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2.25 10:44 / 기사수정 2010.02.25 10:44
유니폼, 평범한 사람이 보면 그저 얇은 티셔츠 한 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축구팬에게 유니폼은 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동시에 통장 잔액을 거덜나게 하는 비싼 옷이다. 게다가 똑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해마다 아낌없이 사는 것,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인천에 사는 손주영 씨(26), '옷장에 유니폼만 한가득 있다.'라는 제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다지 신빙성은 없어 보였다. 유니폼 하나 샀다가 한동안 자판기 커피로 점심을 때운 경험이 있던 터라 옷장에 유니폼이 가득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런데 정말로 그 유니폼들을 보는 순간 정말로 옷장을 채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엄청난 유니폼들, 이 옷들만 입어도 여름은 무난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 많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보이는 재킷들까지 고려한다면 한겨울만 아니라면 옷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사실 유니폼을 모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손주영 씨의 첫 마디는 의외였다. "인천이 창단할 당시 첫 유니폼이 학생에게는 너무 비싼 가격이었어요. 그래서 창단 유니폼만 사려고 했거늘, 2005년부터 시즌권과 함께 유니폼을 같이 판매하기에 다시 하나 사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다 매년 사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네요(웃음)"
"인천이 시민구단이잖아요, 구단 수익에 도움이 된다면 유니폼 하나는 당연히 사야죠" 그의 말에서는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시민구단인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보면 선수들과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경기장에는 반드시 유니폼을 입고 가죠"
▲한번 펼쳐봤다. 많다, 진짜 많다. 그리고 부럽다.
그에게 있어서 인천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가 얼마나 인천을 사랑하는지 좀더 객관적인 시선을 알아보고자 평소 알고 지내던 인천 서포터인 지인에게 슬쩍 얘기를 꺼냈다. "저기 손주영 씨 말인데요‥" "그러니까 걔가 여자가 없는 거야"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에게 이 일화를 들려주자 뜻밖에 덤덤한 표정이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제 일상이에요. 뭐 여자친구 없어도 괜찮아요. 제 일상인 인천이 늘 함께 하잖아요. 그래도 올해는 여자친구와 손잡고 경기장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어요(웃음)"
그의 행동은 주변에서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깟 공놀이에 빠져서 수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울고 웃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K-리그의 시민구단을 열렬히 지지하는 그의 열정만큼은 하릴없이 집에서 키보드나 두들기는 나보다 훨씬 더 한국축구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지 않을까.
연애도 서로 주고받는 것처럼, 인천을 사랑하는 그도 분명히 인천에게 바라는 점이 있을 것 같았다. "성의 있는 경기를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이기고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기가 있지만, 또 지고도 박수받는 경기가 있잖아요. 승패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보고 싶어요"
모든 팬들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닐까. 팬들이 구단을 사랑하는 만큼 선수들도 구단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라운드에서 모두 보여주는 것, 몸 속에 검고 파란 피가 흐를 것 같은 손주영 씨의 작은 소망이 인천의 힘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이뤄지길 기원해 본다.
[사진=손주영 씨의 소장 유니폼들 (c) 손주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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