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8.17 13:53 / 기사수정 2008.08.17 13:53
[엑스포츠뉴스=션양, 박형진 기자] 패배에도 '스타일'이 있다.
16일 션양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에서 카메룬은 브라질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0-2로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알베르 바닝이 퇴장을 당한 상황에서 10명의 카메룬 선수는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을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카메룬의 경기력은 브라질 유니폼과 국기를 들고 브라질을 응원하는 중국 관중마저 사로잡았다. 션양 올림픽 스타디움의 중국 관중은 카메룬의 투지에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승자 브라질보다 '멋지게 패한' 카메룬에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실망스러운 브라질, 중국 관중도 야유
경기 시작 전 션양 올림픽 스타디움은 그야말로 브라질의 홈구장 같았다. 중국 관중은 브라질이 자국 대표팀을 0-3으로 꺾었다는 사실을 금세 잊은 듯, 브라질 유니폼을 입고 브라질 국기를 흔들며 "짜요, 빠시(화이팅, 브라질)"를 외쳤다.
중국 관중에게 가장 많은 환호를 받은 선수는 역시 호나우디뉴였다. 경기 전 동료와 간단한 훈련을 위해 경기장으로 나온 호나우디뉴는 중국 관중의 열렬한 환호에 여러 차례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중국 관중은 호나우디뉴의 얼굴이 전광판에 나오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보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하면서 상황은 서서히 변해갔다. 브라질은 카메룬의 파워와 밀집수비에 밀리며 공격다운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3선의 간격을 좁게 가져간 카메룬은 브라질 공격수에게 쉽게 공간을 내주지 않았고, 답답한 브라질은 롱패스 위주의 의미 없는 시도만 계속할 뿐이었다.
전반전 막판으로 갈수록 "짜요, 빠시"의 함성은 잦아들어만 갔다. 결국, 전반전 45분이 0-0으로 끝나자 중국 관중은 박수 대신 야유를 보냈다. 브라질의 멋진 경기를 보기 위해 힘들게 표를 사 입장한 중국 관중이 실망감을 드러낸 것이다.
"짜요, 카메룽"을 이끌어낸 카메룬의 '투지'
전반전 45분 내내 경기를 주도하며 선전한 카메룬에 위기가 찾아왔다. 후반 6분, 카메룬의 알베르 바닝이 두 번째 경고를 받으며 퇴장을 당한 것. 체격과 힘의 우위를 이용해 브라질을 밀어붙이는데 훌륭한 역할을 한 바닝이 퇴장당하며 카메룬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어느새 중국 관중은 브라질이 아닌 카메룬편이 되어있었다. 바닝이 퇴장당한 직후 곳곳에서 "짜요, 카메룽" 함성이 들리더니, 이윽고 서로 뜻을 확인한 중국 관중이 하나가 되어 "짜요, 카메룽"을 외쳤다. 4만여 명의 관중이 함께 카메룬을 응원하자 션양 올림픽 스타디움은 금세 카메룬의 홈구장으로 변했다.
브라질의 플레이에 일희일비하던 중국 기자들도 어느새 카메룬편이 되어있었다. 중국 관중 역시 브라질이 공을 잡고 돌리면 어김없이 야유를 보냈고, 카메룬이 역습을 전개할 때면 박수와 환호성으로 응원을 보냈다. 심판 판정이 브라질에 유리하게 돌아가면 심판에게도 야유를 보냈다.
0-0으로 경기를 마친 후 연장전에 들어간 브라질은 연장 전반 11분, 카메룬 수비가 느슨해진 틈을 노린 하파엘 소비스의 골로 앞서갔다. 100분을 잘 버틴 카메룬은 한 골을 실점하자 정신적으로 무너지며 연장 전반 15분 마르셀로에게 또 한 골을 허락하고 말았다. 중국 관중은 멋진 골을 성공시킨 브라질 선수에게 박수를 보냈지만, 끝까지 투지를 보여준 카메룬 선수에 더 많은 응원을 보냈다. 브라질이 골을 넣은 후 자리에서 뛰어나 펄펄 뛴 사람은 기자석의 한 '브라질팬' 중국 기자뿐이었다.
패배에도 당당했던 카메룬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던 카메룬은 결국 8강에서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카메룬은 누가 보기에도 브라질을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멋지게' 패했다. 믹스트존을 지나 버스로 돌아가는 카메룬 선수의 눈에도 브라질을 상대로 당당히 겨루었다는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카메룬의 측면 수비수로 출전한 니콜라 은쿨루는 "나는 오늘 호나우디뉴를 잘 막아냈다. 우리는 브라질을 이길 수도 있었지만 퇴장 후 팀 조직이 완전하지 못했다. 다음번에 브라질과 경기를 한다면 그때도 호나우지뉴를 잘 막아낼 자신이 있고, 그때는 브라질을 꼭 이길 것이다"고 말해 패배에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한 중국 관중 역시 "카메룬이 참 잘했다. 원래 브라질과 호나우디뉴를 보러 왔지만 생각보다 실망이더라"며 카메룬의 선전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친구들과 카메룬의 인상적인 경기력에 대해 논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패배에도 스타일이 있다. 카메룬의 '멋진 패배'는 뒷걸음만 치다 세 골을 실점하고 고개를 숙인 이탈리아전의 한국 올림픽대표팀을 떠올리게 했다. 박성화 감독과 올림픽대표팀도 자신감과 투지로 이탈리아에 맞섰다면, 지금쯤 인천공항이 아닌 션양에서 그들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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