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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V ②] 신진식, "반쪽 선수 극복해야 한국배구 산다"

기사입력 2012.06.07 16:55 / 기사수정 2012.07.20 03:16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모든 종목을 막론하고 가장 돋보이는 플레이어는 모든 요소를 고르게 잘하는 선수다. 야구의 데릭 지터, 이종범, 축구의 지네딘 지단, 농구의 마이클 조던, 그리고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등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불렸다.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존재감은 배구에서도 돋보인다.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은 '숙적'인 일본을 제압하고 8년 만에 런던올림픽 출전을 결정지었다. 올림픽에 가고자하는 선수들의 의지와 노장들의 투혼이 돋보였다. 그리고 김연경(24, 터키 페네르바체)이라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 전성기를 보낸 남자배구도 올라운드 플레이어들이 버티고 있었다. 특히 신진식(37, 홍익대 감독)과 박희상(40, 드림식스 감독)은 '배구 도사'로 불리며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국남자배구가 지금보다 한 단계 도약하려면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존재가 절실하다. 이번 기획을 통해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계보가 끊긴 이유와 공수에서 뛰어났던 선수들을 조명해봤다.

[매거진V ①]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계보, 끊긴 이유는?

[매거진V ②] 배구 도사에게 들어보는 전천후 선수의 중요성

[매거진V ③] 미래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꿈꾸는 기대주는?

한국남자배구가 국제대회에서 마지막 빛을 발휘했던 대회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이었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3-1로 승리한 한국은 이란과 카타르 그리고 중국을 연파하며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마지막 포인트를 올린 이는 신진식(37, 홍익대 감독)이었다. 김세진(38, KBSN 배구해설위원)과 함께 한국배구의 전성기를 이끈 그는 박희상(40, 드림식스 감독)과 함께 공수를 모두 겸비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평가받고 있다.

신장은 187cm의 단신이었지만 몸놀림이 빨랐고 공격 기교가 뛰어났다. 국제경기에 나서면 장신의 블로킹 숲을 뚫으며 호쾌한 스파이크를 날렸다.


그러나 신진식의 평가가 높은 이유는 따로 있다. 뛰어난 공격력과 함께 탄탄한 기본기도 갖췄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신진식 감독은 최근 배구 현실에 대해 뼈대 있는 비판을 가했다.

지난 5일 한국남자배구대표팀은 '숙적'인 일본에 2-3으로 패하며 런던올림픽 진출이 사실상 좌절됐다. 그 다음날 "레프트 선수가 반쪽 선수가 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한 신진식 감독을 만나봤다.

배구 도사에게 들어보는 전천후 선수의 중요성

-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학을 다녀오신 뒤 지금 홍익대 감독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최근 성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1년 정도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준우승만 4번 했어요.(웃음) 이 점이 많이 아쉽죠.

- 감독님은 성균관대 시절부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 배구의 인기가 지금보다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때는 대학배구의 인기가 정말 좋았죠. 제가 뛰던 성균관대와 경기대 그리고 한양대와 인하대가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또한 대학선수들이 대표팀에 많이 발탁됐어요. 1996년 애틀랜타 예선전을 준비할 때에도 대학 선수들이 많았지요.

- 올림픽에 몇 번 출전하셨나요? 그리고 일본과 맞붙은 애틀랜타 올림픽예선전은 한국 배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는데요.

정말 그 경기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애틀랜타 올림픽 예선전에는 우리와 일본 중국 그리고 대만 등 총 4개 팀이 출전했어요. 한국에서 풀리그로 3경기를 치르고 일본으로 넘어갔죠. 하지만 국내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일본에 완패를 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3연승을 거둬도 올림픽 진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죠.

왜냐하면 일본과 똑같이 5승1패를 해도 세트득실에서 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열린 예선전에서 중국이 일본을 잡았어요. 저희에게는 정말 기회가 온 거죠. 마지막 일본과의 경기에서 우리가 승리하면서 애틀랜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신진식 감독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둔 상태였다. 한국과의 경기를 앞둔 일본 선수들은 선수단이 묵고 있던 호텔에서 한일전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선수들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느 일본 선수가 "중국은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말에 강한 자극을 받은 중국 선수들은 통역관을 통해 "우리가 일본을 반드시 잡을 테니 당신들이 올림픽에 가라"라고 한국 팀에 전했다. 그리고 중국은 일본을 3-0으로 완파했다.

- 당시 신 감독님과 박희상 감독님이 함께 레프트로 뛰었습니다. 공수를 모두 갖춘 분들이라 당시 수비가 매우 강했을 것 같은데요.

서브리시브를 가지고 고전한 적은 없었죠. 그 때는 리베로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박희상 감독님과 제가 수비를 도맡아서 했어요. 그리고 리베로 제도가 생긴 이후에는 이호(전 현대캐피탈) 선수가 가세했죠.

박희상 감독과 저 그리고 이호 선수가 대표팀의 후위를 지키고 있을 때는 구멍이 없었습니다. 간혹 특정 선수가 수비가 안 되면 서로 도와주면서 후방을 지켰죠.

기본기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현재 지도하고 계신 대학 선수들의 기본기는 어떤가요?

- 한 마디로 최악입니다.(허탈하게 웃음) 프로 팀도 마찬가지로 서브리시브가 안 되고 있어요. 리시브와 2단 연결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말이죠.

훈련을 할 때 어느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다들 공격하는 것은 재미있어하죠. 하지만 상대의 서브를 잘 받아서 세터가 원 블로킹을 만드는 기본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수비로 걷어낸 볼을 2단으로 잘 연결해 포인트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죠. 이러한 기본기는 정말 중요한데 말이죠.

- 5일 열렸던 일본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 2단 연결이 약했습니다. 한국대표팀이 국제대회가 나가면 늘 이 부분이 가장 아쉽게 느껴지던데요.

좋은 2단 연결은 곧바로 점수로 연결 되요. 훈련을 할 때는 2단 연결을 해야하는 상황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전 경기에서는 상황이 달라져요. 2단 연결을 제대로 올려줘야 하는 상황이 자주 나타나죠. 2단 연결이 약하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토스를 제대로 안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버 토스가 아닌 언더로 볼을 올리니 점수로 연결하기가 어렵죠.

- 기본기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렸을 때 감각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몸에 배어있는 감각을 성인이 돼서 바꾸려고 하면 매우 힘듭니다. 어렸을 때 자신의 몸에 스며든 버릇은 좀처럼 고치기 어렵죠.

서브리시브와 수비에 대한 감각은 어느 지도자도 가르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감각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죠. 어릴 때부터 기본기를 착실히 익혀야하는 점이 이래서 중요한 겁니다.

- 기본기와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신데요. 최근 공격만 잘하는 반쪽 선수들이 많은 점이 한국배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저는 훈련 시간의 반 이상은 수비연습을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기본기를 빼놓고 무엇으로 배구를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리시브가 안 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힘과 높이가 뛰어난 팀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를 뚫을 수 있는 빠른 플레이와 다양한 세트플레이를 하려면 기본적인 것들이 잘 따라줘야 합니다. 자기가 하기 편하고 쉬운 것만 한다면 절대 상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 신 감독님 같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 부분도 매우 아쉽게 여겨지는데요.

저는 프로팀에서 뛰려면 반드시 서브리시브와 수비를 해야 한다고 봐요. 리베로 제도가 생기면서 반쪽 선수들이 나왔다고 하는데 레프트는 반드시 수비를 해야합니다.

센터가 서브를 때리면 리베로가 대신 코트에 들어오고 센터는 벤치로 들어옵니다. 센터는 수비 부담이 없어졌기 때문에 반쪽 선수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레프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리베로와 함께 후위에서 나머지 두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대부분의 레프트 선수들이 수비가 안 되다보니 구멍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후위에서 리시브와 공격을 받는 3명 중 한 자리가 약하기만 해도 전체가 불안해집니다. 레프트는 센터와는 달리 코트에 들어가면 서브리시브와 수비 그리고 전위에서는 블로킹도 해줘야합니다.

요즘에는 라이트 공격수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레프트 선수들은 볼을 많이 치지 않아요. 그러면 당연히 수비와 서브리시브에 신경을 써야겠지요. 그런데 레프트가 공격만 하는 반쪽 선수라면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레프트는 절대 반쪽 선수가 되면 안 되는 이유죠.



어느 대회에서건 몸을 사리지 않아야 진정한 프로


- 신 감독님은 지능적인 플레이에도 능숙하셨습니다. 코트에 들어서면 두뇌싸움에서도 밀리지 말아야 될 것 같은데요.

코트에서 나가면 상대방과 두뇌싸움을 할 필요가 있어요. 내 앞에 있는 블로커 혹은 공격수의 싸움이죠. 경기장에 들어가면 정말 생각할 것들이 많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이죠.(웃음) 매 상황마다 판단을 잘하고 다음 순간을 대비해 빨리 잊는 것도 필요하죠. 경기 자체에 몰입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자주 만나는 상대에게 계속 속으면 안 되죠. 생각하는 배구가 없으면 같은 패턴에 계속 속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 이제 공격에 대한 부분도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감독님은 신장은 작으셨지만 빠른 스피드로 국제무대를 누비셨는데요. 공격에 대한 노하우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볼을 때릴 때는 ‘올라타는 느낌’이 중요합니다. 볼을 때리고 난 뒤에 내려오는 것이 중요하죠. 그러나 요즘 때리는 것을 보면 밀어 때리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리고 볼만 보고 공격을 하면 효과를 볼 수 없어요. ‘볼은 그저 올라가는 것일 뿐’이고 내 위치와 상대 블로킹 그리고 상대 수비의 위치도 모두 판단을 해야 합니다.

- 감독님이 국가대표에서 마지막으로 뛴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이 한국배구의 마지막 영광이 됐습니다. 그 후 한국남자배구는 국제무대에서 고전하고 있는데요. 전성기를 보낸 입장에서 한국배구의 발전을 위한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적어도 자기 자신이 프로라는 의식이 있다면 어느 무대에서건 간에 열심히 해야 합니다. 국내 대회는 물론 국제대회도 마찬가지요. 그러나 지금 현실을 보면 이 점이 아쉽게 느껴져요. 국내리그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고 싶다면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여야겠지요. 그러면 뭔가를 보여줘야 되지 않습니까? 부상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리거나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프로가 아닙니다.

그리고 배구를 하겠다는 유소년들이 없는 점도 걱정거리에요. 대학팀은 2부 리그까지 합쳐서 12개 팀이고 프로 팀은 6개 팀 밖에 없는데 배구를 하겠다는 이는 드물겠죠. 정말 한국배구가 발전하려면 선수가 나와야 합니다.

뛰어난 인재가 나오려면 저변이 넓어져야 하겠죠. 유소년들을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것은 물론 배구의 저변도 지금보다 넓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진식 감독은 올림픽에 지속적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배구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끈 신 감독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남겼다.

[사진 = 신진식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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