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8 02:54
사회

[함께 나눠요] 아빠마저 간암으로…막막한 4남매

기사입력 2010.12.29 03:58 / 기사수정 2011.06.30 01:43

라이프 기자



[엑스포츠뉴 라이프 매거진] 가출한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 넷을 보살핀다는 연해숙(가명, 59세) 씨를 찾아갔다.

두 달 전 간암으로 아들을 잃고 지금 노모에게 남은 건 그간 생활비와 병원비로 진 빚과 어린 아이들이었다.

거짓말하고, 돈 훔치고, 안 씻는 아이들

연해숙 씨는 뒤늦게 며느리 가출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고아원에 맡겨진 세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컴퓨터 게임 중독이 심각했던 애들 엄마는 적금, 돼지저금통은 물론 아이들 보험까지 해약해서 집을 나간 뒤였다. 들어선 좁은 방엔 먼지와 빨래가 수북했다.

아이들 상황은 더 안 좋았다. 지방으로 건어물을 떼러 다니던 아빠와 컴퓨터 게임과 홈쇼핑에 중독된 엄마 밑에서 제대로 된 훈육을 못 받고 자란 아이들. 둘째(12세)는 손버릇이 나빴고, 셋째(13세)는 거짓말을 일삼았다. 막내 유나(가명, 9세)는 망치로 하수구를 깨뜨리고 파이프를 들여다볼 정도로 호기심이 과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기 위해 회초리를 들었다. 당장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밤 10시에 귀가하던 장사를 정리했다. 노모 품에서 자란 첫째 정우(가명, 16세)와 달리 부모로부터 방치되었던 세 아이는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친구 집에 놀러가서 집에 말도 없이 자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이를 안 닦고 슈퍼와 문구점에서 물건을 집어오고, 거짓말을 할 때마다 종아리를 맞았다. 한번 몸에 든 잘못된 생활습관은 고치기 힘들었다. 연해숙 씨는 밤마다 울음을 삼키며 잠든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었다.


  


▲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할머니의 훈육은 엄격하다. 언제나 운동화를 반듯하게 정리하는 아이들.

간암에 걸린 아들 간병

"암에 걸린 걸 알고 아들이 엉엉 울어요. 살고 싶다고... 애들이 걱정이라고."

연해숙 씨는 아들을 간병하는 동안 통장에 있던 자신의 돈을 모두 사용했다. 결국, 빚을 얻어 여섯 식구 생활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죽어가던 마지막 몇 달은 사채에 의존해 투병을 벌였다. 그래도 아들의 고통과 죽음은 끝내 막을 수 없었다.

"혼자 벌어먹고 살다 네 아이를 건사해야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간신히 애들 학교 간 사이 과수원에서 아르바이트 한나절 하는 게 전부에요. 그것도 일거리가 잘 없지."

연해숙 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세와 빚을 갚으며 생활하고 있다.

  ▲ 칠판은 아이들이 반듯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이다.

원칙을 배우는 아이들

"신발 꺾어 신지 마라. 어른께 인사 잘해라. 남의 것 손대지 마라."

연해숙 씨는 아이들 학교 부근 이웃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부모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용돈을 주거나 먹을 걸 공짜로 주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이들이 버릇없이 공돈을 받고 게으름을 피우는 습관을 근절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 8시까지 이를 닦고 숙제를 마친다. 어쩌다 텔레비전에 빠져 약속을 못 지키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할머니 앞에서 바지를 걷어올린다. 9시면 씻고 무조건 잠자리에 든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통해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하는 중이다.

"유나가 전화기와 볼펜을 전부 분해해서 망가진 가전이 많아요. 이제는 내가 무서워서 잘 안 하는데, 아무래도 정서 불안이 심하지 싶어요."

호랑이보다 무서운 할머니지만, 잠자리만 들면 아이들은 서로 그 품에 안기겠다고 모여든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할머니가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주는 버팀목이라는 걸 알고 있다.

  

▲ 오랜 간병생활과 노동으로 지쳐있는 연해숙 씨.

이사가 필요한 시점

성실한 정우는 장래 웹디자이너 꿈을 위해 자격증을 3개 준비했다. 영어 성적은 반에서 1등, 하지만 학교와 집이 너무 멀어 야간학습을 하지 못해 속이 상하다고 했다.

"유나 혼자 여자애라서 사내 녀석들과 한방에 재우는 게 아무래도 미안해요."

오랜 병간호와 노동으로 지쳐 보이는 연해숙 씨는 오늘도 아이들 걱정이다. 다섯 가족은 정부가 아이들에게 지원하는 최소 생활비와 노모의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지금 연해숙 씨는 네 아이가 자랐을 때 고아라는 세상의 편견에 주눅이 들지 않도록 인성교육에 애쓰고 있다. 그래서 장학생으로 대학에 가겠다는 정우가 학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고, 유나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은 그녀의 바람은 더욱 절실하다.

아이의 장래희망이 좌절되지 않도록, 지금의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네 아이 얼굴에 환한 웃음이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의 관심이 모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후! 나누리] 엄진옥 기자 umjo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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