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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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이창호에게 배워라

기사입력 2005.03.30 01:26 / 기사수정 2005.03.30 01:26

최수민 기자

모든 세계대회가 다 그렇듯 국가대항전이란 언제나 국민들의 기대와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다. 우승을 하면 대중들은 열광하며 자긍심을 느끼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걱정과 염려로 시작된 여론은 분석과 비판으로 넘어가고 결국 책임과 추긍에까지 이르게 된다. 30일 우즈벡전을 앞두고 지금 한국축구는 이런 국민적 매커니즘에 휩싸여 있다.

최근 농심배와 춘란배의 잇따른 우승으로 이창호 열풍은 재조명되었다. 단순히 바둑을 잘하는 세계 일인자라는 인식을 벗어나 사회 문화적으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97년 IMF라는 경제위를 맞았을 때에는 검소함과 근면함 등을 들어 이창호를 배워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더니(연 10억의 수익을 올린 이창호는 얼마전까지 지하철을 이용했다) 이번에는 과거사법 등의 쟁점법안에 대해 주고받던 국회에서까지 이창호 9단을 배우라는 언급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라 이창호는 늘 배우고 닮아야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바둑계에서도 최고의 인품으로 추앙받는 이창호가 바둑을 벗어나서까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정상이 되려면 이창호의 자기관리부터 배워라

"이창호는 바둑 실력 뿐 아니라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면모를 보인다. 이기더라도 쉽게 자만하지 않고 지더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우승을 차지해 이제 좀 쉴만도 하련만 언제나 묵묵하게 변함없는 자세로 바둑에 몰두한다. 중국 기원의 원장인 천주더는 ‘중국 기사들은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면 나타해져 성적이 바로 하락하기 부지기수다. 이창호의 철저하게 자기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5일 있었던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원정경기는 한마디로 완패였다. 대한민국의 축구는 기복이 너무 심하며 이것은 실력이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언제 기우뚱할 지 모르는 경기 결과는 축구팬들을 늘 불안하게 하고 선수들은 위축된 플레이를 하게 된다. 선수의 정신력과 자심감만 있다고 해서, 또는 감독의 전술력만 뛰어나다고 해서 그 많은 홈 관중들의 야유를 이겨낼 방법은 없다. 전 대회의 승패가 다음 경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중요한 이야기다.

이창호의 '자기 관리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승리를 해도 자만하지 않고, 완패를 당해도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창호의 위기 관리 능력

"슬럼프니 권태기니 하는 등의 기사를 보아도 크게 상처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들이 많이 걱정을 했다. 나는 자극이 되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이창호는 연초 1승 5패의 저조한 승률을 보이며 슬럼프 혹은 권태기라는 주위의 우려를 받았다. '독사' 최철한 9단은 올 1월에 있었던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우수상을 받은 이창호 9단은 당시 충격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그 뿐 아니라 최철한 9단과의 국수전에서 3-0으로 패하는 등 이창호 9단의 내리막 길은 멈출 줄 몰랐다. 이창호의 전성기는 그대로 지는 듯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이창호의 '나는 아무 문제없다'는 어느 인터뷰에서의 발언이었다.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고, 그저 신예기사들의 실력이 뛰어날 뿐이라는 발언은 비단 겸손함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조급해하지 않은 그의 위기 대처 능력은 많은 팬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었고 결국 그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대부분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로지 우승만을 위한 장밋빛 성공만을 꿈꾸며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패배로 인한 큰 충격이 실제로 슬럼프로 다가올 수도 있다. 대표팀이 과연 이번 사우디전의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는 우즈벡전을 앞두고 중요한 사안이다.

바둑은 일수불퇴, 즉 한번 놓으면 물릴 수 없는 게임이다. 그러나 바둑에는 복기라는 것이 있다. 승패가 이미 결정된 바둑판을 승자와 패자가 함께 분석하는 복기야 말로 우리 한국축구가 배워야할 가장 큰 가르침이다. '실패에서 배우라'는 말이 있듯이 다음 경기에는 이번과 같은 실수가 없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대항전에 강하다! 

이창호의 우승을 살펴보면 유독 단체전에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올해의 농심신라면배의 우승을 꼽을 수 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6연패. 이창호가 패하면 한국의 승리는 없었다. 축구로 말하면 국가대표 선수로 나간 셈인데 개인전보다 국가전의 승률이 더 높다는 것은 얼마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대국에 임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 대표인 선수 누구나 국가와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자 노력하겠지만 흐트러짐 없는 승부 근성을 갖추는 일이란 쉬운 것은 아니다.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어느 때보다도 큰 책임감과 근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책임감을 느끼고 경기에 임한다면 무기력한 플레이나 약팀을 쉽게 보는 자세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패배했을 때마다 나오는 선수들의 정신력 문제나 감독의 전술적 패배라는 비판은 더이상 회자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승할 확률이 아주 희박한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우승을 하기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창호가 많은 슬럼프과 권태기라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오직 실력으로 말해주었듯이 축구대표팀 또한 플레이로 말해주어야만 할 것이다. 하루 빨리 패배의 충격을 딛고 일어서 후유증을 극복해 이번 우즈벡전에서 통쾌한 승리를 이뤄내길 기대해 본다.



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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