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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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언무실(妄言無實)' 숀 헤어(Shawn Hare)

기사입력 2005.02.14 08:32 / 기사수정 2005.02.14 08:32

김종수 기자

[연재] 외국산 호랑이 포효사(咆哮史)1

숀헤어에서 리오스, 존슨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98시즌 프로야구는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불황과 98프랑스월드컵 그리고 '야구천재' 이종범의 일본행이라는 굵직한 3대 악재 속에서 불안하게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 잘못하면 역대 최악의 시즌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나마 팬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요소가 있었기에 많은 면에서 상쇄가 된 부분도 있었다.

상쇄의 가장 큰 공신은 역시 최초로 실시된 '용병제'였다.

기존의 프로야구에 식상했던 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줌과 동시에 팀간 전력불균형, 선수수급 문제 등을 해결해주기 위해 실시했던 '용병제'는 실시 첫해였던 만큼 수준급 용병과 화려한 플레이는 적었지만 프로야구사에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나친 외화낭비를 염려한 KBO측에서 용병들의 연봉 상한선을 12만달러로 제한하는 바람에 메이저리그급 특급선수들을 영입하지는 못했으나 수비와 공격 등 국내선수와는 차별화 된 플레이를 보여주는 알짜선수들도 속속 눈에 띄었다.

그 외… 선발투수 예고제라는 새로운 프로그램도 호평(好評)을 받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타이거즈 암흑기의 시작 98년◇

'망언무실(妄言無實)' 숀 헤어(Shawn Hare)


■ 제1회 용병 트라이아웃

95년 말부터 긴 논의를 거친 끝에 드디어 실시하게된 용병트라이아웃은 97년 11월 플로리다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물론 알짜선수도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래도 처음 실시하게 되었던 만큼 이른바 '거품형'선수도 상당히 많았고, 국내선수보다도 못한 기량을 보이는 선수 역시 태반이었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꽉 짜여진 연봉상한선과 자유계약제가 아닌 트라이아웃제도, 그리고 홍보부족, 참여선수들이 느끼는 리그의 인지도 등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한발 앞서 간 프로농구의 경우를 살펴보면, 각 구단과 팬들이 외국선수에게 가장 요구하고 의존했던 것은 강력한 골밑플레이와 탄력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공중쇼였다.

아무래도 외국선수라는 인식상 비슷한 스타일의 경기력보다는 국내선수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뭔가 다른 플레이를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했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마이너급 용병들이기는 했지만 정교한 타자보다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장타(長打)를 펑펑 날려대는 용병, 145km이상의 강속구를 뿌릴 수 있는 용병, 그리고 전 세계 어느 리그를 막론하고 귀한 대접을 받고있는 왼손투수가 주 타켓이었다.

좌완투수 같은 경우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귀했나보다.
당시 트라이아웃 현장에는 스캇 베이커(Scott Baker·삼성지명), 윌리엄 저비 등 2∼3명을 제외하고는 마땅한 좌완투수 재목이 없었고, 그나마 지명을 하더라도 계약을 확신할 수 없는 선수들이 많아 각 구단들은 시시각각 현장에서 계획을 수정해가며 여러 선수들과 접촉을 벌였다.

거포같은 경우에는 용병의 특성상, 일단 겉으로 보이는 재목감은 투수보다 상대적으로 풍부해 보였다.
LA 다저스 출신의 마이크 부시를 비롯 타이 게이니 같은 선수들은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트라이아웃 내내 각 구단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캔자스시티 출신의 에드가 캐세레스(Edgar Caceres)같은 경우는 당초 이름 값은 높지 않았지만 트라이아웃 내내 5할대의 타격과 깔끔한 수비를 선보이며 뒤늦게 눈길을 잡아끌기도 했다.

■ 한국형 용병은 따로 있었다

프로농구의 조니 맥도웰, 재키 존스, 아티머스 맥클레리 등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굳이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있다고, 그 성적이 국내에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국리그에서는 펄펄 날던 선수가 부상, 적응실패 등을 이유로 평범 이하의 성적을 남기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가 의외로 엄청난 '대박'을 터트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농구에 비해 좀더 섬세하다고 말할 수 있는 프로야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는 선수가 바로 '흑곰' 타이론 우즈(Tyrone Woods)와 '하얀 독수리' 마이크 부시(Mike Busch)이다.
메이저리그 경력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마이크 부시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으로 중도퇴출 된 반면 서류상으로는 그다지 매력이 없어 보였던 우즈는 뜻밖의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향후 한국최고용병사의 한획을 그어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박찬호 경기때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출전해 만루포는 물론 멋진 수비까지 선보이며 국내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대형 1루수 마이크 부시는 명성을 바탕으로 시즌 초부터 홈런왕후보로 거론되며 그를 지명한 한화관계자들을 잔뜩 흥분시켰다.

그러나 76경기를 뛰면서 240타수, 2할1푼3리, 10홈런, 28타점, 20득점, 16볼넷, 81삼진의 저조한 기록으로 퇴출 되는 비운을 맞게된다. 첫해의 대표적인 '거품용병'이라 할 수 있겠다.

오히려 2라운드에 지명되었던 내야수 조엘 치멜리스(Joel Chimelis)가 118경기 409타수 2할7푼9리, 17홈런, 63타점, 29볼넷, 58삼진으로 나은 활약을 펼쳤다.

OB(현 두산)가 2라운드에 지명한 '흑곰' 우즈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난 용병이 되어 버렸다.
OB는 원래 좌완투수 스캇 베이커와 유격수 에드가 캐세레스를 점찍고 차선책으로는 외야수 후니오르 펠릭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헌데 2라운드에서 삼성이 베이커, LG가 펠릭스를 차례로 지명하면서 혼선이 오기 시작했고 할 수 없이 에드가 캐세레스를 1라운드에 선발하고 플로리다 출신의 흑인 우익수 우즈를 지명하기에 이른다.

보스턴 산하 마이너팀에서 타율 0.352를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이었으나 우익수로는 치명적인 어깨부상과 마이너리거로는 많은 나이 등으로 인해 한국을 통해 빅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으로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던 우즈, 그러나 트라이아웃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각 구단에서는 빅리그 경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악수를 두고 만다.

엄청난 괴력을 앞세워 홈런왕과 MVP를 거머진 우즈는 이후 2002년까지 대표적인 '거포용병'으로 군림하다 일본으로 진출했고, 그곳에서마저 홈런왕을 차지했다.

■ '망언무실(妄言無實)' 숀 헤어(Shawn Hare)

이전까지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했던 '천하무적' 타이거즈 왕조에 드디어 균열이 오기 시작했던 해이다.
30승 투수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있다는 평가를 받던 '야구천재' 이종범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설상가상으로 후반기 무렵에는 '차세대 에이스'로 꼽히던 김상진이 위암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그라운드를 떠나게된다.

하위권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있음에도 이종범이라는 엄청난 선수하나 때문에 리그 톱 수준의 공격력을 유지하던 타이거즈는 공수의 밸런스가 무너져 내리며 84년 이후 처음으로 5할대 승률에도 못 미치는 61승 64패 1무의 저조한 성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더욱 큰 비극은 시즌이 끝난 후 벌어지고 말았으니, 다름 아닌 '언터처블 마무리' 임창용을 삼성의 양준혁, 곽채진, 황두성과 트레이드하고 만 것이다.

돈 없는 구단의 서러움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비극중의 비극이었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상자 3명중 한명인 양준혁은 절대로 해태만큼은 가지 안겠다며 다른 팀으로의 트레이드를 주장하고 나선다. 상대 중에 양준혁이 끼어있었다는 부분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막상 터지고 나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쌍방울 지명 당시의 군입대회피가 생각나는 대목으로 해태팬들은 임창용이라는 자랑스러운 호랑이를 잃고 더불어 안 받아도 되는 커다란 상처까지 연 이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호랑이유니폼을 입기게 된 숀 헤어(Shawn Hare).
가뜩이나 전력에서 앞서는 타팀들이 용병을 2명씩 뽑아갈 때 지명을 하고도 선수를 놓치는 등 트라이아웃에서조차 설움을 당했던 해태에도 드디어 용병이 생긴 것이다.

첫 해 광주구장을 보며 "펜스를 넘기면 홈런이냐? 관중석 뒤까지 넘어가야 홈런이냐?"는 오만한 발언으로 팬들을 황당하게 했던 그.

솔직히 실력만 있다면야 어느 정도는 건방져도 팬들은 그것마저도 매력으로 봐줄 수 있을 것이다. 롯데의 호세나 한화의 데이비스처럼 말이다. 삼성의 갈베스까지 가면 조금 난처하겠지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입만큼 실력이 따라주지 못했다.
29경기에 출전해 68타수 2할6리, 14안타, 0홈런, 3타점, 3득점, 4볼넷, 25삼진.

그가 남긴 기록 중에서 두자리 숫자를 기록한 것은 안타와 삼진(?)뿐이었으며 마구 때려줄 것 같았던 홈런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계속)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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