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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최연소 피겨 코치' 박빛나를 만나다 - 상

기사입력 2009.02.23 10:05 / 기사수정 2009.02.23 10:05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피겨 여왕' 김연아(19, 고려대 입학예정)의 등장 이후, 한국 피겨스케이팅 역사는 김연아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뉘고 있습니다. 김연아의 등장으로 인해 변방에 있던 피겨스케이팅은 인기종목으로 급성장했습니다.

김연아가 등장하기 바로 이전, 국내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이자 동계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낸 스케이터가 있었습니다. 이 선수는 2001년 밴쿠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3위를 차지하면서 24위까지 주어졌던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습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피겨 지도자들 중, 최연소 코치인 박빛나(24)는 김연아가 등장하기 바로 이전 세대에 가장 촉망받던 스케이터였습니다. 박빛나가 2001년 세계선수권에서 선전하고 올림픽 티켓을 획득한 이후, 조혜렴과 최지은(21, 고려대)등이 세계선수권대회에 도전했지만 안타깝게도 예선탈락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박빛나는 김연아가 '불멸의 프로그램'인 '록산느의 탱고'로 전 세계를 흥분시키기 이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어울림누리 얼음마루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는 박 코치는 선수 시절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공개했습니다. 또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보따리도 풀어놓았죠.

Q : 우선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연아가 등장하기 이전, 국내 최고의 선수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우선 피겨에 입문한 동기가 알고 싶군요.

박빛나(이하 '박'으로 표기) :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잠실 롯데월드에서 수영장을 다녔어요. 그런데 그곳에 있는 아이스링크를 지나가면서 '스케이트를 한번 타고 싶다'란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래서 스케이트를 배워보려고 했는데 당시에는 피겨보다 스피드 스케이팅이 더 대중화가 된 시절이었어요.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배울까하고 고민하던 중, 아버지께서 '여자니까 기왕이면 예쁜 것을 배워봐라'라고 권유해주셨어요.(웃음) 그래서 피겨를 선택하게 됐고 그것이 제 인생이 됐죠.

Q : 현재 피겨 코치로 활동하시는 분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그리고 국가대표 생활은 몇 년이나 하셨나요?

박 : 전 85년생이에요.(웃음) 이번 동계체전에 나갔을 때, 개인 레슨을 하시는 분들과 서브 코치 분들을 제외하고 직접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 분들 중, 제가 가장 어리더라고요.(웃음) 그리고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을 때는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그때부터 대학교 2학년 때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했었죠.

Q : 선수 시절, 트리플 5종 점프(토룹, 살코, 룹, 플립, 러츠)를 모두 뛴 선수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박 : 네, 사실이에요.(크게 웃음) 하지만 공식적으로 다 뛴 것은 아니에요. 시합에서 이 점프들을 모두 성공시켜야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었어요. 제가 2001년 밴쿠버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을 때, 토룹, 살코, 룹, 플립까지 모두 뛰었어요. 그러나 러츠는 시합에서 단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했었죠. 현역 시절, 트리플 러츠를 프로그램에 넣은 적이 두 번 있었는데 모두 실수했어요.

Q : 트리플 점프 네 개를 모두 성공시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세계 선수들과의 경쟁은 어땠나요?

박 : 지금과 같은 신 채점 시스템이라면 그때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을 거예요. 하지만 당시 구 채점시스템은 현재와 많이 다르거든요. 또한, 피겨 강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파워도 무시 못했죠. 그 때는 한국 출신의 국제 심판도 없었고 한국은 피겨스케이팅의 주변국이 아닌 완전한 변방의 국가였어요. 지금은 신 채점제로 바뀌면서 예전보다 여러모로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Q : 선수로 성장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지도자는 어느 분인가요?

박 : 현재 과천에서 지도하고 계신 변성진 선생님이 제가 성장하는데 큰 영향을 주셨어요. 제가 트리플 점프를 모두 완성할 때가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는데 그 때, 절 지도해주셨던 코치님이 변 선생님이셨어요. 지금은 주로 어린 유망주 선수들을 가르치시고 심판 스페셜리스트도 하고 계세요.

Q :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될 상황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면 최연소 대표였죠? 그리고 국내 챔피언에 올랐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박 : 네 맞아요. 대표 팀 막내로 들어갔지만 처음 뽑힌 과정은 순탄치 않았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중국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그곳에서 다리 부상을 당했어요. 그 때, 가장 중점을 두고 있던 훈련이 '더블 악셀'이었거든요. 많은 선수들이 부딪히고 좌절하는 벽이 '더블 악셀'이에요. 2회전 점프를 마치고 난 뒤, 두 바퀴 반 이상을 회전하는 것은 넘어야할 산과 같았어요. 더블 악셀은 힘들고 거기에 부상까지 겹쳐서 스케이트 대신 공부에 전념하게 됐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다른 선수들은 아침과 저녁에 모두 스케이트 연습을 했지만 저는 저녁에만 스케이트를 타고 공부에 치중했어요. 그러다가 그해 여름에 더블 악셀이 랜딩됐어요. 그리고 가을에 있었던 국내 랭킹전 대회에 참가했는데 뜻밖에도 4위를 차지하면서 국가대표로 발탁됐죠. 지금은 대표선수가 되도 집과 태릉을 왔다 갔다 하지만 그 때는 태릉에서 합숙을 했어요.(웃음)

다른 대표 팀 선배 언니들과 함께 훈련을 했는데 모두 트리플 점프를 뛰고 있어서 제가 자극을 받았어요.(웃음) 저만 더블 악셀을 뛰고 다른 선수들은 모두 트리플을 뛰니 자연스럽게 이를 악물게 됐죠. 결국, 노력의 결실이 맺어지게 되는데 1년 후에 벌어진 국내랭킹전에서 우승을 했어요.  

Q : 선수로서 최고의 순간이었던 2001 세계선수권대회 때의 사연과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박 :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그 때 저를 지도해준 캐나다 코치분인 더글러스 리는 제프리 버틀(27, 2008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1위 현재 은퇴)의 스승이기도 했어요. 그때까지 만해도 버틀은 그리 알려진 선수는 아니었거든요. 그 때 버틀은 캐나다 내셔널 대회에서 6~7위에 오르는 선수였어요. 버틀과는 같은 장소에서 연습만 하는 사이였는데 알고 보니 너무 착했어요.(웃음) 저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이 점프를 해서 성공을 하면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 준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급부상하더니 결국 세계선수권 챔피언이 됐잖아요.(웃음)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프리 버틀과의 추억이 있었고 캐나다 밴쿠버의 링크장이 아이스하키 링크라서 규격이 작았어요. 그래서 링크가 작다는 것을 알고 얼음판을 작게 쓰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연습했었죠. 작은 링크에 적응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짜증을 낸 모습도 기억이 나는데 이 문제를 대비했던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결국, 24위까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졌는데 23위에 올라 꿈에 그리던 올림픽 진출을 확정지었죠.(웃음) 공식적으로 동계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것이 처음이라 그 뿌듯함은 말로 못할 정도였어요.

Q : 꿈에 그리던 올림픽 링크에 섰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그리고 어렵게 진출한 올림픽인 만큼 만족감도 있겠지만 아쉬움도 컸을 텐데요.

박 : 저는 시합을 앞두고 긴장을 하는 것보다 무대에 서는 시간을 매우 즐겼어요. 그리고 저는 연습보다 실전에서 더 강한 모습이 짙었거든요. 2001년 솔트레이크 4대륙선수권에서도 연습 때는 점프 성공률이 그리 좋지 못했어요. 하지만 막상 실전 경기에 들어가 보니 트리플 살코와 플립, 더블 악셀을 모두 성공시키며 클린을 하자 많은 분들이 놀라셨어요. 실전 무대를 무척 즐기는 편이라 올림픽 무대가 다가와도 긴장보다는 즐거움이 컸어요.

하지만 올림픽 때, 컨디션이 매우 나빴어요. 감기가 심하게 걸리고 몸살이 단단히 났거든요. 그래서 올림픽은 성적이 좋지 못했지만 소중한 무대라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Q :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종목 중, 피겨스케이팅은 정말 흥미진진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특히, '피겨의 전설'인 미셀 콴과 러시아의 '토털 패키지'인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경쟁이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정작 올림픽 금메달은 뜻밖의 선수인 사라 휴즈에게 돌아갔잖아요? 그 때, 현장에서 지켜본 느낌은 어떠셨나요?

박 : 정말 동계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실감이 났어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여자쇼트프로그램이 끝나고 당시 제 캐나다 서브 코치였던 로버트 테비가 차를 타고 가던 도중, 그 분이 "프리스케이팅 1위는 사샤 코헨이 될 것 같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쇼트프로그램에서 미셀 콴과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잘 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왠지 의외의 선수가 급부상하면서 금메달을 가져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씀하셨어요. 올림픽 같은 큰 대회는 항상 의외성이 많이 일어난다는 점도 언급하셨는데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 차에 제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인 알렉세이 야구딘이 함께 앉아있었다는 거예요.(큰 웃음)



야구딘이 제 메인 코치인 더글러스 리와 친분이 있어서 함께 차를 타게 됐어요. 여자 싱글에서 이변이 일어난다는 의견을 들은 야구딘은 "에이 그런 일은 없을 거야"라면서 피식 웃은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 거짓말같이 그 다음 날 이변이 일어났어요. 최고의 선수였던 미셀 콴과 슬루츠카야가 모두 실수를 한 반면, 사라 휴즈는 트리플+트리플 점프를 랜딩시키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어요. 만약 신채점제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본다면 사라 휴즈의 점프는 문제점이 있겠지만 구채점제에서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Q : 박 코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올림픽 금메달을 정말 신이 내리는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올림픽에서의 극적인 사연은 2006 토리노에서도 나타나죠. 미셀 콴이 은퇴한 이후, 최고의 선수였던 사샤 코헨과 이리나 슬루츠카야를 누르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아라카와 시즈카도 그렇고요. 특히 아라카와의 경우는 가까이서 본 경험도 있는데 인간적으로도 정말 멋진 선수더군요.

박 : 맞아요. 아라카와 선수는 인간적으로 너무 멋진 것 같아요. 매너도 아주 좋고 굉장히 착해요.

Q : 조금 전 알렉세이 야구딘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 부분에 대한 얘기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박 : 제가 가장 좋아했던 피겨 선수가 바로 알렉세이 야구딘이었어요. 똑같은 피겨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잘 탄다'라는 느낌이 오는데 야구딘에게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다가왔어요. 스케이트를 너무 잘 타는데다가 너무 멋졌어요.(웃음) 최근 잘하는 남자 선수들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저에겐 야구딘이 여전히 최고인 것 같아요.(웃음)

Q : 국내 무대를 제패하고 세계무대에 나가면 큰 벽이 느껴진다고 하는데 정말 세계의 수준이 만만치 않다고 느낀 적은 언제였나요?

박 : 그건 국제대회에 나갈 적마다 항상 느끼는 점이에요. 세계를 주름잡는 선수들이 정말 잘한다고 처음 느낀 대회는 세계주니어선수권 대회였어요. 국제대회에 처음 나가는 거라서 처음엔 마냥 즐거웠어요. 하지만 잘하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놀라게 됐죠.

특히, 사샤 코헨은 주니어 대회 때부터 만났는데 너무 잘 하는 거예요.(웃음) 또, 그때는 지금보다 미국과 러시아 선수들이 강세를 보였거든요. 피겨 강국인 두 국가에서 배출한 많은 선수들의 기량을 보고 있노라면 세계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가 실감이 났어요.

미국과 러시아의 선수층도 지금보다 탄탄했죠. 잘 타는 선수들이 많으니 그만큼 경합도 치열해지고 연기도 훌륭했어요. 게다가 그 때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미국과 러시아에서 나왔잖아요? 미국의 미셀 콴과 사샤 코헨, 그리고 러시아의 슬루츠카야 등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배출됐죠. 누군지는 얘기 안 해도 다 아시겠지만요.(웃음)

박빛나 코치가 은퇴를 하고 지도자에 들어선 과정과 현재의 상황, 그리고 김연아에 대한 이야기 등이 다음 하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사진 = 제프리 버틀, 알렉세이 야구딘 (c) 엑스포츠뉴스DB 남궁경상 기자, 장준영 기자, 박빛나 제공]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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