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상규 기자] '로만 제국' 첼시에 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첼시는 지난 9월 29일 풀럼과의 홈경기에서 득점없이 비겨 리그 7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자 첼시 팬들은 조세 무리뉴 전 감독을 내쫓은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를 비롯한 첼시 수뇌부를 조롱하는 야유를 부렸다. 물론 무리뉴 전 감독을 넘어서겠다던 아브람 그랜트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까지 형성됐다. 그러나 첼시의 위기는 단기간에 수습될 문제가 아니어서 자칫 몰락할 가능성까지 엿보이게 했다.
첼시 감독직, 독이 든 성배(?)
첼시의 본격적인 위기는 감독 교체 '역효과'로 시작됐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감독의 권한을 줄여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겠다는 첼시 수뇌부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아브라모비치는 잘나가던 무리뉴 전 감독의 팀 내 입지가 올라가자 잦은 간섭을 일삼아 그의 사퇴까지 종용했다. 심지어 그는 무리뉴 전 감독을 대신해 선수들에게 전술을 지도하고 질책까지 하여 감독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로 물의를 빚었다는 현지언론의 보도가 나오고 있는 실정.
이러한 일들은 잉글랜드 현지 언론에서 끊임없이 보도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첼시의 실체를 인지하게 됐다. 한때 첼시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유력했던 거스 히딩크 러시아 대표팀 감독 조차 "구단 압력에 조종받는 것이 싫다. 첼시에 가기 싫다"며 첼시행을 외면했다. 더구나 히딩크 감독은 아브라모비치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여서 눈길을 끌게 했다. 아무리 구단주와 친한 감독이라도 구단의 잦은 입김을 좋아하지 않는것은 불보듯 뻔하다.
문제는 그랜트 감독이 UEFA 프로 라이센스 미취득자라는 점이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지난 9월 말 그랜트 감독이 90일 안으로 라이센스를 취득하라고 권고했지만 실제로는 1년 과정의 취득 과정이 필요하다. 잉글랜드 주간지 뉴스 오브 더 월드는 1일 기사에서 "그랜트 감독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물러난다"고 보도해 자격증 없는 그랜트 감독이 곧 물러날 것임을 예고했다.
다행히 유럽축구연맹(UEFA)이 유드리를 발휘해 그랜트 감독에게 시간을 주었지만 그랜트 감독이 첼시 감독직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아 보인다. 첼시가 그랜트 감독을 내치고 새로운 감독을 데려와도 영입 작업은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 이미 히딩크 감독은 첼시 감독직을 고사했고 다른 유명 감독 또한 히딩크 감독과 같은 입장을 표시할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결과적으로 첼시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
단기간의 성공이 불러 일으킨 폐해
첼시는 2003년 러시아 석유 재벌 아브라모비치가 4억 파운드에 구단을 인수하면서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강팀으로 떠올랐다. 특히 무리뉴 전 감독 재임 시절에는 총 여섯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중상위권 클럽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그러나 지금의 첼시는 무리뉴 전 감독 사퇴와 리그 7위 추락의 위기에 허우적거리고 있어 몰락이라는 최악의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다.
첼시의 성공은 너무나 단기간에 일어났다. 아브라모비치는 거대한 자금으로 특급 선수들을 대거 끌어들여 첼시를 순식간에 강팀으로 일궈냈다. 그러나 첼시 수뇌부는 오랫동안 강팀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인드를 키우기 보다는 자신들의 힘을 축적하려 했고 끝내 지금의 큰 위기를 맞게 됐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지만 첼시는 진정한 강팀의 근본과는 차원이 다른 한계를 지녔다.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는 2004/05 시즌 부터 두 시즌 동안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을 다섯 차례 교체한 안좋은 전례가 있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강팀의 저력이 오랫동안 묻어나온 전통의 명문 구단이었기에 2006/07 시즌 라리가 우승으로 스페인 최고 클럽에 다시 올랐다. 첼시가 레알 마드리드 같은 강팀의 근본이 짙게 묻어져 있었다면 지금의 위기를 적절하게 대처했을지 모른다.
이제 위기의 첼시를 구출할 존재는 아브라모비치 밖에 남지 않았다. 단순히 특급 선수와 명장을 영입하는 것만으로 근본적인 한계를 막을수는 없다. 첼시의 운명을 쥐고 있는 그의 새로운 결단과 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다.
[사진=디디에 드록바가 9월 29일 풀럼전에서 퇴장당하는 장면 (C) 첼시 공식 홈페이지]
이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