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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캐치 콜] 김연아 스텔라의 선물, 복된 세례명 그대로

기사입력 2013.03.22 14:24 / 기사수정 2013.03.22 19:37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신명철 칼럼니스트] #1 1992년 8월 8일 낮 12시(현지 시간) 몬주익 언덕에 있는 그라놀러 스포츠 팰리스. 한국과 노르웨이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려 퍼졌다. 디펜딩 챔피언 한국은 초반부터 잘 짜인 팀워크로 노르웨이를 밀어붙여 전반전 16-8, 최종 스코어 28-21로 구기 종목 첫 올림픽 2연속 우승 기록을 세웠다.

잠시 뒤 기자회견장. 종목의 특성 때문에 유럽 나라 기자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두 대회 연속 한국에 밀려 은메달에 그친 노르웨이의 기자가 정형균 감독에게 물었다. “경기가 끝난 뒤 (한국) 선수들이 코트 한가운데 모여 이상한 행동을 하던데 그게 뭐냐."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이었다.

실제로 한국 선수들은 2연속 우승이 확정된 뒤 경기장 가운데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감사 기도를 올렸다. 통역 없이 영어로 기자회견을 하던 정 감독은 “(경기에 이겨) 기뻐서 하는 일종의 세리머니”라고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간단한 답변이었는데 그 기자는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뒤 박종우가 펼친 ‘독도 세리머니’는 오랜 시간 스포츠 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에서 어떤 정치적, 상업적, 종교적 선동 행위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때보다 20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비슷한 일을 겪을 수도 있었지만 정 감독의 재치로 무사히(?) 넘어갔다.

#2 프로 야구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가 부산 원정 숙소 방 안에서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경기가 있는 날 오전 원정팀 숙소를 찾아가 감독 코치 선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하던 글쓴이가 방문이 반쯤 열려 있는 이만수의 방 앞을 지나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이었다. 이만수는 엎드린 채 공책에 빼곡히 성경을 옮겨 적고 있었다.

며칠 뒤 대구 구장에서 만난 이만수는 새로 구입한 배트의 포장지를 뜯더니 손잡이 끝부분에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삼성이 전기와 후기 리그 1위를 휩쓸어 한국시리즈를 아예 없애 버린 1985년 페넌트레이스가 한창일 때 있은 일들이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이만수가 데뷔한 지 3번째 되는 시즌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만수는 선수 시절 생활 속에서 믿음을 실천했고 신앙을 바탕으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며 16시즌 동안 삼성, 한 팀에서만 활약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2011년 8월 18일 김성근 전 감독의 경질과 함께 SK 와이번스 감독 대행이 됐다. 40대 후반에 프로 감독이 된 또래나 후배들보다 꽤 늦은 나이에 대행이긴 하지만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 같은 대규모 국제종합경기대회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국제 대회는 대회 기간 앞뒤로 주말이 끼게 마련이다.

1987년 11월 서독 에센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는 남녀부가 통합돼 열린 첫 대회였다. 서울 올림픽을 10개월여 앞두고 열린 대회여서 한국은 남녀부 모든 체급에 선수를 내보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재엽이 60kg급 금메달,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형주가 95kg급 동메달, 이쾌화가 78kg급 동메달을 차지했다. 뒷날 한국 여자 유도의 간판 스타가 되는 서울체육중학교 3학년 조민선(1993년·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1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이상 66kg급)이 여자 선수로는 유일하게 48kg급에서 16강이 겨루는 3회전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도 개막을 앞두고 일요일이 끼어 있었다. 토요일까지 강도 높은 현지 적응 훈련을 하던 대표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요일 아침, 부지런히 어디론가 움직였다. 각자의 종교에 따라 교회와 성당으로 간 것이다. 당연히 그날 훈련은 없었다.


어떤 종교이든 기도의 힘으로 메달을 따거나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훈련과 대회 출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운동선수들에게 종교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또 경기를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는 데도 도움이 되는 듯하다.

가톨릭이 널리 퍼져 있는 중남미 출신 축구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설 때 성호경(聖號經)을 긋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고 올드 팬들은 1970~80년대 프로 복싱 전성기에 국내에서 타이틀매치를 벌인 멕시코, 파나마 등 중남미 선수들이 라운드마다 성호경을 긋고 경기에 나서던 장면을 기억할 터이다.

20일 열렬한 환영 속에 귀국한 피겨스케이팅 세계 챔피언 김연아는 2008년 5월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스텔라다. 중계 화면에 자주 보이지는 않지만 김연아는 링크에 들어설 때마다 성호경을 긋는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세례를 받은 이후 김연아는 2009년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대회 1위,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2013년 런던(캐나다) 세계선수권대회 1위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4년 3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다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김연아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소치 동계 올림픽과 같이 한국은 이 대회에서도 3장의 출전권을 확보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앞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점수를 따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긴 하지만 김연아가 후배들에게 준 또 하나의 큰 선물이다.

김연아 스텔라는 은퇴한 뒤에도 피겨스케이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스포츠 전체에 이런저런 선물을 많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복된 세례명 그대로.



신명철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김연아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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