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3.31 16:02 / 기사수정 2008.03.31 16:02
지난 시즌, 여자 프로배구에서 풀린 FA의 두 대형 선수인 이숙자와 정대영을 모두 영입했던 GS 칼텍스는 드래프트 1순위의 국가대표 선수 배유나까지 포섭해 지난 시즌에 비해 가장 전력이 상승한 팀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시즌 초까지만 해도 ‘신데렐라 팀’은 GS 칼텍스가 아닌 지난시즌 최하위 KT&G 아리엘스였고 오히려 GS 칼텍스는 ‘동네북 팀’으로 전락해 시즌 초반까지 전패를 기록하던 현대건설에게 조차 첫 1승 헌납 팀이 되는 수모까지 겪었습니다.
베테랑 세터인 이숙자와 한국 최고의 미들블로커로 평가받는 정대영, 여기에 기존 양쪽 날개를 책임지고 있던 김민지와 나혜원에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의 공격수인 노장 하께우가 가세한 GS 칼텍스는 선수 구성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우승후보로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 개개인의 팀워크는 유기적으로 조합되지 못해 팀원들 간에 서로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흥국생명의 구기란과 더불어 가장 경력이 많은 리베로로 평가받고 있는 남지연을 중심으로 한 수비 조직력은 그야말로 허술한 모습을 노출하고 있었으며 새로 가입한 배유나의 리시브 불안과 기존의 김민지와 나혜원, 그리고 부상의 여독에서 풀리지 않은 정대영마저 수비력에서 부진을 노출해 기본적인 조직력을 만들 첫 단추가 미완성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기대 속에 영입된 세터 이숙자는 발목과 어깨부상의 여파에 새로운 팀원들과의 호흡이 좀처럼 맞지 않았습니다. 이숙자 특유의 점프 토스에서 나오는 정확성과 스피드가 상실된 극심한 토스 부진은 팀의 공격 성공률이 20%대로 낮아지는 양상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여자배구의 조직력의 좋은 예는 KT&G 아리엘스를 들었고 그 반대의 대표적인 팀은 바로 GS 칼텍스였습니다. 시즌 중반에 가서도 팀의 부진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가 사령탑인 이희완 감독마저 위암 수술로 벤치를 지키지 못하는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최악의 상황 속에서 모래알 팀을 다시 추스르고 선수들 간의 화합을 도모한 것은 바로 이성희 수석코치의 공로입니다. 고려증권 선수시절, 팀 내에 이렇다할 거포가 부족했던 고려증권은 바로 끈끈한 수비조직력에 주전세터였던 이성희의 자로 잰 듯한 빠르고 정확한 토스를 앞세워 '초호화 군단' 현대자동차를 압박해갔습니다.
고려증권이 해체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도 많은 배구 팬들의 기억 속에 그들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근성 있고 생각하는 배구를 했던 선수들이 바로 고려증권의 팀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힘든 상황 속에서 감독의 빈자리를 대신해야 했던 이성희 코치는 우선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GS 칼텍스의 어려운 상황을 설득력 있게 부인하며 지금의 상황이 어떻든 반드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시즌 중반부터 철저하게 플레이오프를 위해 팀의 완성해갔다는 것입니다. 시즌 초까지만 해도 모래알 팀이었던 GS 칼텍스는 서서히 강팀이 갖추어야 할 면모를 하나둘씩 습득해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팀의 기둥인 이숙자와 정대영이 부상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새로운 팀원들과의 호흡에 익숙해지면서 그동안 수차례 문제시됐던 GS 칼텍스의 조직력은 조금씩 윤곽이 맞춰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숙자와의 호흡문제로 인해 그리 위력적이지 못했던 하께우의 공격력마저 점차 위협적으로 변모해갔습니다. 또한, 정대영이 공수주에서 많은 부분을 제대로 책임져 줬던 것이 팀의 상승력을 가져왔으며 김민지와 나혜원도 이숙자와의 약속된 플레이에 점차 능숙해져 갔습니다.
여기에 리베로인 남지연을 위시한 수비조직력은 챔피언 결정전에 왔을 때 빛을 발했습니다. 선수들이 흥국생명의 주포 김연경의 볼이 어느 방향으로 떨어질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며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 수비력은 흥국생명이 그토록 자랑하던 윙스파이커들의 공격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성희 코치가 밝혔듯,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을 위해 시즌 후반부터 체력 훈련에 매진해 온 것은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챔피언 결정전에 오면서 조금씩 상승해가던 GS 칼텍스가 완성된 단계로 접어들던 것에 비해 흥국생명은 모두 체력적으로 떨어져 있었으며 공격은 물론, 서브와 블로킹, 그리고 수비와 세터부분 마저 모두 정규리그에 비해 하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을 대비해 가장 치밀하게 준비하고 팀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한 GS 칼텍스는 이번 시리즈에서 모든 면에서 흥국생명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비해 흥국생명은 최종 챔피언 전에 대비한 준비가 여러모로 소홀해 보였습니다. 우선 김연경의 부상 논란과 체력고갈에 대한 논란은 둘째로 쳐도 나머지 황연주를 비롯한 선수들도 모두 점프 높이와 스피드가 정규리그에 비해 떨어져 있었으며 특히 집중력 저하로 인해 생긴 범실 남발은 끝내 팀이 자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감독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모래알 팀을 점차 융화시켜 갔던 이성희 코치에 비해 김연경과 황연주란 국내 최고의 양쪽 공격수, 여기에 이번 시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신인들까지 데리고 있던 흥국생명의 황현주 감독은 지난 챔피언 결정전에서와 비슷한 시간 끌기 식의 항의를 또다시 시도하다가 끝내 경기 퇴장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챔피언전을 앞두고 준비해온 팀의 확연히 다른 모습, 그리고 최종전에서 보인 양쪽 사령탑들의 극명한 명암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올바르게 준비해 온 팀과 정규리그에서 지나친 승률에 집착한 나머지 최종 챔피언전 대비에 완성도가 떨어졌던 팀. 그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중하게 팀을 이끌어온 지도자와 많은 부분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지도자의 명함은 이렇게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번 챔피언 결정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라고 말하지만 챔피언 전을 앞두고 걸어온 과정을 생각한다면 결코 이변이 아닌 뿌린 만큼 거두는 팀의 승리란 진리가 다가옵니다.
<사진 = 대한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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