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5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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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의 여우의 배번을 기억하는가.

기사입력 2007.02.06 07:08 / 기사수정 2007.02.06 07:08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20억의 사나이’ 최성국의 배번이 결정됐다. 그의 배번은 7번. 어느 팀이든 팀의 에이스의 번호 7번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지만 성남의 팬들에게는 좀 더 많은 의미를 가진 숫자다.

기자가 기억하는 성남의 7번은 항상 한 선수의 배번이었다.

‘그라운드의 여우’ 신태용. 1992년 데뷔 이래 2004년 은퇴할 때까지 성남 일화의 7번으로 활약한 그는 ‘7번’의 자격에 꼭 들어맞는 선수였다. 401경기 99득점 68도움이라는 성적표에 베스트 일레븐 9회 선정, 두 차례의 리그 MVP(1995, 2001) 최다우승팀 성남 일화의 주장다운 이력이었다.

신태용은 언제나 그라운드 한복판에서 선수들을 조율하며 성남을 우승으로 이끈 K리그를 대표하는 7번이라 할 수 있었다. 유난히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그 점을 전혀 아쉬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K리그에 충실하던 그를 돋보이게 하는 일화가 있다.

항상 코너킥을 준비할 때 팬들에게 손을 높여 박수를 쳐주던 신태용은 상당한 쇼맨쉽을 가진 선수였다. 상대편 팬이 던진 물병을 들어 물을 마시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거나, 갑작스런 골키퍼의 부상으로 대신 골문을 지킨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그가 성남의 7번에서 K리그를 대표하는 7번으로 기억될만한 일이 있었으니 2004년 여름, 대전과의 컵 대회 마지막경기. 대전과 성남 모두 우승컵을 향해 치열하게 싸우던 그 경기는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상황은 무승부는 대전의 승리. 경기는 내내 팽팽한 0대 0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성남에는 K리그 최다골의 주인공 김도훈이 있었다. 김도훈은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골로 0대 0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대전 선수들은 심판에게 오프사이드 판정에 대해 항의, 경기장은 걷잡을 수 없이 소란스러워졌다. 결국 경기는 중단됐다.

양 팀 응원석을 가든 메운 서포터들은 그라운드에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고 선수들은 이를 피해 그라운드에서 내쫓겨야 했다. 그런 와중에 신태용은 트랙으로 걸어 나와 성남 서포터들을 진정시켰다. 그는 성남 뿐 아니라 대전의 서포터들에게도 다가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위험하다고, 괜찮다고, 싸우지 말라고” 당시 흥분한 팬들로부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던 상황에 신태용은 축구팬들끼리 싸우면 안 된다며 자신의 팔에 감긴 주장완장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통산 99호골을 터뜨린 뒤 페널티킥 득점으로는 100호골을 달성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신태용은 결국, 2004년 변변한 은퇴경기 조차 치르지 못하고 호주로 건너가 지금 A리그 퀸즐랜드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노쇠화를 이유로 2004년 재계약을 포기한 성남의 입장 역시 이해할 수 있지만 K리그를 대표하는 7번에게는 못내 아쉬운 순간이었을 법하다.

이제 성남의 7번은 신태용이 아닌 최성국의 배번이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개인기를 가진 그는 신태용과 다른 의미의 여우로서 그라운드에서 활약할 태세다. 젊고 빠른 새롭기까지 한 최성국의 활약이 계속될 때마다 성남 서포터 뿐 아닌 K리그의 오랜 팬들 역시 신태용을 기억하리라.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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