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리듬체조는 갖가지 아름다운 동작으로 운동능력과 예술을 동시에 표현한다.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한 가지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땀과 눈물을 필요로 한다.
이 종목이 최근 변방에서 중심부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손연재(17, 세종고)가 세계선수권대회 11위에 오르며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해 리듬체조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음지에 묻혀있었던 한국 리듬체조의 '치부(恥部)'가 드러났다. 한동안 한국 리듬체조의 간판으로 활약한 신수지(20, 세종대)가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신수지는 10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더러운 놈들아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 이렇게 더럽게 굴어서 리듬체조가 발전을 못하는 거다"라고 써놓았다. 이 부분에서 신수지는 자신이 욕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날 경기도 김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92회 전국체육대회' 리듬체조 일반부 경기에서 받은 판정에 대한 불만이 암시돼 있었다.
이날 경기에서 신수지는 세 개 종목(후프, 볼, 리본)이 끝날 때까지 2위 김윤희(20, 세종대)에 0.420점을 앞서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종목인 곤봉이 끝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리듬체조는 연기를 마친 선수와 코치, 그리고 관중들에게 점수를 공개한다. 경기를 마친 선수는 전광판에 표시된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고 퇴장한다. 심판들의 채점으로 승부로 가려지는 리듬체조의 특성을 생각할 때, 이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한 순간의 연기를 위해 수많은 땀을 흘린 선수의 평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우선 심판들의 수작업으로 작성된 기록지와 전광판에서 나타난 점수가 달랐다. 이러한 실수로 인해 선수가 받는 상처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한체조협회 측은 "경기도 협회에서 나온 사람이 심판진을 거친 최종 점수를 전광판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왔다"고 밝혔다. 김윤희의 후프 점수가 전광판에는 25.130점으로 나타났지만 실제 기록지의 점수는 25.425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윤희의 마지막 종목인 곤봉 점수는 전광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최종 순위는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다음에 공개됐다. 이러한 운영 미숙은 결국, 신수지와 김윤희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가장 큰 문제는 리듬체조의 채점 방식이 심판들이 직접 기록지에 쓰는 '수작업'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월드컵시리즈를 비롯한 규모가 있는 국제대회에서는 채점이 디지털로 처리된다. 하지만, 국내대회에서는 수작업으로 채점하는 국가들이 종종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는 수작업으로 처리된다. 12명의 심판들이 일일이 기록한 기록지는 심판들의 사인을 거쳐 기록실의 검토를 거친 뒤, 기술위원장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업 방식이 수동적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는 이번 대회에서 터져버렸고 아물기 어려운 상처로 번졌다.
대한체조협회의 관계자는 "전광판 문제가 발생한 점은 문제가 있었지만 절대로 심판 점수의 오류는 없었다. 리듬체조에서 점수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1,2위에 오른 김윤희와 신수지의 점수는 먼저 나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점수가 늦게 나온 원인은 3위부터 5위에 오른 선수들의 점수 확인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반부에서 신수지와 김윤희 외에 나머지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는 크다. 이들의 점수를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 수작업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협회 측의 입장이다.
그동안 국내 리듬체조 대회는 선수들과 지도자, 그리고 협회와 학부모들만 모이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러나 신수지와 손연재라는 걸출한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대중들의 관심도는 부쩍 늘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경기 운영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수작업 채점 방식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선수 보호는 물론, 신속하고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채점을 증명하려면 디지털 채점 채택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 리듬체조는 신수지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12위에 오르며 비로소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연재가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면서 그 붐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 리듬체조는 변방을 벗어나 주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점수의 공정성은 물론, 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진 = 신수지, 김윤희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