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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웅 세터가 짊어져야 할 짐

기사입력 2008.07.17 11:08 / 기사수정 2008.07.17 11:08

하완수 기자




[엑스포츠뉴스=하완수] 무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요즘 월드리그에서 세계적인 강 팀들과 연일 분전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보고 있자면 뿌듯한 기분과 동시에 안타까운 기분이 동시에 교차하곤 합니다. 시합을 볼 때마다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겠다.'라는 설렘과 시합을 끝난 뒤 역시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결정적인 순간을 이겨내는 힘의 차이라는 것을 알 때마다 밀려오는 허탈감을 월드리그를 보면서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월드리그가 진행되면서 배구팬들 사이에서 최태웅 세터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한편은 ‘최태웅 세터 정도 되니까 이나마 우리 팀이 분전할 수 있다.’라는 의견과 ‘최태웅 세터의 토스가 너무 문성민에게로 집중되어서 문성민 선구가 혹사당할 뿐만 아니라 박빙의 시합을 자꾸 놓치는 원인이 되고 있다.’라는 두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잘 통하는 곳은 막힐 때까지


여기서 잠시 과거의 얘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잠시 기억의 필름을 10여 년 전으로 돌려봅시다.


[case1]

1992년 월드리그 한국과 브라질의 시합 세트스코어 2-2 마지막 5세트. 이때 한동안 한국배구판을 떠들썩하게 한 오욱환이 화려하게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신영철은 5세트 시작 전 오욱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낮게 쏜다. 항상 준비하고 막힐 때까지 간다."


그 후 5세트 동안 15점 중에 9점을 오욱환이 그것도 백어택으로 6점을 뽑아내며 기적의 승리를 일구어낸다. 속된 말로 신영철은 대놓고 오욱환에게 공을 띄웠다. 공격실수 2개 외엔 막히지 않았다. 참고로 이 시합의 레프트는 역대 한국의 최고공격수로 꼽히는 하종화 선수였다.


[case2]

1996년 월드리그 한국과 중국의 2차전 전날 손쉽게 중국을 제압했던 한국이 1세트에 어이없이 무너지면서 2세트도 7-2로 뒤지고 있는 상황. 이 날의 수훈선수는 김세진이였다.이 당시 신치용 국대 코치는 이렇게 얘기한다.


'방법 없다. 세진이만 써라. 막힐 때까지 써봐라.'


이후 김세진은 연속 11개의 공격을 시도한다. 속된 말로 신영철 또 대놓고 띄웠다. 김세진 12번째 공격을 아웃 때리면서 다음 공이 박희상에게 넘어갔지만 11개 때리는 동안 한국은 9-7로 역전한다.


세계최고의 세터로 불리었던 신영철 선수가 과연 토스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아님, 다른 선수들이 무게감이 떨어져서 한 명에게만 토스를 했을까요?


아마추어 대회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9인제에서 보통 4-5명이 공격을 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평상시만큼 하는 선수, 평상시보다 못하는 선수, 그리고 그날 통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시합 중에 보통 한 명씩 토스를 올려보면서 통하는 선수를 찾습니다.


만약 그 선수를 찾아내면 거의 대놓고 띄울 정도로 공을 많이 보냅니다. 그리고 그 선수를 제대로 찾아낸 날에는 팀의 성적이 달라집니다. 공격수가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그 선수를 잡기 위한 블로커들은 맘이 급해지고 초조해져서 블로킹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번번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공격수들의 리듬은 자신감이 올라가면서 점점 좋아집니다. 그렇다 보니 9인제 배구에서는 가끔 공을 올리다 보면 4인 블로킹이 뜨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 통하는 선수는 4인 블로킹조차도 뚫습니다.
 
다른 선수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포인트의 순간에는 이 선수를 이용합니다. 이렇게 한 명의 선수에게 편중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연습이 아니라 시합이기 때문입니다.


최태웅 세터는 팀을 위해 충실하고 있다.


시합을 하는 동안은 이 선수가 혹사를 당하고 안 당하고는 부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팀이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의 문제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배구라는 스포츠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한 팀이 공의 보유가 3회로 제한되어 있고 그 횟수 중 한번은 꼭 세터가 공을 맡아야 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만큼 세터의 결정이나 생각이 시합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책임의 절반은 세터가 지고 있으면서 그 시합이 잘하면 승리로 이끌 수 있겠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개인의 능력을 따지기보다는 포인트를 올려줄 수 있는 한 명의 선수가 더 중요합니다. 한 번의 상대를 속이는 번득이는 토스보다는 맘 편하게 정확히 토스해서 공격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선수가 더 필요합니다.


최태웅 세터의 판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시합을 보면 쿠바전에서는 부진했던 신영수 선수가 공격의 주포로서 이용되는 경우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선규 선수가 공격의 활로를 뚫어주는 경우도 쿠바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합을 통틀어 볼 때 가장 기복이 심하지 않았던 선수가 바로 문성민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문성민의 공격횟수와 득점이 편중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최태웅 세터는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경기의 맥을 끌어갈 수 있는 선수를 잘 찾아내서 이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로 판단 내릴 수 있습니다. 시합 동안 선수들의 리듬이 바뀌고 경기의 흐름이 바뀌게 되는데 그때마다 잘 통하는 선수를 끌어내는 능력은 국내 세터들 가운데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합을 보는 팬들은 한 명의 선수가 혹사당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경기를 보게 되고 실제로 시합을 뛰는 선수들은 개인의 희생으로 일구는 승리의 기쁨을 갈구하게 됩니다.


바로 최태웅 세터가 짊어져 하는 짐이 승리에 대한 책임감이며 '그날의 통하는 선수'를 잘 선택해 팀을 위한 1점을 올려야 하는 책임감입니다. 아마 이번 주말에 펼쳐지는 러시아와의 일전에서도 우리는 문성민 선수가 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문성민 선수의 혹사에 대해 또다시 걱정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팀의 1승을 만들어 내기 위해 코트에 서게 되는 최태웅 세터의 가슴에도 좀 더 큰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진 (C) 대한 배구 협회]


하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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