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재호 기자] 아스날의 감독 아르센 웽거는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기로 유명하다. 아스날의 경기당 선발 멤버의 평균 연령은 대체로 25세 전후.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젊은 선발진을 구축하고 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을 둘러보아도 다른 팀에 비해 비교적 젊다. 이제는 아스날의 중심이 된 세스크 파브레가스, 마티유 플라미니 등은 모두 20대 초반이며, 현재 1군 멤버 중 30세가 넘은 선수라고는 필드 플레이어 중에서는 윌리엄 갈라스, 질베르투 실바 단 둘 뿐이다.
문제는 젊은 팀을 유지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나이가 든 선수들의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 로베르 피레, 파트리크 비에라, 티에리 앙리, 프레드릭 융베리 등 한때 팀의 핵심을 이루었던 선수들은 현재 모두 다른 팀에서 뛰고 있다. 이들이 팀을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을 모두 떠나보낼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가장 큰 원인은 웽거의 철학에 있다. 웽거 감독은 짧은 패스를 재빠르게 연결하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축구를 추구하며, 이미 선수로서 완성되어 다른 전술이 몸에 밴 선수들은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이유로 어린 선수들을 영입하여 그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주입시키고 익히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주어야 할 많은 기회는 노련한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생겨났고 베테랑 선수들은 본의든 타의든 이적을 원하게 됐다.
젊은 선수들로 새로운 팀이 만들어진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웽거의 이런 팀 운영 방침은 선수층의 두께를 얇게 만드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간단히 다른 프리미어리그의 '빅4'팀들을 비교해 보자. 대부분의 팀들은 선수층이 두껍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2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두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 뛸 수 있는 선수는 폴 스콜스, 안데르손, 마이클 캐릭, 오웬 하그리브스, 대런 플레쳐, 그리고 멀티요원인 존 오셰이까지 무려 6명이나 된다. 게다가 주전과 비주전 사이의 능력차이도 그리 큰 편이 아니다.
첼시는 현재 4-3-3을 가동하고 있는데 중앙 미드필더는 마이클 에시앙, 클로드 마켈렐레, 미하엘 발락, 프랭크 램파드, 존 오비 미켈 등 5명, 최근 출전기회를 받지 못하는 스티브 시드웰까지 합하면 6명이나 된다. 리버풀도 마찬가지. 최근 4-5-1을 채택하고 있는 리버풀은 한때 베니테즈가 지나친 로테이션 정택으로 비난을 받았을 정도로 선수층이 풍부하다.
반면 아스날은 전 포지션에 걸쳐 선수층이 너무 얇다. 물론 위에서 예로 든 나머지 세 팀에게도 선수층이 비교적 얇은 포지션은 존재한다. 하지만 아스날은 전 포지션에 걸쳐 선수층이 얇은 것 뿐 아니라 주전과 비주전간의 격차도 비교적 심한 편이다.
이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경기가 지난 리버풀과의 3연전이다. 리그전에서 리버풀은 팀의 핵심 선수인 스티븐 제라드와 페르난도 토레스를 모두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었지만 아스날은 기용할 수 있는 주전 멤버를 모두 가동해야만 했다. 달리 믿을만한 백업요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결국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리버풀이 아스날을 공략한 좋은 약점이 되었다.
특히 리버풀의 라이언 바벨의 마지막 득점 장면을 보면 이 차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마지막까지 바벨을 뒤쫓다가 결국 힘에 부쳐 넘어진 세스크는 아스날이 현재 무엇이 문제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기전인 챔피언스리그 뿐이 아니다. 장기전인 리그에서도 현재 아스날은 주전들의 피로 누적과 부상으로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볼튼과의 경기에서 드디어 무승의 사슬을 끊었지만 3연전의 부담 속에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는 핵심 선수를 제외한 리버풀에게 1-1의 무승부. 이제는 우승은 커녕 2위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첼시부터 넘어야 하는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물론 부상은 감독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오랜 기간 리그를 치르게 되면 ,특히 아스날과 같이 여러 대회를 동시에 치뤄야 하는 빅 클럽의 경우, 당연히 피로가 누적된다. 이를 위해 주전과 비주전을 적절히 투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리버풀의 베니테즈 감독의 경우 이 로테이션이 지나치게 과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반대로 웽거 감독의 경우 지나치게 주전에만 의존하는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시즌 후반에 접어들어 선수들의 피로가 심해지면 부상은 더 쉽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스날 선수들의 이런 부상은 반쯤은 웽거 감독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스날은 이미 3시즌 동안 무관에 울었고 이번 시즌도 FA컵과 칼링컵,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탈락했으며 리그에서도 부진한 상황. 이대로라면 4시즌 연속 무관으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도 농후하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웽거 감독은 젊은 선수들에게 신뢰를 보이며 다음 시즌에도 큰 영입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과연 웽거 감독이 팬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이적시장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다음 시즌에야말로 아스날이 얇은 선수층을 무릅쓰고 뒷심을 발휘하며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지 웽거 감독의 행보에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