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08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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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국 역대 월드컵 도전사 -02-

기사입력 2005.04.13 01:04 / 기사수정 2005.04.13 01:04

정대훈 기자

제6회 스웨덴 월드컵(1958년), 국내사정으로 인해 예선 불참


처녀출전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서 헝가리와 터키에게 가슴아픈 2연패를 기록한 이후 한국 축구는 오랫동안 월드컵 본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찾아온 제6회 월드컵은 스웨덴에서 열렸다. 스웨덴 월드컵 예선전에 우리 나라가 자국 사정으로 인해 불참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대만,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 키프러스, 수단, 시리아 등이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 편성되어 예선을 치뤘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월드컵 지역예선 참가 희망국이 많지 않아 아프리카나 유럽지역 국가들이 함께 편성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었다.

2차 예선에 진출한 인도네시아, 이집트, 수단의 기권으로 이스라엘이 아시아 대표로 최종예선전까지 진출해 유럽의 웨일즈와 경기를 치뤘으나 두 차례 경기를 모두 0-2로 패해 아시아 지역에서는 단 한 팀도 스웨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현재는 유럽축구연맹 소속으로 월드컵 지역 예선을 참여하고 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지역예선에 출전했다.)





제7회 칠레 월드컵(1962년), 8년만의 본선진출의 꿈 아쉽게 날려


60년대에 들어서 FIFA는 아시아 지역의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동구의 강호를 아시아 지역 예선에 참가시켜서 지역예선을 치르게 해 월드컵 본선의 길은 더욱더 험난해졌다.

칠레 월드컵은 본선 진출 16개국을 확정하기 위해 지역예선전을 유럽국가와 아시아, 아프리카를 묶어 10개 그룹으로 편성하고 남미지역을 3개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이들 중 각 그룹 1위 팀이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게 하고 북중미지역 예선을 거쳐 올라온 1개 국가, 그리고 제7회 월드컵 개최국 칠레와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은 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 그리고 일본과 함께 10그룹에 편성되어 월드컵 예선을 치뤄야 했다. 일본과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펼쳐 이겨야만 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전의 승자와 대결하는 최종예선전에 나갈 수 있게 되는 방식이었다.

일본과 2차례 가진 제7회 칠레 월드컵 동부아시아지역 1차 예선전에서 2-1, 2-0으로 2경기 모두 통괘하게 승리해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전에서 유고슬라비아가 1차전 2-1 승, 2차전 1-1 무승부를 통해 1승1무로 최종예선전 진출)와 겨루는 최종예선전 진출권을 따내기에 이른다.

유고슬라비아만 꺾으면 제5회 스위스 월드컵에 이어 8년만에 본선 진출행을 결정지을 수 있게 된 절호의 찬스를 맞은 한국 축구.. 하지만 유고는 한국 축구가 넘어서기에는 높은 벽이었다.

1961년 10월8일 4만여 관중이 모인 가운데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국립경기장에서 칠레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원정경기)이 있었다. 한국은 전반42분까지 유고의 공격을 잘 막아내며 선전을 했으나 전반 종료 3분을 남기고 선취골을 내줘 0-1로 뒤진채 전반전을 마쳤다.

한국팀은 후반전 들어서도 열심히 뛰었으나 유고에게 계속 실점을 허용하면서 결국 1-5로 크게 패해 11월16일날 효창 운동장에서 펼쳐질 홈경기에서 크게 이겨야만 본선 진출이 가능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1차전을 크게 패했기 때문에 2차전(홈경기)에서 한국은 공격 일변도로 강하게 유고를 밀어붙였으나 오히려 유고의 날카로운 역습 공격으로 2실점해 0-2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공세를 늦추지 않고 밀어붙인 한국은 후반18분 유판순 선수의 헤딩슛이 성공해 1-2로 따라붙으면서 효창 운동장을 찾은 축구팬들을 열광하게 했으나 후반 종료 2분을 남기고 다시 1점을 유고에게 실점해 결국 1-3으로 2차전도 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1차전, 2차전 모두 유고슬라비아에게 크게 패해 한국은 칠레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내주면서 다음 월드컵을 기약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유럽 축구와의 실력차이를 절감하게 한 최종예선이었다.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1966년), 예선전 출전을 포기한 한국 축구


칠레 월드컵에 이어 4년후 다시 다가온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전 출전 문제를 놓고 대한축구협회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한번도 부딪혀 본적이 없는 북한 축구와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하는 부담과 함께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의 참패(체코, 브라질, 이집트에 연속 패함)로 인한 국제대회 자신감 결여도 문제였다.

한국은 예선전에 출전하기 위하여 FIFA에 출전 신청을 했었으나 도쿄 올림픽에서의 충격적인 패배와 맞물려 침체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자 예선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한 끝에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예선 대진이 결정된 뒤여서 FIFA로부터 중징계를 받고 벌금 5천 달러를 지불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지역예선에 참가한 북한 축구는 본선진출의 쾌거를 이룩함과 동시에 본선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 축구계를 경악시키는 주인공이 되었는데....




< 다음편에 계속>




정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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