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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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야구] 무너지다 그러나 살아남다

기사입력 2008.08.14 00:36 / 기사수정 2008.08.14 00:36

윤문용 기자

▶ 무너진 한국의 마무리 한기주
 
6대 4로 9회를 맞은 한국, 8회를 막고 내려간 김광현(SK)을 대신해 마무리 한기주(KIA)가 올라왔다. 9회 초를 잘 막아내면 9회 말 공격 없이 이길 수 있는 상황. 한기주는 최고구속 158km(98마일)로 한국대표팀 투수 중 가장 빠른 공을 자랑한다. 그러나 트리플A 선수가 주축을 이룬 미국 대표팀에게 한기주의 패스트볼은 통하지 않았다.

100마일(161km) 피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미국 마이너에서 뛰는 타자들에게 수준급 변화구 없이 단순 패스트볼 로케이션으로는 상대하기 쉽지 않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기주는 헤스먼에게 홈런, 이어 티거든-바든에게 안타와 2루타를 허용. 6대5 한점 차에서 무사 주자 2-3루의 절대적 위기를 만든다. 한기주가 내려가고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에 모두 능통한 윤석민이 올라오지만, 2사까지 잘 막아내고는 결국 상대 4번 타자 브라운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허용. 한국은 9회 초에 승리를 눈앞에 두고 6대 7로 역전당하고 만다.

한기주는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3피안타 3실점(3자책)의 뼈아픈 기록을 남겼다. ‘돌부처’ 오승환(삼성)이 좋지 못한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마무리 역할을 맡아줘야 할 한기주가 예선 첫 경기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걱정스럽다.
 
 
▶ 그림 같은 역전승을 이끌어낸 대타 정근우-이택근
 
9회 초 불의의 역전을 당해 먹구름이 자욱이 드리운 한국팀. 선두타자 박진만(삼성)을 대신해서 정근우(SK)를 대타로 내세웠다. 9회 초 투수교체에 실패한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 그 승부수는 기적처럼 들어맞았고 정근우는 상대투수 제프 스티븐스의 패스트볼을 그대로 잡아당겨 좌익선상 2루타를 만들어냈다. 한국팀에게 드리운 먹구름이 미국으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이후 김현수의 2루 땅볼 때 3루까지 진루. 정근우는 1사 3루의 득점찬스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김경문 감독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데, 9번 타자 고영민(두산)에게 초구 기습번트를 시도, 실패 이후에 과감히 대타 이택근(우리)을 기용한다. 볼 카운트 원스트라이크 노 볼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택근은 차분히 공을 고르면서 2-3 풀카운트까지 승부를 끌고 간다. 그리고 타격해 느린 2루수 앞 땅볼을 굴리고 3루 주자 정근우는 거리낌없이 홈으로 파고든다. 2루수 닉스의 송구가 우측으로 잠시 치우친 사이 정근우의 왼손은 홈플레이트를 스치듯이 지나치며 7대7 동점을 만든다.

7대7 동점에서 다시 1사에 주자는 1루, 투수 스티븐스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견제를 위해 1루로 던진 공이 악송구가 되고 만다. 그 사이 이택근은 거침없이 2루를 돌아 3루까지 갔고, 사실상 여기서 경기는 역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이종욱이 짧은 희생플라이를 날리고 이택근은 다시 한번 거침없이 홈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승리에 환호했다.
 
▶ 논란을 잠재운 호투와 홈런
 
임태훈(두산)의 컨디션 난조로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한 윤석민,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암담한 9회 초 무사 주자 2-3루에 등판해 송곳 같은 슬라이더, 체인지업 제구로 연속 삼진을 잡아낸다. 비롯하여 브라운에게 역전 2루타를 허용했지만, 윤석민이 던진 공 중 딱 하나의 실투였을 뿐이다. 윤석민은 자신이 왜 대표팀에 선발되어야 하는지, 왜 자신이 대표팀에 필요한지를 자신의 투구로 스스로 증명해 냈다.

이번 시즌 몸무게 조절에 실패하며 부진했던 이대호(롯데), 선발 당시 극악의 타격 컨디션으로 동갑 라이벌 김태균(한화)이 선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그러나 쿠바와의 평가전에서 홈런을 기록하는 등 타격 페이스를 끌어올렸고, 오늘 경기에서 2회 말 상대 선발 나이츠를 상대로 역전 투런홈런을 날리며 왜 자신이 대표팀으로 선발되었는지를 홈런으로 보여주었다.

대표팀 발표 이후 가장 시끄러웠던 두 명의 플레이어가 오늘 경기에서 홈런과 호투로 자신의 존재 가치와 그러한 걱정이 기우였음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 컨디션이 좋지 못한 박진만
 
제1회 WBC에서 한국은 일본과 미국을 격파하며 4강에 올랐고, 세계 야구 팬들은 한국의 유격수 박진만(삼성)의 수비에 극찬을 보냈다. 박진만은 지난 10년간 한국야구대표팀 유격수 자리를 맡아서 고비 때마다 그림 같은 수비로 수많은 위기를 넘겨 온 슈퍼 플레이어. 그러나 베이징올림픽 유격수 자리에 들어선 박진만은 좋지 않아 보였다. 나이와 잦은 부상으로 저하된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습이다.

2회 초 라포타가 친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1루에 높게 송구하는 에러를 범했다. 아주 평범한 땅볼 타구에 1루수 키를 넘기는 악송구, 박진만에게 찾아보기 참 힘든 그림이다. 특히 국제대회 박진만에게서는 더더욱 찾기 힘든 모습이었다. 9회 초 바든의 유격수 옆을 스치는 2루타도 예전의 박진만이라면 잡아냈을 타구, 그러나 무뎌진 풋워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또한, 타석에서도 3타수 무안타, 예전같지 않은 타격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컨디션이 계속된다면 박진만보다는 정근우를 선발 출장, 주전 유격수로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가슴이 답답해지는 심판의 판정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한국은 미국에 두 번의 패배를 당했고, 두 번다 석연치 않은 판정에 울분을 토했다. 8년이 지난 오늘 경기에서도 심판의 판정이 야구를 지켜보는 팬들의 뒷골을 잡게 하였다.

3회 말 이종욱은 2루로 쏜살같이 달렸고, 2루수 닉스의 글러브가 이종욱의 몸에 닫기 한참 전에 2루 베이스를 터치했다. 그러나 그걸 바로 앞에서 본 2루 심판 말콤 마카이(호주)는 아웃 콜을 불렀다. 두 번, 세 번을 리플레이로 돌려봐도 그것은 명백한 세이프였다.

주심 알베르토 라미레즈(멕시코)는 중요한 볼 카운트마다 한국 투수의 스트라이크 꽉 찬 공을 볼로 판정, 이후에 볼을 던지는데 어려움을 가져오게 했고, 그로 인해 정대현은 시어홀츠에게 홈런을 허용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본선 1차전, 미국과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한국, 강팀 미국을 첫 경기에 잡아내면서 이후 중국, 캐나다, 일본과의 대결에 다소 여유를 갖고 임할 수 있게 되었다. 4강 진출의 5부 능선을 넘은 모습이다. 앞으로의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꼭 8년 만에 메달 획득을 이루어내기를 바란다.



윤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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