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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WBC FOCUS] 김광현, 제3의 구질이 필요하다

기사입력 2009.03.08 00:15 / 기사수정 2009.03.08 00:15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7일 저녁,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한국과 일본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로 표기) 1라운드 경기에서 한국대표팀은 최악의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바로 일본대표팀에게 굴욕적인 14-2의 7회 콜드 게임 패를 당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은 선발 투수의 붕괴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류현진(22, 한화 이글스)과 함께 한국 최고의 투수로 손꼽히는 김광현(21, SK 와이번스)은 '일본 킬러'로 불리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일본을 상대할 수 있는 최고의 투수란 명칭이 더욱 걸맞겠죠.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타점에서 내리찍는 빠른 볼과 슬라이더는 일본 타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팀을 상대로 연이어 네 번이나 승리투수가 된다는 점은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투수의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면 가능성은 커지겠죠. 그러나 김광현을 비롯한 한국 투수 대부분은 몸이 완성되지 못한 채, 이번 아시아리그에 참가했습니다. 일본 전에 등판한 김광현은 확실히 좋지 못했습니다. 1회 초에 안타로 이어진 볼은 모두 슬라이더였습니다. 모두 완벽하게 떨어지지 못한 밋밋한 볼을 일본 타자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슬라이더 특훈만 하루에 200타씩 때린 일본 타자들

실제로 일본팀이 김광현을 공략하기 위해 준비한 과정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아사히 방송 같은 공중파 매체에서 김광현의 분석을 위해 특집 방송을 편성한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입니다. 아무리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국가대항전이라고는 하지만 특정 투수 공략에 이리도 집착하는 경향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가장 놀라운 점은 일본타자들의 '특훈'이었습니다. 직구와 슬라이더를 구사하는 김광현을 대비하게 위해 일본타자들은 하루에 슬라이더만 받아치는 특훈을 했습니다. 주전으로 나서는 타자들은 평균적으로 200타 이상의 슬라이더 특훈을 매일 실시했습니다. 김광현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철저한지는 이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광현이 구사하는 빠른 슬라이더와 느린 슬라이더를 모두 대비한 일본 타자들은 실전 경기에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일본팀이 올리는 득점의 시발점인 스즈키 이치로(36, 시애틀 매리너스)는 김광현의 슬라이더가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타로 연결했습니다. 팀의 기둥 역할을 하는 이치로는 일본팀 선수들 중, 가장 많은 훈련을 소화해냈습니다.

중국전에서 나타난 부진 때문에 이치로가 부진에 빠져있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본 타자들 중, 가장 철저하게 김광현을 대비해온 이치로는 하루에 슬라이더 특타 훈련을 무려 500개씩 쳤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김광현을 무너트리기 위한 일본의 준비는 매우 꼼꼼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현미경 분석'이 실전 경기에서는 그리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연습과 실전은 엄연히 다르고 2008 베이징올림픽 때에도 김광현에 대한 분석은 매우 철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그러나 '정신무장'부터가 달랐던 베이징올림픽대표팀과 이번 WBC 일본대표팀은 전혀 다른 팀이었습니다.

김광현과 포수인 박경완(37, SK 와이번스)은 상황에 맞춰가면서 볼 배합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1회 초 무라타에게 직구만으로 삼진을 잡은 것과 결정적인 상황에서 좋은 코스로 들어가는 슬라이더를 구사한 점은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볼 배합은 '사무라이 재팬'이란 기치를 걸고 나온 일본대표팀에겐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일본대표팀은 이날의 김광현에게도 고전했을 것입니다.

김광현은 2회 초에 결정적인 상황에서 좋은 볼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볼들은 모두 커트가 되고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진 WBC에서는 스트라이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비책이 미비했던 김광현과 박경완 배터리는 '체인지업' 카드를 꺼냈습니다. 2회 초가 5:2의 상황에서 끝났다면 한국팀의 추격의지도 꺼지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센트럴리그 홈런왕인 무라타 슈이치(29,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는 김광현이 꺼낸 마지막 카드까지 철저하게 무산 시켰습니다.

김광현의 낮은 체인지업은 3점 홈런으로 이어지고 8-2의 스코어가 나타나면서 승부의 향방은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패스트 볼 - 슬라이더 조합에 새로운 무기가 될 구질이 절실히 필요

김광현은 높은 타점에서 뿌려지는 직구와 좌우의 각이 예리한 슬라이더를 주로 구사하고 있습니다. 국내리그에서는 위력적인 구질이 두 개만 있어도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대항전과 같이 '현미경 분석'이 이루어지는 무대에서는 공략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위는 위력적이지만 구종이 단순한 것을 파악한 일본팀은 작정하고 슬라이더 분석에 '올인'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성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리한 슬라이더를 커트하는 방법과 헛스윙하지 않는 방법, 그리고 밋밋한 슬라이더가 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지의 방법을 일본타자들은 고스란히 익히고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상의 구질을 동시에 공략하는 방법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구질에 포커스를 둔다면 상황은 달라지지요.

만약, 김광현이 류현진에 버금가는 서클 체인지업이나 궤적이 큰 커브를 지니고 있었다면 '현미경 분석'도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구와 슬라이더의 단순한 조합은 끝내 일본의 현미경 분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비록 쓰라린 경험을 했지만 이제 21세에 불과한 김광현은 큰 경험을 치렀습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의 주역인 김광현이 직구와 슬라이더를 받쳐줄 '제3의 구질'을 완벽하게 익힌다면 일본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투수로 성장할 것입니다.

김광현이 일본을 상대할 날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직구와 슬라이더 외에 또 하나의 위력적인 구질을 갖춘 김광현이 완성된다면  진정한 '일본 킬러'로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 김광현 (C) KBO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캡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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