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5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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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꼴' 베어벡-맥클라렌, 선수탓은 "이제 그만!"

기사입력 2007.06.05 01:02 / 기사수정 2007.06.05 01:02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 = 박형진 기자] 네덜란드전 직후, 베어벡 감독은 말이 없었다. 코치들은 녹초가 된 선수들을 격려하며 부산히 움직였지만, 베어벡 감독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뒤로 물러나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장장 40분에 걸친 '성토회'를 가졌다.

베어벡 감독을 보면 그와 너무나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는 한 명의 감독이 머리에 떠오른다. 바로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감독 스티브 맥클라렌이다. 취임 배경부터 이후의 성적, 그리고 언론을 대하는 태도 등 너무나 많은 것이 닮은 두 감독. 과연 그들은 무엇을 그리도 닮아있는 것일까?


닮은 꼴 1. 코치에서 감독으로

핌 베어벡은 2000년 히딩크가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수석코치를 맡게 되었다. 베어벡은 코치로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며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 때문에 2005년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할 당시 다시 한국 대표팀 코치직을 맡았다. 코치로서 두 번의 월드컵을 치른 경력을 인정받은 베어벡은 결국 2006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정식 부임하기 이른다.

스티브 맥클라렌 역시 베어벡과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다. 2000년부터 잉글랜드 대표팀 코치를 맡아온 맥클라렌은 미들즈브러 감독으로서의 활약과 대표팀에서의 오랜 경험을 높이 평가받으며 에릭손 감독의 후임으로 자리 잡았다. 두 감독은 선임 과정에서 세계적인 명장들을 제치고 감독직을 맡은 '이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닮은 꼴 2. 닮은 인연, 비슷한 성적?

비슷한 시기에 부임한 두 감독은 대표팀에서 약 9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각각 9경기와 10경기를 치뤘다. 베어벡 감독은 9경기에서 3승 2무 4패의 성적을 거두었고, 맥클라렌 감독은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고 10경기에서 4승 4무 2패를 기록했다.

객관적인 성적만 보자면 맥클라렌 감독의 성적이 더 좋아 보인다. 그러나 맥클라렌 감독의 잉글랜드는 이스라엘과 비기고 크로아티아에 패하면서 유로 2008 본선 진출이 불투명하다. 베어벡 감독은 무리없이 한국 대표팀을 아시안컵 본선에 올려놓긴 했지만, 아시아의 강호 이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등 내용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두 팀은 네 차례의 친선경기에서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

친선경기에서 네덜란드와 그리스를 만난 것 역시 공통점. 한국과 잉글랜드는 모두 그리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네덜란드를 상대로는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잉글랜드는 맥클라렌 부임 후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4-0 대승을 거두었으나 네덜란드와는 1-1 무승부를 거두었고, 베어벡 감독은 잉글랜드에서 치른 그리스와의 친선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으나 네덜란드를 상대로는 0-2로 패배하며 9년 전 0-5 대패 설욕에 실패했다. 잉글랜드와 한국은 모두 반 더 바르트의 골에 일격을 당한 아픔마저 공유하고 있다.

닮은 꼴 3. 상식 밖의 전술, 소심한 선수 기용?

베어벡 감독은 수비에서 공격으로 연결하는 패스 능력을 강조하며 '김상식-김동진 중앙수비'라는 깜짝 카드를 꺼냈다. 소속팀에서 각각 수비형 미드필더와 왼쪽 윙백을 맡고 있는 선수들에게 중앙 수비라는 자리는 너무나 생소했다. 베어벡 감독의 의아스러운 수비 실험은 이란전 1-1 무승부, 우루과이전 0-2 패배 등 좋지 않은 결과만을 남긴 채 끝났다. 베어벡 감독은 네덜란드전에서 김동진을 왼쪽 윙백으로 돌리고 김상식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시키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말았다.

맥클라렌 감독의 실험은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맥클라렌 감독 역시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을 위해 생소한 3-5-2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그러나 새로운 포메이션에 적응하지 못한 잉글랜드 대표팀은 우왕자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크로아티아에 두 골을 헌납, 0-2로 패배했다. 맥클라렌 감독은 두 골을 실점하고 나서야 기존의 4-4-2 포메이션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승부는 결정난 상태. 이 패배로 잉글랜드는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아직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실험적인 전술과 다르게 두 감독은 선수 기용에 매우 소극적이다. 베어벡 감독은 프리미어리거들은 물론 러시아 리그와 J리그에서 활약 중인 '해외파'를 중용하는 성향이 크다. 국내파의 경우에도 두 차례 월드컵을 통해 검증된 선수들을 주로 기용하는 경향이 크며, 리그에서 맹활약하는 신예들을 실험하는데 인색하다. 올림픽대표만 해도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는 하태균(수원)과 이청용(서울)을 선발하지 않는 등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맥클라렌 감독 역시 프리미어리그의 '빅 4' 선수들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2006 월드컵에서 좋지 않은 조합을 보여준 램파드와 제라드를 꾸준히 함께 선발로 내세우는 것 역시 맥클라렌 감독의 '소심함'을 보여주는 대목. 특히 선수층이 유달리 두터운 잉글랜드로서는 맥클라렌의 답답한 선수 기용에 불만을 가지는 팬들이 적지 않다.

닮은 꼴 4. 위기 극복 방법 : 선수 희생양 만들기?

베어벡 감독은 네덜란드전 직후 기자회견에서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나 모든 기자들을 의아하게 만든 '폭탄발언'은 다름 아닌 김두현에 관한 맹비난이었다. 김두현의 투입이 늦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의 투입을 후회한다"는 말로 응수하더니, 이어 "평생 성남에서만 뛰는데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선수 미래에 대한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김두현에 대한 베어벡 감독의 비난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다. 성남의 김학범 감독 역시 "지도자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베어벡의 발언에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수비적인 전술을 짠 것도 문제가 있는 판국에, 0-2로 뒤지는 상황에서 미드필더 한 명을 투입해 경기판도를 바꾸겠다는 전략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김학범 감독의 반응. 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베어벡 감독의 김두현 비판은 경기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는 '희생양 만들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맥클라렌 감독 역시 비슷한 전력(?)이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3월 28일 안도라전에서 3-0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5경기 무승의 부진에 빠졌다. 감독 경질론 등 비판 여론이 들끓자 맥클라렌 감독이 꺼낸 카드 역시 '선수 희생양 만들기'. 맥클라렌 감독은 5경기 동안 한 골밖에 넣지 못한 부진을 공격수 루니의 탓으로 돌렸다. 이러한 맥클라렌 감독의 '희생양 만들기'는 퍼거슨 감독 등 각계의 엄청난 비판을 받으며 그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들었다.

닮았으면 하는 모습 : 새로운 선수 기용, 내용 있는 전술!

맥클라렌 감독은 잉글랜드 대표팀이 부진에 빠지자 플랜 B라는 초강수를 내놓았다. 에릭손 감독이 시도한 바 있는 플랜 B는 리그에서 활약이 좋은 선수들을 대표팀에서 실험해보는 전략이다. 빅클럽 소속이 아닌 선수들이 주축이 된 잉글랜드 B 대표팀은 알바니아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었고, 쇼레이(레딩) 등 4명의 B팀 선수들은 며칠 뒤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 투입되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베어벡 감독 역시 자신의 실수를 보완하고자 새로운 선수 기용을 준비 중이다. 베어벡 감독은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우성용(울산), 김치곤(서울), 이근호(대구) 등을 대표팀에 승선시켰다. 그리고 J리거 등 해외파 대신 투입된 국내파 선수들은 내용상으로 더 나은 모습을 보이며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베어벡 감독은 맥클라렌 감독처럼 폭넓은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K리그에는 출중한 기량을 갖고도 대표팀에 승선하고 있지 못한 선수들이 많다. 특히 대표팀의 문제로 지적되는 중앙수비만 해도 베어벡 감독의 '테스트'를 기다리는 수준급의 선수들이 다수 있다.

지금까지는 리그 일정 등을 이유로 체계적인 전술 훈련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아시안컵을 통해 한국 대표팀 특유의 전술을 갖추는 것 역시 필요하다. 베어벡 감독이 원하는 롱패스, 크로스 위주의 전술은 아직까지 큰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선수들의 기량에 맞는 '맞춤식 전술'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베어벡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보다 '발상의 전환'일지도 모른다.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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