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3.05 02:24 / 기사수정 2009.03.05 02:24
그러나 빅리그 출신 선수인 점을 생각하면 매우 부끄러운 성적이었다. 김선우와 서재응은 한 시즌 먼저 국내로 들어온 봉중근, 송승준에 비해 MLB에서 인정받는 투수들이었지만 2년차 선배들의 환호를 부럽게 쳐다봐야만 했다.
분명 MLB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야구 리그이다. 무려 30개의 팀이 있고 1200여 명의 선수가 MLB에 등록되어 뛰고 있다. 이에 비해 KBO는 8개 팀에 200명도 채 안 되는 선수들이 1군에서 뛰고 있다. 그런데 빅리그 무대에서 뛰고 온 선수들이 꼭 시행착오를 겪는 것일까.
첫째, 타자들의 성향에 대한 부적응 문제 때문이다. MLB타자들과 KBO타자들은 성향 자체가 다르고 코치들의 지도방식 또한 다르다. MLB타자들이 빠른 승부를 즐기고 어떤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도 두려움 없이 배트를 내는 것과 달리, 한국 타자들은 승부를 최대한 길게 가져간다. 또한, 볼 카운트에 따라 볼을 고르는 능력도 탁월하다. 이 때문에 MLB 방식의 승부에 익숙한 메이저리거 출신 선수들은 한국 타자들과 처음 맞부닥쳤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멘탈이 약한 투수일 경우, 끈질긴 타자들에게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김선우는 시즌 중 인터뷰에서 "MLB에서도 포수의 리드를 따르지 않고 고집대로 던졌다가 맞은 적이 많다"고 밝혔다. 이렇게 자존심이 강한 투수들은 처음 KBO로 와서 얻어맞거나 고생할 경우 공황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둘째, 이러한 성향에 따라 자신의 주무기였던 구종이 반대로 약점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서재응이다. 서재응은 빠른 공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컨트롤의 마법사'로 불렸던 그렉 매덕스와 흡사한 제구력을 위주로 한 컨트롤 피처다. 특히 MLB에서 서재응의 주무기는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교묘하게 뺏는 체인지업이었다. 승부를 빨리 가져가고 성격 급한 MLB타자들은 빠른 공 뒤에 오는 체인지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난 시즌 그의 체인지업은 더 이상 그의 승부구가 아니었다. 기다릴 줄 알고, 노려치는 스타일인 한국타자들에게 그의 체인지업은 걸리면 장타로 연결되었다. 사실 KBO에서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가지는 일류급 투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류현진의 대표적 구질 중 하나가 체인지업이지만 일반 체인지업이 아니라 횡으로도 살짝 휘는 서클체인지업이다. 서재응도 서클체인지업이지만, 류현진과 서재응이 다른 점이라면 류현진은 모든 구종이 타자에게 위력적이라는 점이다. 서재응도 서클체인지업이 아닌 다른 무기를 날카롭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자기도 몰랐던 자만심이다. 아무리 겸손하고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수만 명의 응원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눈에 받아봤던 선수들이다.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타 의식'이 몸과 마음에 배어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자만심은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쳐 자신감으로 형성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만심이 악영향을 주게 된다. '내 공을 과연 칠 수 있을까'라는 마음가짐이 타자들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메이저리거 공을 한번 쳐봐라'하고 던졌는데 생각보다 쉽게 얻어맞아 맞아버린다면,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한동안 지속된다면 이들은 페이스를 잃고 추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 각 구단들은 전지훈련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김선우, 서재응 등도 이번 시즌에는 신인이 된 마음으로 뛰겠다는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봉중근, 송승준도 지난해의 성적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서재응은 한국타자들에 맞춰 주무기를 커브로 바꾸겠다고 인터뷰도 했다. 김선우는 워낙 뛰어난 구위를 지닌 투수이기 때문에 적응만 하고 몸만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넓은 대로에서 달리다가 좁은 골목길로 U턴을 하려면 한번에 확 돌기 어렵다. 그들은 돌다가 잠시 멈춰 후진을 하고 있는 상태다. 후진을 한 후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면 부드럽게 돌아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사진 = 김선우 (C) 엑스포츠뉴스DB 강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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