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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화 이글스만이 만들 수 있는 '논픽션 드라마' [조은혜의 슬로모션]

기사입력 2021.04.05 14:30 / 기사수정 2021.04.05 14:23


[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변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2021년, 외국인 코치진과 함께 리빌딩을 천명하고 대변혁에 나선 한화 이글스는 그 크고 작은 물결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구석구석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한화만의 방식에 대한 확신이자 자신감의 표현, 그리고 팬들에게 건네는 유대의 신호다.

한화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왓챠와 계약을 맺고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부임한 한화의 2021시즌을 다큐멘터리로 담는다. 한화의 다큐멘터리는 왓챠가 제작을 공식화한 첫 오리지널 작품으로, 왓챠에게도 한화에게도 이번 제작은 역사적인 시도다. 왓챠는 2월 거제 스프링캠프부터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해 한화 선수단과 프런트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섬세하게 관찰하고 있다.

#1 다큐와 다큐 이상의 것

예산부터 만만치 않은 초대형 규모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배경은 단순할 수도 있다. 젊고 역동적인 팀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한화는 이 과정을 팬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코로나19 탓에 팬들이 야구장을 찾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보다 가깝고 신선한 접점도 필요했다. 그런 논의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떠올린 것이 2020년 12월, 그때까지만 해도 다큐멘터리라는 콘텐츠를 향한 시선에는 많은 걱정과 물음표가 섞여 있었다.

그와 동시에 확실한 방향성이 있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됐을 때의 효과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마케팅 전문가인 박찬혁 대표이사를 비롯한 한화 이글스 구성원들의 생각은 열려있었고, 판단은 과감했다. 한화는 방식과 플랫폼,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촬영감독 한 명을 섭외했다. 창단 첫 외국인 감독과의 첫 만남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벤트였다. 미국에서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했던 상황이지만, 여러 리스크를 감수하고 미국에서의 수베로 감독과 전략팀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왔다. 공개될 다큐멘터리에 포함될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당시 영상은 현재 왓챠 측에 넘겨진 상태다.

왓챠와의 협의가 시작된 것은 일단 영상 소스를 확보해놓은 그 이후다. 두 달여 만에 투자처를 찾고, 제작진을 꾸려 촬영을 시작했으니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었다. 특히 제작진, 그것도 '스포츠 다큐멘터리'라는 특수성에 맞는 제작진을 빠르게 구성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화는 야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고, 오랜 경력의 휴먼 다큐 경험을 지닌 제작진을 원했다. 그렇게 잘 알려진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제작한 한경수 PD가 총괄 프로듀서를, 지상파에서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휴먼 다큐 경력 20년 이상의 김정훈 감독이 총감독을 맡았다.


무엇보다 한화에게는 완성도 있는 결과물만큼이나 촬영 과정이 중요했다. 제작팀은 정규시즌 144경기는 물론 그 144경기를 위한 준비 과정까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 때문에 경기력에 영향을 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더 경력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다큐멘터리 담당 TF팀 관계자는 "결국 경기력보다 가치가 있는 건 없다. 다큐도 잘 만들어야 하지만, 경기를 잘하는 것 이상의 것은 없다"고 말하며 "주장 노수광과 대화를 많이 했다.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협조해주고 싶어 하지만, 다큐 때문에 영향이 가는 건 우리도 싫고 선수들도 싫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선을 협의했다"고 전했다.

다큐에서는 그동안 금지된 영역과 같았던 더그아웃 뒤나 라커룸의 모습도 공개될 예정이다. 움직이는 인원만 열 명 이상. 투수조 조장 김진영은 "솔직히 처음에는 분위기나 집중도 면에서 '이게 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선수들을 배려해주시는 걸 많이 느낀다. 선수의 활동 반경을 침범하면 집중이 안 될 때가 있는데 제약된 공간에서도 완벽하게 그 공간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제는 없는 것처럼 생활할 정도로 자연스러워졌고, 카메라가 있다고 해서 액션이 더 크거나 없지 않다"고 얘기했다.

어쩌면 다큐 제작이 가장 번거롭고, 또 부담스러울 수 있는 사람이 수베로 감독이다. 수베로 감독은 "카메라가 싫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농담했지만 이내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도 팬이었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팬들이 클럽하우스 내부를 가장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화 이글스가 팬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너그러운 마음을 전했다.


#2 "그마저도 우리의 일부다"


다큐멘터리는 한화의 성공, 혹은 실패를 포장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한화의 다큐멘터리지만, 인물 선정이나 스토리 구성 등 과정에 구단은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TF팀 관계자는 "우리는 어떤 걸 담고 있고, 어떤 스토리를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편집 권한을 모두 왓챠에 넘기는 조건으로 왓챠에서도 투자를 했다. 한화의 브랜디드 컨텐츠가 되는 게 아니라, 프로야구단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게 컸다"고 밝혔다.

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가감 없이, 모든 것을 오픈하는 것. 특히 한화는 이 다큐가 올해의 슬로건이기도 한 '우리만의 방식'을 팬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라운드 안은 물론, 바깥에서의 방식도 포함한다. "어떻게 보면 선수들의 공간보다 프런트의 공간들이 금지된 곳처럼 여겨졌다고 생각한다. 트레이드나 신인을 뽑을 때, 엔트리 변화가 있을 때 우리는 결과만 알고 짧은 코멘트만 들을 수 있었지, 이걸 어떻게 논의했는지 모른다. 민감할 수도 있겠지만 다큐에서는 이런 부분들까지 모두 공개될 수 있다. 이 선택들이 길게 봤을 때의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라는 게 TF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꽃길만 걸을 리 없다. 더욱이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선수단으로 변모한 올해의 한화는 열 팀 중 가장 약한 팀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잊고 싶고 감추고 싶은 부분을 남겨 놓을 수 있고, 팀이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야만 하는 상황에 마주할 수도 있다. 강등이라는 결말을 맞이했던 선덜랜드 AFC의 다큐멘터리처럼 최악으로 향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중계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지만, 그럼에도 한화는 "그마저도 우리의 일부이며, 앞으로 계속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더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러한 부분들을 모두 더 가까이에서 리얼하게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올 시즌, 결과 이전의 과정을 더 주목하는 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TF팀 관계자는 "레퍼런스로 많이 언급되는 '죽어도 선덜랜드'는 선덜랜드 팬들도 봤겠지만, 팬이 아니거나 EPL을 전혀 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보고 그 팀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컬러를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많은 분들이 이 컬러에 대한 유대감이 형성됐으면 좋겠다. '우리 경기를 봐주세요, 응원해주세요'라는 멘트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진짜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 이야기에 녹아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3 온 디 에어, 한화 이글스의 방식대로


다큐멘터리 제작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 한화는 유튜브 채널 '이글스 TV'를 통해 왓챠의 스프링캠프 촬영분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공개했다. 다큐멘터리 '티저(Teaser)'였던 셈. 이후에도 그라운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촬영된 몇 가지 영상들이 공개됐다. TF팀 관계자는 "왓챠의 배려로, 다큐멘터리를 위해 촬영하는 소스지만 협의 하에 '이 타이밍에 팬분들에게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다' 하는 부분들은 공개하기로 했다. 팬분들이 조금씩 보시면서 이런 내용이 담기겠구나, 예상하고 기대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촬영은 정규시즌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는데, 한화는 시즌의 이야기만큼이나 시즌이 끝나고 난 뒤의 이야기가 중요할 거라고 보고 있다. TF팀 관계자는 "시즌이 끝난 후 스토리 기획 작업, 후반 작업과 함께 투 트랙으로 추가 촬영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에피소드들의 대략적인 규모는 협의가 된 상황이다. 그런데 아직 촬영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너무 좋은 소스들이 많이 찍혀 생각했던 규모 안에 다 못 들어갈까봐 고민이 된다"고 웃었다.

한화는 올 시즌 슬로건으로 우리만의 방식, 'THIS IS OUR WAY'를 내세웠다. TF팀 관계자는 "시즌 초에만 바짝 하고 사라질 얘기가 아니라, 올 시즌 우리 팀을 끌고 갈 만한 아주 중요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올 시즌 뿐 아니라 내년, 내후년 수베로 감독이 있는 동안 변화의 축이 될 거고, 팬분들이 따라와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됐다"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금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이런 전략들을 믿어주시고, 또 동참해주셨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정민철 단장은 "이 실행은 꼭 인기를 올리겠다는 단편적인 목표에 멈추지 않는다. 비단 우리 팀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가 팬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들 중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시즌이 되면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기겠지만, 최대한 내부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노출할 예정이다. 우리로서는 언더독에서 탑독으로 올라가는 시나리오가 제일 좋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한화는 우려 속에서도 시범경기 7경기에서 6승1패를 기록하고 20년 만에 시범경기 1위를 차지했다. 예상 밖의 성과였지만 한화는 '좋은 결과를 냈다'가 아니라 '좋은 과정을 확인했다'고 자평한다. 이제 본격적인 레이스, 한화는 어떤 내용과 결말의 '논픽션 드라마'를 그리게 될까. 한화 이글스의 드라마는, 한화 이글스밖에 만들 수 없다.


eunhwe@xportsnews.com / 사진=엑스포츠뉴스DB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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