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무안, 조희찬 기자] '지옥의 레이스'가 펼쳐지는 이곳, 무안에는 오직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한다.
19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016 정규투어 시드순위전 본선이 열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CC는 명성 그대로였다.
시드전의 현장 분위기는 방문 전부터 익히 들었다. 어느 정도 예상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도착한 클럽하우스 앞에는 평소 비표를 검사로 가로막던 경호원이 없었다. 지옥에는 문지기가 없다는 걸, 이때 알았어야 했다.
무표정의 골프장 직원들이 앉아 있는 프런트 데스크를 지나 식당으로 올라갔다. 식당에는 약 60명의 인원이 저마다 식탁을 잡고 짝지어 앉아 있었다. 식탁에는 음식 대신 서류, 그리고 망원경이 보였다.
식당 앞쪽 창문에는 선수 부모들이 각자 가져온 망원경을 창문에 대고 코스 쪽을 훑고 있었다.
이날까지 열린 본선 1~3라운드, 그리고 20일 열리는 최종라운드 성적을 통해 다음 시즌 정규투어 시드 순위가 가려진다. 통상 시드순위전에서 50위 내에 들어야 내년 열리는 정규투어 대회에 안정적으로 참가할 수 있다. 50위권 밖으로 밀려나면 전대회 출전이 불투명하다.
4일간의 성적으로 모든 게 결정된다. 이번 대회에서 안정권에 들면 다음 해 억대 연봉을 꿈꿀 수 있다. 여기에 최소 수천만원의 스폰서의 지원도 가능하다.
그 밑은 처참하다. 2015시즌 정규투어 상금왕 전인지가 약 9억 1370만원을 벌어들일 때, 드림(2부)투어 상금왕 박지연이 1년 내내 약 8300만원을 벌어들였다. 레슨비, 숙소 비용 등을 고려하면 남는 게 없다. 4일, 96시간 안에 내년 삶의 질이 결정된다. 그래서 '지옥의 레이스'다.
선수들은 예민해진다. 갤러리 통제는 물론이거니와, 선수 부모들조차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코스 내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들이 먼발치에서 망원경 렌즈를 통해서라도 딸의 얼굴을 애타게 찾는 이유다.
오후 3시 20분. 9시부터 18홀 '샷건'으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하나둘씩 경기 접수처로 되돌아왔다. 한 카트에는 총 5명씩 타고 있었는데, 4명의 선수와 그들을 하루 종일 챙긴 캐디 1명까지 총 5명이다. 카트에서 내리는 선수들의 표정은 저마다 달랐다.
스코어 접수처까지 마중 나온 부모들은 딸에게 선뜻 말조차 건네지 못한다. '잘 쳤니'라고 짧게 묻는다. 딸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선수가 접수처로 들어가자 선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캐디를 붙잡는다.
"우리 딸 잘 쳤어요?"
머쓱해진 캐디가 스코어카드를 보여준다. 중년 여성의 입에선 "(타수를) 줄여도 모자란데, 하…"라고 탄식했다. 선수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스코어카드를 슬쩍 보더니 담배를 물고 구석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옆이 시끌벅적해졌다. 특정 브랜드 옷으로 맞춰 입은 용품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선수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30대로 보이는 이 남성들은 짐을 챙기고 있는 선수에게 "잘 지내셨어요"라고 물었다. 선수는 "내일까지 잘 치면 연락 드릴게요"라는 동문서답과 함께 황급히 자리를 떴다.
옆에 있던 골프업계 관계자는 "골프업계 스폰서, 매니지먼트, 용품 업체들은 평소 눈여겨보고 있는 선수들과 여기서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잦다. 3라운드부터 순위 윤곽이 나타나니 영입 물밑작업이 시작된다. 물론 그것도 성적이 좋을 때 이야기다"라며 "이미 드림투어에서 상금순위(1~6위)로 시드권을 확보한 선수 등은 계약이 돼 있다. 그 밑의, 가능성 있는 선수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여기서 추가로 뽑는다"고 했다.
선수들은 이미 경기가 끝나기도 전, 성적에 따른 관심 차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선수는 "짐 싸야겠다. 빨리 집에나 가자"며 부모를 재촉해 자리를 떴다.
오후 4시 20분. 이날 경기에 나섰던 140여명의 선수가 점수 등록을 모두 마쳤다. 하위권은 물론 상위권 선수들도 곧바로 연습그린으로 돌아가 늦게까지 퍼트 감각을 조율했다. 지옥에서 '여유'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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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찬 기자 etwood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