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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966 Again'이 꿈이 아닌 이유

기사입력 2010.06.16 08:16 / 기사수정 2010.06.17 18:31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아쉬운 패배였다. 그러나 또 다른 기적의 서막일 수 있다.

북한 축구 대표팀이 16일 새벽 3시 30분(한국 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G조 예선 1차전에서 1-2로 패배했다. 

브라질은 월드컵 5회 우승에 빛나는 현 FIFA 랭킹 세계 1위 팀. 반면 북한은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데다 세계랭킹은 105위로 32개 참가국 중 최하위다. 누구나 일방적이고 김빠지는 승부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결은 지금까지 치러진 본선경기 중 가장 눈을 떼기 힘들만큼 역동적인 경기였다.

상대의 명성에 충분히 기가 죽을 수 있었음에도 북한은 경기 초반 다소 긴장했을 뿐,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경기의 주도권은 분명 브라질이 쥐고 있었지만, 북한은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촘촘한 간격을 통한 '그물망 수비'로 브라질의 공격력을 무력화시켰다.

그렇다고 북한이 자기 진영으로 완전히 주저앉아 수비만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필요할 때는 최전방의 정대세와 함께 2선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며 브라질을 압박해 좋은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북한의 기세에 세계 최강팀도 조금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브라질이지만 본선 최약체로 꼽히는 북한을 상대로 이른 시간 득점을 뽑아내지 못하자 서서히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고, 전반을 0-0으로 마칠 때쯤에 그들 특유의 여유있는 미소도 간데없었다.

하지만, 후반 10분, 브라질의 마이콘이 그림 같은 선제골을 뽑은 데 이어 몇 분 뒤 엘라노의 추가골이 터지자 승부의 추는 기울었다. 북한의 '작은 이변'도 거기까지인 듯했다. 그러던 후반 43분, 정대세의 헤딩 패스를 받은 지윤남이 벼락같은 슈팅으로 만회골을 넣었다. 추가시간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경기 분위기는 갑자기 반전됐다. 이후 정대세가 두 차례 중거리 슈팅 기회를 잡을 때마다 경기장은 혹시나 모를 이변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북한은 1-2의 아쉬운 패배를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얻은 것이 더 많은 경기였다. 브라질을 비롯해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가 속한 '죽음의 조' 첫 경기에서 최강팀을 맞아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인 것은 북한 선수들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남은 일정에 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기세라면 북한이 44년 전의 기적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44년 전 기적이란 북한 축구 대표팀이 이번 대회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참가했던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일으킨 대이변을 말한다. 당시 러시아(구소비에트)와의 첫 경기에서 0-3으로 힘없이 무너진 북한은 이어진 전 대회 4강 팀 칠레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이후 북한은 이탈리아와 가진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영웅' 박두익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기적적으로 아시아팀 최초 8강 진출에 성공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붉은 악마가 보여준 'AGAIN 1966'란 카드 섹션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

이후 북한은 8강에서 포르투갈을 만나 경기 시작 25분 만에 세 골을 몰아넣으며 또 한 번의 기적을 맛보는 듯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후 포르투갈 축구영웅 에우제비오에게 내리 네 골을 내주며 3-5의 역전패를 당해 패배조차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북한은 또 한 번 월드컵 역사에 이정표를 남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앞서 열린 같은 조 코트디부아르와 포르투갈의 경기는 무승부로 끝이 났다. 따라서 북한이 만약 44년 전처럼 남은 두 경기에서 1승 1무를 거둔다면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다시 한번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코트디부아르와 포르투갈의 '창'이 브라질의 그것보다 예리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할 때, 북한이 그물망 수비와 날카로운 역습으로 다시 한번 기적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축구공은 둥글지 않던가.

남북한 축구 대표팀이 '사상 첫 월드컵 본선 동반 진출'을 넘어 '사상 첫 월드컵 16강 동반 진출'이란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까. 브라질을 상대로 보여준 북한의 저력은 이를 허황된 말로만 들리지 않게 했다.



전성호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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