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3.10 22:21 / 기사수정 2006.03.10 22:21
지난 3월 1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앙골라와의 평가전을 지켜본 많은 팬이 한결같이 내뱉은 말이 있었다. 바로 "역시 박지성이야."였다. 1-0이란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마감했지만, 박지성의 화려한 플레이에 대한 찬사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앙골라전에서 보여준 박지성의 활약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이젠 설명이 구차해진 박지성의 드리블 능력이나 패싱력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동료를 이용하거나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플레이는 역시 프리미어리거라는 탄식이 나오기에 충분했다.
또, 박지성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이동해서도 그 위치에 알맞은 움직임을 펼쳐보이던 장면들은 왜 박지성을 보고 '감독의 전술에 최적화된 선수'라는 찬사가 뒤따르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앙골라전에서 보여주었던 박지성의 경기력은 또 한 단계 성장했음을 국내 팬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었다.
지난해 맨체스터로 이적할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 같은 박지성의 활약을 예감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필자도 박지성의 이적과 관련해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적응기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박지성은 보기 좋게 그 예상을 엎어버리고 맨체스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주전급으로 급부상했다.
그동안 맨체스터 선수들이 잊고 있었던 성실함과 욕심 없는 그의 플레이는 팀 리빌딩을 추진하고 있는 퍼거슨 감독의 눈에 참으로 믿음직스러워 보였으며, 경기를 치를수록 발전하는 박지성의 경기력에 퍼거슨 경은 그의 애제자인 라이언 긱스나 C.호나우두를 한동안 벤치에 앉혀두기도 했다.
박지성에게 위기가 오고 있다.
이렇게 빠른 적응과 성장세를 보였던 박지성의 최근 모습은 다소 불안해 보인다. 박지성의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C.호나우두가 최근 유례없는 골 퍼레이드를 펼치며 맨체스터 승리의 제1 선봉장이 되고 있고, 퍼거슨 경의 공격 옵션 1순위인 루니도 매 경기 제 몫은 해주고 있다. 게다가 루이 사하가 프랑스 대표팀 발탁과 더불어 상승세를 유지하며 고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간판 골잡이인 반 니스텔루이가 지난 칼링컵을 계기로 다소 기가 죽었지만 아직 맨체스터의 간판 스트라이커는 반 니스텔루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맨체스터의 모든 공격진 중에서 박지성만이 가장 불안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주 치른 위건과의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최근 들어 가장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별 활약 없이 후반 교체되기도 했다.
여기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발렌시아가 C.호나우두를 영입하기 위해 무려 1,700 파운드(한화 약 290억)의 이적료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히면서 C.호나우두의 주가는 계속 치솟고 있다. 수개월 전만 하더라도 C.호나우두보다 비교우위에 서있다는 평가를 들었던 박지성으로서는 긴장할 만한 뉴스였다. 또, 중앙 미드필더 강화를 노리고 있는 퍼거슨 경이 이번 여름 시장에서 비야레알의 리켈메를 영입을 노리고 있어, 현실화될 경우 박지성은 더 힘겨운 주전 싸움을 해야만 한다.
일부에서는 맨체스터가 C.호나우두를 팔고 리켈메를 영입하려 한다고 하지만, 최근 분위기로 맨체스터가 C.호나우두를 쉽게 버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박지성이 지금과 같은 애매모호한 플레이를 계속 보여준다면 최악의 경우, 박지성이 리켈메 영입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박지성, 욕심을 늘려라!
최근 박지성의 경기를 보며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그라운드에서 그의 '헌신'만 볼 수 있을 뿐, 그의 '욕심'을 볼 수 없다는데 있다. 물론 그러한 박지성의 플레이가 지금의 박지성을 있게 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이제 또 다른 차원으로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라도 그런 헌신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지성과 C.호나우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을 잡았을 순간의 플레이 스타일이다. 박지성은 공과 주변의 동료가 우선이지만, C.호나우두는 공과 자기 자신이 플레이가 최우선이다.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은 박지성은 드러나진 않지만 성실한 선수란 인상을 남게 했고, C.호나우두는 개인 플레이가 많지만 위력적인 공격력을 보유한 선수란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이런 평가는 박지성이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박지성이 이영표와 같은 풀백이거나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중앙 수비수라면 더 없는 최고의 옵션이 되겠지만, 공격수인 박지성에게는 늘 부족한 뭔가를 남기게 한다. 10번 실패해도 11번째 성공하면 그만인 공격수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박지성의 모습엔 현재 팀의 상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긴 하다. 현재 맨체스터는 중앙 미드필더라인이 너무도 약해진 상태이다. 폴 스콜스와 앨런 스미스가 있을 때에도 중앙 미드필더는 맨체스터에 큰 힘이 되지 못했었다. 헌데, 그들마저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라이언 긱스와 대런 플레처 정도가 중앙을 맡고 있는데 그들의 중원 장악 능력은 아직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는 기대되지 않는다.
이렇게 팀의 허리가 부실해지면서 박지성은 공격수로서의 임무보다는 중앙을 지원하는 형태의 경기를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수비 가담 능력이 좋은 박지성으로 하여금 중원을 지원케 하고, 공격력이 뛰어난 호나우두가 전방을 책임지는 형태의 경기를 보이고 있다.
현재 맨체스터가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상황의 연출은 박지성의 뛰어난 체력을 활용한 중원 커버로 볼 수도 있지만, 박지성이 '공격력의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로도 해석이 가능해진다. 미드필더로서의 재도전이 아닌 이상 이러한 분위기와 상황은 박지성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맨체스터의 측면 공격수로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이상, 위협적인 공격수로 인정받아야 한다. 수비 가담이 좋은 공격수보다, 수비에 다소 부족함이 있더라도 공격수로서의 무서움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 8개월 동안 박지성이 잉글랜드에서 보여준 활약은 무척이나 대단한 것들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그것도 최고의 명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그가 보낸 지난겨울은 참으로 따뜻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연료가 다 떨어져 가는 '신형 엔진'이 아닌 진정한 그라운드의 '습격자'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 과감한 드리블과 돌파 그리고 골 마우스에서 골에 대한 욕심을 부릴 줄 아는 진짜 공격수로 거듭나야 할 때가 왔다.
욕심, 참으로 쉬워 보이는 단어지만 그리 넓지 않은 경기장에서, 22명이 서로 엉키며 뒹구는 그라운드 안에서 자신의 욕심을 마음껏 부리는 것도 실력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박지성은 그런 욕심을 부릴 자격과 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제, 더 공격적이고 더 이기적인 박지성으로 또 한 번 업그레이드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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