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8.02 15:27 / 기사수정 2006.08.02 15:27
▲수원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박호진 골키퍼. [사진=강창우 기자]
경기가 끝나고 나면 항상 그날 골을 넣은 선수나 완벽한 수비력을 보여 준 수비수 혹은 명성이 높은 스타 선수가 주목을 받고는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이운재(수원)처럼 오랜 국가대표 경력의 인지도나 김병지(FC서울)같은 화려함과 실력으로 무장해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지 않으면 주목이 떨어지는 포지션이다.
그런 점에서 FA컵 16강 경기 수원-대전의 경기는 양 팀의 골키퍼의 활약이 눈부신 한판이었다.
대전의 최은성 골키퍼는 늘 만점 활약으로 팬들을 기쁘게 하는 선수이다. 특히 수원과의 경기를 할 때면 더욱 무서운 집중력으로 선방을 했다. 때문에 그의 활약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2002년 이운재-김병지 사이에 가리면서도 성실성을 인정받아 많은 팬이 그를 알고 있는 만큼 그에게 더 이상의 칭찬이나 주목은 이제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부차기에서 대전의 주자로 나선 선수들의 방향을 모두 읽어낸 수원의 박호진은 이제 막 자신의 능력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 같은, 주목도 면에서는 아직 떨어지는 선수이다.
1999년 입단한 박호진은 수원에서 꽤 오랜 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 오랜 시간의 절반 이상을 이운재의 그늘에서 보냈던 선수다. 여기에 이운재의 국가대표 차출 때 항상 두 번째 골키퍼 자리를 꿰차고 있던 김대환에게도 가려있던 그야말로 기다림이 공식처럼 되어버린 선수였다.
그래서 2003년부터 광주 상무에서의 생활은 그에게는 주전 보장의 또 다른 탈출구로 찾아 올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당시 광주에는 전북의 ‘수호천사’ 이광석이 이미 1년 전 입대해 주전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었고 정유석(부산), 백민철(대구), 염동균(전남)등 쟁쟁한 동료와 함께 돌아가면서 경기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당시 상무가 K-2리그(현 내셔널리그의 전신) 이천 상무 소속으로 경기를 치렀던 점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광주가 36경기를 치른 2004년 그의 경기 출장이 17경기밖에 안 되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 자신도 광주 상무에서의 복무가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할 만큼 어려운 시간이었다.
전역 후 다시 수원으로 복귀한 그에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이따금 경기에 뛸 수 있었을 뿐 1군 명단에 이름 올리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 온 것은 이운재의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차출과 함께 NO.2 골키퍼 김대환의 어깨부상이었다.
5월 24일 울산과의 홈경기에 김대환 대신 첫 출전한 그는 안정감 있는 방어력으로 0-1로 패하기는 했지만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어진 제주-전남-부산 경기에서도 그는 어려운 팀 여건 가운데서도 실점을 최소화하며 방어하였다.
이후 독일에서 돌아 온 이운재가 월드컵 휴식기를 거친 후 처음으로 열린 경남과의 홈경기에 출전했지만 부상을 입으면서 그는 후반 교체 출전하였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경남과의 경기 후 경기마다 주전으로 출장하며 안정된 볼 소유 능력과 수비진을 조율하며 수원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이러한 박호진의 활약은 부상중인 이운재나 김대환에게 자극이자 위협이겠지만 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안정된 수비라인과 함께 골키퍼의 능력 향상이라는 호재를 얻게 되었다. 박호진이 조금 더 감각을 키워 경기 상황을 읽는 눈이 높아진다면 수원의 후기리그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끌어올려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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