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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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터 백구대제전] 국가대표 센터 故 김병선이 그리운 이유

기사입력 2012.07.02 11:16 / 기사수정 2012.07.20 03:14

김현희 기자


[엑스포츠뉴스=김현희 기자] 배구에서 '센터'는 '세터' 못지 않게 중요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포지션이다. 세터가 좋은 토스를 바탕으로 공격수들에게 '치기 좋은' 위치로 공을 올려 주는 역할을 하는 반면, 센터는 속공을 비롯한 블로킹이라는 무기로 상대의 사기를 꺾은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센터 위치에 있는 선수들은 라이트나 레프트에서 스파이크를 꽃는 선수들처럼 폭발적인 공격력을 과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팀의 위기 상황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속공 기술은 경기 중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국내 프로배구에도 고희진(삼성화재)을 비롯한 좋은 센터 자원들이 많다. 현대자동차의 이선규(31), 윤봉우(30) 등이 그러하며 삼성화재에서 활약했던 신선호(34)도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에 앞서 어린 나이에 배구 코트를 호령했던 센터가 있었다. 성균관대 1학년 시절부터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한 김병선(작고)이다.

타고났던 국가대표 센터, 김병선에 대한 추억

성지공고 졸업 이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김병선은 장신(2m)을 이용한 고공 플레이로 1학년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학 입학 직후 바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1991년 배구 월드컵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김병선은 주전 선수들이 부상을 고전할 때 분전했다. 특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독일과의 경기에서 3-2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당시 활약을 바탕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고군분투한 그는 이후 열린 국제대회마다 '단골 멤버'로 출전했다. 또한 1993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조국에 우승기를 안기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시절은 역시 성균관대 시절이었다. 대통령배 대회 3위를 차지했던 1993년에는 대회 베스트 6에 선정됐다.

명문 팀인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캐피탈)에 입단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김병선의 눈부신 플레이를 더 이상 볼수 없게 됐다. 김병서은 1995년 2월 22일, 숙소에서 물을 마시다 갑자기 쓰러졌다. 그리고 병원 후송 도중 사망하는 불상사를 맞이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둘. 대학 졸업을 불과 3일밖에 남겨 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망 소식을 접한 성균관대 배구부는 그의 장례식이 있었던 24일, 김상우, 신진식, 권순찬의 활약을 앞세워 고려증권에 3-1로 승리하며 그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향후 10년 이상 한국 배구계를 책임질 국가대표 센터를 하루아침에 잃었다는 사실이었다.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센터의 존재는 좋은 성적의 필요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은 런던 올림픽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 현재 남자 배구팀의 모습과 오묘한 대조를 이뤄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진=성균관대 OB 멤버들 © XTM TV 제공]

김현희 기자 SPORT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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