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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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자유'가 없는 FA 제도

기사입력 2009.02.17 15:10 / 기사수정 2009.02.17 15:10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2009시즌 K-리그 개막일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팀의 선수구성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전 세계적 경기불황의 여파는 K-리그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예년만큼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킬만한 선수 이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일명 '아시아쿼터제'로 인한 유명 아시아선수 영입과 해외진출 선수들의 K-리그 복귀 등은 팬들로 하여금 충분히 다음 시즌에 대한 즐거운 기대와 설렘을 갖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스토브리그의 몇몇 이적 사례를 보면서 축구팬들에겐 궁금증이 생긴다.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들의 이적에 버젓이 '이적료'란 항목이 붙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대표적인 FA 선수인 이근호(대구FC)에 대해 거액의 이적료가 거론되고 있고, 김은중(FC서울)은 소속팀과 사실상 결별이 정해진 상태지만 FA 이적료 문제로 거취가 아직 불분명한 상태다.

자유 이적선수에게 이적료라니?

FA(Free Agent, 자유 이적) 제도란 말 그대로 선수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팀을 이적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FM 시리즈와 같은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 익숙한 축구팬들이라면 FA 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선수와 구단 간의 계약은 선수가 구단에 유무형의 물질적 보상을 받는 대신 프로로서 정해진 기간 동안 자신이 가진 역량을 소속구단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이따금 유럽프로축구리그에서의 그 엄청난 금액으로 화제가 되는 이적료란 한 구단이 계약기간이 남은 선수를 다른 구단으로 보낼 때 선수의 '소유권'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받게 되는 물질적 대가인 셈이다.
 
그러나 이를 충실히 이행한 뒤 계약기간이 만료된 선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받는 FA의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FA 선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선수가 구단에 계약적 책임이 없으며, 동시에 구단 역시 선수에 대한 소유권이 없기에 이적료가 발생할 수 없는 것이 축구팬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K-리그에서는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적료가 발생하는 FA?

FA 선수에게 이적료가 발생한다? K-리그의 열정적인 팬이라 해도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이들이 꽤 될 것이다. 선수들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프로축구 선수단 관리 규칙 제30조에 따르면 (2005년 이전 입단했던) 'FA 자격 취득 선수가 타 구단으로 이적할 경우, 양 구단 합의에 의해 양수 구단은 원소속(양도) 구단에 이적료를 지급하여야 한다.'라며 FA 선수의 이적료를 명시하고 있다.

이적료는 [(현재 연봉+원소속 구단이 제시한 차기 연봉+이적 구단이 제시한 연봉)÷ 3]× 연령별 계수라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연령별 계수는 만 19세∼21세 8, 만 22세∼24세 6, 만 25세∼27세 4, 만 28세∼30세 3, 만 31세∼33세 2, 만 34세 이상 0이다.

예를 들어 2004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프로에 입단해 현재 연봉 2억을 받는 만 23살 선수가 현 소속 팀에게 3억 원의 재계약 연봉을 제의받았고, 다른 팀에게 4억 원을 제시받은 상태라면 이 선수의 이적에는 무려 18억 원의 이적료가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K-리그의 규칙은 로컬룰(지역규정)이기에 해외진출 시에는 적용받지 않는다.)

또한, 만 34세가 넘지 않는 이상 무조건 FA 이적료가 발생하는 것인데, K-리그의 선수생활 기간이 유럽에 비해 짧은 것을 고려하면 2005년 이전 K-리그 입단 선수들이 선수 기간 중 진정한 의미의 FA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FA 이적료의 배경

이러한 FA 이적료는 왜 생긴 것일까? 2005년 이전 K-리그 신인선수는 입단 시 연봉과는 별도로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다. 프로축구단의 효율적 운영보다는 모기업 홍보를 위한 성적지상주의가 팽배하던 K-리그의 구단들은 우수선수 영입을 위한 비합리적 경쟁을 벌였고, 여기에서의 경쟁도구가 바로 거액의 계약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다경쟁으로 지나치게 치솟아버린 계약금으로 인한 구단 재정의 불건전성 등을 우려한 K-리그는 2005년부터 계약금 없는 완전연봉제를 실시하고 대신 프로야구와는 달리 까다로운 조건 없이 누구든지 계약기간이 만료되기만 하면 FA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문제는 2005년 이전에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선수들이었다. 구단으로서는 이들에게 거액의 계약금을 주며 영입했는데, 길어봤자 3년 남짓한 계약이 끝나면 이들을 잃게 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결국, 이에 대한 보상 기제로서 FA 이적료라는 희한한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산출방식상 거액의 이적료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FA이적료 제도는 선수들의 자유 이적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구단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과다경쟁으로 인한 산물인 거액의 계약금에 대한 부담을 철저하게 선수들에게만 떠넘기는 현재의 FA 이적료 제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는 FIFA가 지난 수년간 구단보다는 선수들의 권익을 세워주는 것과도 전적으로 대치된다.

보스만룰과 웹스터룰

선수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구단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FIFA를 비롯한 현대축구계의 흐름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보스만 룰'과 '웹스터 룰'이다.

1990년 벨기에 RFC 리에주 소속이었던 장 마르크 보스만은 이적을 원했으나 구단의 제지로 팀을 옮길 수가 없게 되자 유럽사법재판소에 이적 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해 유럽사법재판소는 '계약이 끝난 선수는 구단의 동의와 이적료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다.'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는 '계약 만료까지 6개월 이상 남지 않은 선수에게는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보스만 룰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2008시즌을 앞두고 수원삼성에서 빗셀고베로 자유 이적한 김남일이 가장 최근의 예다.

웹스터 룰은 2006년 스코틀랜드 하츠에서 뛰던 앤디 웹스터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당시 구단주와의 불화로 팀 명단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그는 계약을 1년 남은 상황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으로의 이적을 단행했다.

이에 하츠와 위건 사이에는 이적소송이 벌어졌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피파 규정 제17조에 근거한 웹스터 룰이 만들어진 것이다. 웹스터 룰은 '28세 이전에 계약을 체결한 선수는 3년이 지나면 (남은 계약기간의 연봉을 지불할 시) 스스로 계약을 파기할 수 있으며, 28세 이후에 계약을 맺은 선수의 경우에는 2년으로 그 시기가 줄어든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번 시즌 초 인테르 행을 원하던 프랭크 램파드(첼시)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났던 호비뉴(맨체스터시티)가 웹스터 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예다.

이처럼 FIFA와 유럽리그를 위시한 세계축구계의 흐름이 이적에 있어서 구단의 권익에 묻혀있던 선수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려는 데 반해, K-리그의 FA 이적료 제도는 여전히 이에 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잃기 전에 쫓아낸다?'

그렇다면, 현 FA 제도는 FA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 2005년 이후 K-리그 진출 선수에 대해선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또 한가지 FA 제도의 문제점은 프로축구 선수단 관리 규칙 제33조, '완전 연봉제에 의해 입단한 선수는 계약기간 내에 원 소속구단에서의 계약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적될 경우, 선수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에서 드러난다.

이로 인한 폐해 중 가장 최근의 예는 백지훈(수원삼성)과 정경호(강원FC), 염기훈(울산현대) 등 소속팀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던 선수들이 구단의 이익 때문에 강제 이적을 당한 경우다.

백지훈은 당시 서울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선수였고, 정경호와 염기훈은 각각 국가대표와 AFC챔피언스리그에서의 맹활약을 기반으로 울산과 전북 팬들에게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팬들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던 유망주들이었다.

그러나 해당 시즌 혹은 다음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취득할 예정이었던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이적이었다' 당연히 이적료 한푼 없이 선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선수를 상품으로만 바라보는 듯한 구단의 시선이 선수를 내쫓았다는 의혹과 비난이 빗발쳤다. 팬들의 상실감은 당연했고 선수들 역시 트레이드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혔다.

리그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막는 FA 제도

또한, 현 FA 제도는 기량이 퇴보했거나 덜한 선수들이 자신이 출전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는 팀에서 재기를 노리는 것 역시 제한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김은중이 가장 큰 예다. FA 이적료 적용대상인 김은중은 주전공격수 경쟁이 치열한 서울을 떠나 조금 더 많은 주전시간을 확보해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싶지만, 과연 31살의 선수에게 그만큼의 이적료를 선뜻 내고 데려갈 만한 팀이, 특히 요즘과 같은 경기침체상황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을까. 이렇게 되자 김은중 같은 훌륭한 선수가 구단에 남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김은중 정도 되는 선수가 이 정도인데, 그보다 덜한 이름값을 가진 유망주 혹은 노장선수에 대해 구단들이 선뜻 이적료를 부담할 거란 기대를 갖기란 어렵다.

결국, 현 제도가 리그 전체적으로도 선수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히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중국의 C-리그나 우리보다 축구행정시스템이 앞서있는 J-리그조차도 모두 FA 이적료 등 선수들 입장에서 보기에 부당한 FA 제도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드래프트제도, 승강제 등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될 부분이 많은 K-리그로서는 FA 제도부터 하루빨리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프로축구연맹과  K-리그 구단이 지금보다 한 발짝 양보하여 선수의 자유 이적 권리를 확대하면서도 구단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현명한 답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선수와 구단, 그리고 리그 모두에게 윈-윈을 안겨줄 수 있기를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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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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