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12.05 21:52 / 기사수정 2009.12.05 21:52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5일 저녁, 일본 도쿄 요요기 국립체육관에서 벌어진 '2009-2010 ISU(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 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 참가한 김연아(19, 고려대)가 '천신만고'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2위인 안도 미키(21, 일본)와의 점수 차는 겨우 2.92점 차이였다.
김연아는 이번 대회에서 최상의 경기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토록 낮은 점수를 받을 만큼, 흔들린 것도 아니었다. 그랑프리 시리즈 첫 대회였던 '에릭 봉파르' 때, 김연아와 2위를 기록한 아사다 마오(19, 일본 츄코대)의 점수 차이는 무려 30점 이상이었다. 이러한 점수 차이가 이렇게 줄어든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에릭 봉파르에서 나타난 김연아의 기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즌이 겨우 시작될 무렵, 김연아는 이미 새로운 프로그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일본의 피겨 해설가이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라카와 시즈카(28, 일본)는 "시즌이 이제 겨우 시작될 시점인데 벌써 프로그램이 완성돼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비교적 좋은 조건 속에서 출전한 '에릭 봉파르'에 비해 '스케이트 아메리카'는 부츠 문제로 고생을 했었다. 또한, 이번 대회는 김연아의 앞을 가로막는 악재가 많았다. 우선, 4일 벌어진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가 깔끔하게 시도한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에 제동이 걸렸다.
테크니컬 패널들이 멀쩡한 트리플 토룹을 '더블'로 처리하며 김연아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 얻었다. 자신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기술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선수에겐 큰 타격이다. 어지간한 선수도 제대로 구사된 기술에 제동이 걸리면 심리적으로 받는 상처는 매우 크다.
또한,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김연아의 스케이트 날이 망가지는 일도 발생했다. 급하게 수리를 마쳤지만 경기 당일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점도 선수에게 큰 부담감을 안겨준다.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많은 상황에서 경기에 임한 김연아는 첫 과제인 '트리플 러츠 + 트리플 토룹 점프'를 트리플 러츠 + 더블 토룹'으로 처리했다.
첫 점프에서 랜딩이 약간 흔들인 김연아는 두 번째 점프를 무리하지 않고 더블로 처리했다. 첫 과제의 실패는 프로그램 점체에 영향을 미치지만 김연아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반전시켰다. 트리플 플립을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전환한 김연아는 더블 악셀에 이은 더블 토룹과 더블 룹을 깨끗하게 소화했다.
프로그램 초반에 몰린 '폭풍 점프'를 모두 소화한 김연아는 각종 스핀과 스파이럴 시퀀스, 그리고 트리플 살코와 러츠, 더블 악셀도 훌륭하게 뛰어냈다.
하지만, 첫 번째 콤비네이션 점프인 '트리플 러츠 + 더블 토룹'은 가산점이 '0'으로 처리됐다. 또한, 트리플 러츠에서는 1점이 넘는 가산점을 받았지만 나머지 요소에 매겨진 '박한 점수'는 여전히 계속됐다.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의 특징은 풍부한 가산점과 PCS에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지는 점프는 모두 스텝과 이너바우어 등을 거쳐서 진행된다. 가산점을 얻을 수밖에 없는 구성을 지녔지만 다른 대회에 비해 김연아에게 주어진 GOE는 매우 적었다.
또, PCS에서 놀랍게도 김연아는 모두 7점대의 점수를 받았다. '에릭 봉파르'와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김연아의 PCS는 8~9점대에 이르렀다. 스케이팅은 물론, 풋워크와 안무 등을 볼 때, 김연아와 다른 스케이터들의 차이는 매우 월등하게 나타난다.
특히,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의 안무는 모든 기술과 어우러져 있다. 점프와 스핀의 공백 사이에 손동작과 표정연기가 혼연일체가 돼서 진행되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은 고난도의 기술과 함께 매우 어려운 안무로 구성됐지만 놀랍게도 평이한 수준의 안무를 지닌 안도 미키의 PCS와 동률을 이루고 말았다.
김연아의 스피드도 평소 때와 비교해보면 조금 쳐져 있었지만 안도 미키의 움직임도 기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모든 기술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려고 한 안도 미키는 점프도 큰 비거리를 내세우지 않고 제자리에서 도약하듯이 안정적인 점프를 구사했다. 또한, 기술에 집중하다 보니 움직임도 느려져 있었고 김연아처럼 점프 앞에 현란한 스텝을 넣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안도 미키의 PCS는 김연아와 거의 비슷했다. 쇼트프로그램에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두 선수의 경기를 비교해 보면 공정성이 왜 상실됐는지가 여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기가 끝난 뒤, 김연아는 "최상의 연기를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좋은 경험을 얻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연아로선 올 시즌에 펼쳐지는 가장 어려운 대회를 무난하게 치러냈다. 이번 그랑프리 대회의 우승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뿐만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은 '정신력의 완승'이었다.
올 시즌 벌어지는 대회 중, 가장 험난한 산맥을 넘은 김연아에게 남아있는 대회는 올림픽이다. 정신없이 대회를 치러온 김연아는 이제 호흡을 조절하고 프로그램을 새롭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패크니컬 패널들의 오심과 스케이트날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김연아는 또 다시 정상에 올랐다. 김연아가 역전승을 거둔 상대는 안도 미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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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연아 (C) IB 스포츠 제공, 엑스포츠뉴스 강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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