슬랩스틱 코미디를 철저히 표방하며 풍자와 독설, 생활 개그가 대세인 유머 코드에 또 다른 영역을 확보하며 과거 코미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버티고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에게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한 개 더 준다'는 속담은 먼 달나라 얘기나 다름없다.

한 방송을 통해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은 한 코너를 위해 일주일 내내 회의와 연습을 반복한다고 알려졌다. 버티고에 할당된 몇 분의 분량을 위해 보이지 않는 무대 뒤에서 수없이 뺨을 맞을 이들에게 우리는 '귀한 자식 떡 한 개 더 준다'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사진 = 개그콘서트 버티고 ⓒ KBS 방송화면]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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