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10.31 21:53 / 기사수정 2007.10.31 21:53
K-1 HERO'S 2007, 그 조각들을 찾아
[엑스포츠뉴스=남기엽 기자] 한국에서 열린 마지막 해외 격투기 이벤트는 지난 일요일(25일)로 막을 내렸다. 살아있는 레젼드와 무서운 신예가 한데 어우러져 축제의 막을 올렸던 K-1 WGP 개막전에 이어 한국선수들의 대거 출전, 슈퍼 코리언의 맞대결로 화제를 모았던 K-1 HERO'S 까지 국내 격투팬들에게는 충분히 즐거웠던 한 달간이 되었으리라.
경기 분석에 집중하는 것도 아주 좋은 '메모라이즈' 기법이지만 이번만큼은 그와 다르게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느꼈던 하나하나의 단상(斷想)들을 이어가는데 주력하겠다. 그편이 이번 히어로즈 이벤트에는 더욱 어울릴 테니.
이번 K-1 HERO'S KOREA 2007는 대진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한국을 위한, 한국 시장성에 의해 만들어진 대회였다. 오프닝 매치 포함 도합 12개의 매치중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면) 한국인 파이터가 무려 10명이 출전했으며 몇몇 매치업은 시장성이 큰 한국인 파이터를 위한 튠업 매치 정도로 생각되기까지 했다. 그럼 지금부터 경기를 지켜보며 느낀 하나하나 생각의 파편을 조각해본다.
무한한 가능성과 명백한 한계 - 마르셀로 가르시아 그리고 김대원
마르셀로 가르시아는 25살의 젊은 나이에 메이져 그래플링 대회인 아부다비와 문디알을 모두 제패한 '쥬짓수의 전설'로 불린다. 현존 쥬짓떼로 중 가장 강력한 선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아부다비 출전선수들조차 각 체급의 우승자를 예상하긴 힘들다면서도 이 선수만큼은 무조건 우승할 것이라고 말할 만큼 절대적이기도 하다.
이런 선수가 MMA 무대에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 격투기 팬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김대원과 맞붙은 마르셀로는 초반부터 적극적인 태클을 시도했고 김대원은 도망쳐 빠져나오기 바빴다. 본디 그래플링 파이터이긴 하나, 마르셀로를 상대로 그라운드로 간다는 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가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김대원은 철저하게 타격으로 경기를 풀어가려 했다. 하지만, 마르셀로의 지극히 정석적인 태클로 김대원은 무너졌고 그후 1라운드내내 마르셀로에게 마운트, 백마운트 포지션을 내주며 고전했다.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마르셀로는 종합격투기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알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어 펼쳐진 2라운드에서 김대원은 전략을 바꾼 듯, 초반부터 펀치로 거세게 몰아붙였고 마르셀로는 그가 태클을 걸 때와는 반대로 자신이 도망치기 바빴으며 결국 니킥을 안면에 내어주며 과다출혈로 인한 닥터스톱으로 패했다. 그라운드에서는 여전히 극강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타격에 '약한 것'이 아니라 타격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 그가 풀어야 할 숙제는 너무도 명백했다. 일단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같은 쥬짓떼로인 베흐둠의 타격 센스도, 곤자가의 넘치는 파워도 아니다. 타격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종합격투기는 스탠딩과 그라운드 양 쪽에서 싸우는 것이 맞지만 기본은 '스탠딩'이다. 라운드가 시작될 때 경기는 스탠딩에서 출발되며 그라운드 교착상태가 지속될 경우에도 스탠딩으로 전환된다. 스탠딩 상태에서 교착 상태가 지속되도 역시 스탠딩에서 시작한다. 때문에 곤자가처럼 적을 쓰러뜨릴 타격이나 노게이라처럼 포인트를 쌓을 타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기본적으로 단발 공방전 정도는 주고받을 수준이 되어야 한다. 이런 능력 없이는 MMA 정상급의 반열로 결코 올라설 수 없다.
MMA는 거의 모든 기술과 양손 발이 다 사용되는 만큼 사용 기술을 압축하기 힘들지만 크게 3가지로 나누면 상대를 공격하는 타격과 넘어뜨리는 레슬링 그리고 쵸크, 관절기를 구사하는 쥬짓수로 나누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다. 초창기 MMA시절은 이 셋 중 어느 하나가 극강이면 챔피언 등극이 가능했다. 쥬짓수의 대가 호이스 그레이시가 그랬고, 강한 레슬링 기술을 바탕으로 G&P(그라운드 앤 파운딩)을 구사한 마크 콜먼이 그랬으며 전설의 킥복서 모리스 스미스가 그랬다.
그러나 현재의 MMA는 다르다. 극단적으로 프라이드 시절의 크로캅처럼 막강한 타격에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 그라운드 기술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의 태클 디펜스를 가지면 정상급까지 행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예외의 케이스이며 그라운드 움직임이 약한 크로캅의 한계가 드러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마르셀로 역시 그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상대를 넘어뜨릴 수 있는 태클기술을 가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타격에의 적응'은 가히 필수적이다.
물론 김대원 역시 매우 잘했다. 유도가이면서도 밸런스와 힘이 남다르고 타격이 센 그였기에 '쥬짓수 전설의 사냥'은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또 마르셀로에게 온갖 포지션을 내주면서도 피니쉬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그의 기량을 훌륭히 반증해주는 사례이며 승리를 위한 동력이었다. (이 글은 마르셀로의 데뷔전과 그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글임을 양해 바란다)
근대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하나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재능도 경험도 아닌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자신감이다'라고 역설했다. 마르셀로는 그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타격을 보강하고, 무엇보다 상대를 엎어버려야겠다는 '파이터 근성'이 절실하다. 인터뷰에서 연습과정 중 타격을 맞으면 아프냐는 질문에 '맞지 않는 연습을 했다'고 말한 그의 태도만 변한다면 그는 분명 MMA계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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