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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보니 '아빠가 차범근'이던 차두리의 이야기

기사입력 2015.11.08 08:55 / 기사수정 2015.11.08 08:57

조용운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조용운 기자] '차범근' 이름 석자가 한국 축구사에 남긴 유산은 결코 작지 않다. 축구 선수를 꿈꾸는 이가 있다면 누구나 차범근(62)을 우상이자 넘어야 할 목표로 삼는다. 

아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선수 생활 내내 차두리(35)도 자신의 변함없는 라이벌로 차범근을 택한다. 차두리에게 기준은 늘 차범근이었고 그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이 숙명이었다.

좀처럼 넘기 어려운 산이니 만큼 차두리의 결과도 패배였다. 현역선수 차두리로 마지막 인터뷰에 나선 그는 축구 인생을 '3-5 패배'로 정의했다. 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10년의 분데스리거 생활로 3골을 넣었지만 결국은 패했다.

당연히 이유는 차범근이다. 차두리는 "축구를 하면서 기준은 차범근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축구를 기준으로 차범근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패한 것이 맞는 것 같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20대 초반만 해도 차두리에게 차범근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월드컵 4강 무대를 밟고 모두가 원하는 독일 분데스리가서 뛰는 차두리에게 차범근 이상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차두리도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차범근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는 겁이 없으니 뭘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차범근이 얼마나 대단했던 선수였는지 알게 됐다"며 "독일에서 3~4년 뛰면서 차범근이 정말 대단했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때 넘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때 차두리는 축구 인생에서 5골을 허용했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결론은 끔찍한 허탈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빠르게 자신을 다잡았다. 차범근은 넘지 못하지만 축구 선수 차두리의 삶을 살기로 노선을 바꿨다. 



차두리는 "모두 차범근처럼 축구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축구가 좋아서 선수가 됐는데 굳이 자책까지 해야하나 싶었다. 이후에는 즐기려고 노력했다"며 "태어나보니 아빠가 차범근이었고 축구를 하다보니 월드컵 4강을 갔다. 그리고 누구나 뛰고 싶어하는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더라. '왜 안 될까'라는 생각보다 '왜 많은 것을 가졌을까'의 감사함을 가지고 운동을 했다"고 전했다. 

차범근을 넘어야 하는 아들에서 마음 편히 축구하는 차두리가 되자 서서히 만회골이 터졌다. 그리고 2013년 서울에 입단하며 선수 마무리를 누구보다 화려하게 마쳤다. 

"서울에 올 때 걱정이 많았다. 팬들의 반대 목소리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차두리는 "그래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고 한국 축구팬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서울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고 모든 선수가 꿈꾸는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설명했다. 

차두리를 떠나보내는 서울 팬들은 슈퍼매치 전반 5분에 일제히 일어나 차두리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은퇴식에서도 이름을 연호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차두리의 끝은 거대했던 차범근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puyol@xportsnews.com / 사진 ⓒ 대한축구협회, 프로축구연맹 제공

조용운 기자 puyol@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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