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3.02 13:13 / 기사수정 2009.03.02 13:13
“심재용은 괜찮은 선수였다.”
장애인 사격 국가대표 심재용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느꼈다. 삶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86년, 사업가를 꿈꾸며 봉제회사에 근무하던 23세의 청년 심재용은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선고 받는다. 꿈도 희망도 접어야 한 채 자살까지 생각해야했던 때도 있었으니까…
장애 선고 그리고 내 삶의 전부, 아내
45세, 지체장애 1급의 국가대표 11년 차 사격선수, ‘연장전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굴지의 사격 스타 심재용에게도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열애중이던 아내 이옥자(41)씨의 내조가 없었다면 지금의 심재용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심재용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절망에 빠진 그에게 항상 “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어 주었다. 오랜 동거생활을 거친 후 결국 두 사람은 지난 96년 사랑에 결실을 맺고 결혼에 골인, 부부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다짐했다.
지난 해 8월,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도 아내는 매일같이 성당에 나가 심재용의 선전을 기원했고, 심재용은 힘차게 휠체어를 이끌고 아내에게 감사의 선물로 어느 메달보다도 값진 동메달을 선사했다. 아내는 그의 삶을 지탱해 준 은인이자, 그가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사격 선수로 거듭나게 한 일등 공신인 셈이다.
‘제2의 인생’ 사격“처음엔 재활 삼아 수영을 시작했어요. 원래 운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땐 내가 선수로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죠. 나는 아무데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리에 통증이 심해 전부터 취미였던 수영을 시도했지만, 이제는 전처럼 강하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갈 수 없었고, 장애의 벽은 생각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장애인체육이라는 분야가 생소하던 당시, 백재환 코치(현 인천시장애인체육회 부회장)의 소개로 접한 사격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지금까지도 백재환 코치는 그의 우상이며, 그렇게 잡은 소총은 어느 덧 13년 째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으며 그는 국내 최고의 명사수가 됐다.
“사격이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처음엔 5.5킬로그램에 달하는 소총의 무게조차 견디기 힘들었다는 그에게 사격은 ‘새로운 도전’이자 ‘오기’였고, 그는 마치 꿈 많던 청년시절로 돌아간 듯 ‘희망의 과녁’을 조준했다. 노력의 대가만큼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해 단숨에 인천시를 대표하는 사격선수로 또 전국 대회에서 밥 먹듯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국가적인 선수로 거듭났다.
그에게 있어 사격은 ‘제2의 인생’이자 ‘행복을 향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
선수로서 그의 삶의 목표는 두 가지다. ‘최고로 기억되는 것’과 예순까지 선수로 활동하면서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선수’로 기억되는 것.
아쉽게도 그에겐 아직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 금메달을 기대했던 지난 ‘2008 베이징장애인올림픽’ 혼성 10m 소총 결승에서 5번째 발이 빠지는 실수를 범해 우승이 좌절된 것이다. 결국, 슛 오프(연장전)까지 가는 사투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는 금메달을 기대했던 모든 분들께 미안하다며 오는 2014년 런던장애인올림픽에서 기필코 금메달을 획득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베이징장애인올림픽은 또한 그의 사격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불혹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지도자의 길보다는 선수로서 오랜 기간 활동하고 싶었던 그에게 ‘환갑이 넘은 나이’의 호주 대표 선수의 출전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해줬다. “선수생활이 너무 행복하다. 사격이란 종목이 육체적인 요소보다는 멘탈적인 부분을 많이 요하기 때문에 못할 것도 없다. 오히려 노련미가 더해져 유리하지 않겠나.”
‘선수는 천직’
‘세계적인 명사수’ 심재용의 집중력은 대단하다. “사격이란 실수 한발로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기 때문에 모든 선수가 라이벌이며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때문에 사로에서는 ‘조준선 정렬’과 ‘정조준’ ‘격발’ 외의 생각은 전부 비우고 시합에 임해야 한다. 물론 연습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이런 그가 후배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도 집중력, 그리고 ‘연습의 실전화’다.
후배 양성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심재용이기에 유독 선수를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언제까지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며 독식하겠다는 건지, ‘후배들의 앞길을 터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다음 올림픽은 양보하겠다.”며 웃었다.
“내가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건 ‘정상’을 지키겠다는 게 아니다. 어떤 선수에게도 노쇠화는 온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후배들의 실력을 못 따라잡을 날이 올 거라 확신한다. 경쟁하기 보다는 순수하게 선수로 함께 활동하면서 이끌고 싶은 게 바람이다. 때에 따라서는 코치공부도 필요하겠지만 지도자보다는 선수가 내 천직인 것 같다.”
사격은 내 운명.
심재용은 다시 태어나도 사격을 택할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스물세 살 꿈 많던 청년에게 닥친 사고와 장애의 두터운 벽, 그 안에서 새로운 목표와 행복의 길을 제시한 사격을 그는 다음 생애에도, 그 다음 생애에도 선택할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질적인 다리 통증은 어두운 밤, 잠을 청할 때면 더욱 고통스럽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사격이 있어 그의 인생은 언제나 즐겁다.
‘휠체어 탄 불굴의 명사수’ 심재용.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의 인생과 꿈의 과녁을 향한 도전에 갈채를 보내며 앞으로의 활약에도 기대를 걸어본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심재용은 가장 괜찮은 선수였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묘비에 써달라고 할거다. 실력을 떠나서 안팎에서 모든 체육인의 귀감이 되는 선수로 남고 싶다.”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 달라.
장애인 선수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이 피해의식이다. 운동 할 때만이라도 이런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매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누구에게나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다.
“당신의 꿈을 향해 과녁을 맞춰라” -심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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