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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틸] 팀을 위해 자신을 불태운 사나이

기사입력 2007.12.04 23:37 / 기사수정 2007.12.04 23:37

박현철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현철 기자] 지난 11월 30일 일본야구기구(NPB)에 공시된 자유계약 방출 선수 명단에는 노장 투수들의 이름이 즐비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FA 메이저리그 이적 선수가 되었던 요시이 마사토(42. 전 지바 롯데 마린스)나 한때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도 활약했던 '싱커의 제왕' 다카츠 신고(39), 보스턴 레드삭스로 건너가기도 했던 셋업맨 데니 도모리(40. 전 주니치 드래곤스) 등이 소속팀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18년간 한 팀에서, 그것도 보직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불사른 이 투수만큼 애틋한 작별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마운드의 기둥이었던 사사오카 신지(40. 사진)입니다.

진정한 다목적 투수

사사오카는 하마다고-실업 야구 NTT츄고쿠를 거쳐 1989년 드래프트 1순위로 히로시마의 빨간 모자를 '착모'했습니다. 그리고 프로 첫 해인 1990년 44경기에 등판 13승(2 완봉승) 11패 17세이브 평균 자책점 3.15를 기록했습니다.

비록 당시 센트럴리그 신인왕 자리는 최우수 구원투수에 뽑힌 요다 쓰요시(당시 주니치)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날카로운 슬라이더는 첫 해부터 빛을 발했고 2년 차이던 1991년, 엄청나게 날아올랐습니다.

1991년 사사오카는 17승 9패 평균 자책점 2.44의 놀라운 활약으로 다승, 평균 자책점 부문 타이틀을 석권했습니다. 히로시마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선수 본인은 시즌 MVP, 사와무라상, 베스트 9까지 거머쥐었죠.

1996/97 시즌에는 전문 마무리로 나서 2년간 44세이브를 올렸습니다. 언뜻 보면 적은 수치입니다. 그러나 노무라 겐지로(은퇴)-마에다 도모노리-오가타 코이치(이상 히로시마) 등 '일본판 빅 레드 머신'으로 대표된 활화산 같은 타선과는 달리 투수진이 빈약했음을 감안하면 그의 가치는 44세이브 이상이었습니다. 올 시즌 KIA 타이거즈의 마무리를 맡았던 한기주(20)를 떠올리면 되겠네요.

기록에도 보이다시피 그는 시즌 중에도 보직을 현란하게(?) 바꾸었습니다. 열악한 재정으로 FA 거물을 잔류시킬 수도, 사사오카에게 엄청난 연봉을 줄 수도 없던 가난한 팀이었지만 그는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며 진정한 프로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번 더 우승하고 싶었다

사사오카는 지난 2006년 5월 4일 야쿠르트 전에서 선발승을 따냈습니다. 이 승리는 사사오카의 선발 100승째이기도 했지요. '선발 100승-100세이브'는 '철완' 에나츠 유타카 이후 일본 프로야구 사상 2번째의 기록으로 매스컴을 달구었습니다.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워 히로시마 마운드를 진두지휘했던 사사오카. 그는 보직을 가리지 않고 등판해 통산 기록에서 많은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의 별명인 '소리없이 강한 남자'는 전방위적인 활약의 어두운 면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히로시마를 위해 불타올랐던 사사오카는 지난 9월 24일 히로시마 구단 사무실에서 은퇴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는 "7월 29일 요미우리 전에서 '이젠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파울이나 헛스윙을 유도하던 공이 이제는 안타로 이어지더라."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선수 생활 중 리그 우승을 경험한 것은 좋은 추억이었다. 이 기쁨을 한 번 더 누리고 싶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린 사사오카는 "올 시즌 후반기 1군 복귀를 위해 힘썼지만 팀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라며 자신의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팀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던 사나이 사사오카. 선수생활의 끝에서는 팀에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며 아쉽게 선수생활을 마쳤습니다. 지난 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재계약을 체결한 일본 현역 최고령 투수인 좌완 쿠도 기미야스(44)와 비교했을 때 '쿠도처럼 선발로 주로 나섰다면 은퇴가 더 늦춰지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남는군요.


사사오카를 보면서 또 한 명의 스타가 떠오르더군요. MBC 청룡-LG 트윈스를 거치면서 잠실 마운드를 지켰던 김용수(47. LG 2군 투수코치)의 현역 시절 또한 사사오카에 비교할 만했습니다. 김용수 코치의 현역 시절 활약 또한 전문 마무리, 전문 선발로 부르기엔 거리가 있던, 전방위적 활약이었습니다.
 
투수 분업화가 활성화된, 그리고 FA 제도로 인해 선수들의 이동이 빈번해진 현대 야구에서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다목적 투수'들을 다시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투수의 건강을 고려해서라도 다시 나와서는 안 되겠지요.

그만큼 사사오카, 김용수의 전방위적 활약은 다시 되새겨보고 높이 평가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8년 동안 정든 히로시마 시민 구장을 떠나게 된 사사오카.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못했던 소속팀에 백의종군한 그의 야구 인생은 화려한 보석은 못 되어도 세파를 헤쳐 온 할머니의 손가락에 끼워진 옥가락지 같은 귀중한 그 무엇. 그와 같을 것입니다.

<사진=히로시마 도요 카프>



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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