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9.03 23:09 / 기사수정 2007.09.03 23:09
[中]한국축협의 문제있는 감독선임
한국축협의 감독선임은 문제가 있다.
29일, 북방망은 한국축협의 감독선임에는 문제가 있다는 장문의 기사를 전했다. 다음은 기사의 요약내용이다.
2002년 히딩크가 떠난 이후 한국축구는 이상기류에 빠져들었다. 5년간 4명의 외국인감독을 선임했었지만 성적은 올라가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퇴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축구 특유의 날카로운 전술은 보이지 않았고, 한국팬들은 한국팀이 갈수록 낯설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축협의 감독선임의 기준도 왔다갔다한다. 매번 감독선임과 사퇴의 '아름다운 오해'의 배후에서, 몇 십년 동안 중국팀을 눌러왔던 태극호랑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이처럼 중국 앞에서 명확하게 내 보인 것은 처음이다.
히딩크 이후, 한국축협은 다음과 같은 감독선임 원칙을 정했었다. 반드시 명성이 있는 세계적인 감독이어 하고, 팀을 엄격히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세계축구 발전의 추세에서 어느 정도 예견성을 지녀야 하고, 일 처리에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축협의 기준은 중국축협의 기준과 다소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은 코엘류를, 중국은 아리에한을 선임했다. 하지만 코웰류는 금방 사퇴했고, 그를 추천했던 기술위원들도 단체로 사임했던 일은 한국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그 후 한국인들은 한국축구에는 강경한 인물이 필요함을 발견했다. 히딩크처럼 정을 봐주지 않는 강경파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한국선수들은 욕하지 않으면 재목으로 자라지 않는다. 이에 한국은 본프레레를 선임했다.
본프레레는 감독취임 이후 하루에 3번의 훈련을 할 정도로 모질었지만 선수들은 많은 부상을 당했고 전술도 혼란해졌다. 2004년 아시안컵에서는 겨우 8강에서 탈락했다. 그 이후의 아드보카트 역시 한국축구의 질적인 비약을 이루지 못했다.
독일월드컵 이후 한국축협은 일본축협을 참고하여, 명성이나 간판 등의 전통적인 관념에서부터 벗어나 한국축구와 문화에 매우 익숙한 사람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바로 그 베어백이 개성강한 한국선수들을 잘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 한국축협은 특별히 한국축구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맏형' 홍명보를 코치로 선임했다. 한국인들의 홍명보에 대한 명성은 심지어 베어백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는 경험이 부족하기에 단지 코치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둘의 조합은 장점을 취해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갈짓자행보를 보였다.
베어백은 한국 프로연맹과도 마찰이 끊이지 않았고 축협은 그 둘 사이에서 원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베어백은 아시안컵 3위를 차지한 후 사임했다. 왜냐하면,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던 베어백이 보기에 지금의 한국축협은 이미 당시의 열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축구는 행동보다 꿈이 더 크다. 이는 누가 가져온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월드컵)4강은 단지 우연한 현상이었다. 한국인들이 빨리 꿈에서 깨어난다면 그래도 아직은 올바른 길로 접어들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최근 몇 년간 한국축협이 걸어온 굽은 길이다. 한국이 아름다운 현실에 이상적이면서도 희망을 실어보낼 때,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그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게 했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하나의 구멍을 막을 때면 또 다른 균열이 생겨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인들의 대표팀감독 선임 문제의 어려움은 절대로 중국보다 적지 않다. (이상 북방망 기사)
http://sports.enorth.com.cn/system/2007/08/29/001847333.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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