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박상진 기자]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게임은 '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강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이후 게임은 '하는 것' 만큼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다양한 게임 리그가 생기며 많은 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것이 바로 e스포츠이다.
워게이밍에서 개발한 월드 오브 탱크 역시 e스포츠 종목 중 하나이다. 다른 종목만큼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이고,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월드 오브 탱크다.
월드 오브 탱크 종목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보이며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한 팀이 있다. 현재는 콩두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아르테. 인터뷰 자리에서 거침없는 발언으로 눈길을 끄는 아르테 팀장 '소도둑놈' 송준협 역시 아르테, 그리고 월드 오브 탱크와 함께 동고동락한 선수다.
언제나 한국, 그리고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있던 그는 이번 한국 결승에서 아슬아슬하게 우승을 차지하고, 아시아 파이널에서도 2위에 오르며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프로게이머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 2위라 충격이 있었을 거 같다. 대회 후 어떻게 지냈나.
아시아 리그에서 2위로 마치기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와서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팀원들은 휴식을 주고 나는 팀 리빌딩을 계획 중이다. 새로운 인원을 구하고 있지만, 상황을 보고 팀을 해체할 수도 있다. 일단 미래가 불투명하다. 내가 월드 오브 탱크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는 나이도 지났다고 생각한다. 들어오는 시기만큼 물러나는 시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은퇴나 팀 해체를 거론하기에는 여태까지 팀 성적이 좋다.
최고의 상황만큼이나 최악의 상황도 준비해야 한다. 당장 다음 시즌 우리의 성적이 어찌 될 지 모르니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좋은 상황이 왔을 때 즐길 수 있다. 세계 대회에서는 여러 번 좌절을 경험해봤고, 그 경험을 살려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 한다.
월드 오브 탱크 프로게이머로 국내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최고의 자리를 지킨 이유가 있다면.
팀원의 마인드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팀 초기에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이 있는 팀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처음부터 우승이었다. 오픈 시즌 16강에서 탈락한 적도 있지만 그때도 목표는 우승이었고, 포기하지 않고 최고가 되기 위해 달렸다. 최근 위협적인 실력을 갖춘 팀이 늘어났는데, 이 팀들도 확고한 목표가 있기에 좋은 실력을 내는 거 같다. 실제로 이번 한국 결승에서도 한 발 차이로 우리가 이겼다.
2014년 아르테(현 콩두)와 노아가 팀을 합쳤다. 국내 월드 오브 탱크 1위와 2위 팀의 합병이라 다들 놀랐다.
당시 아르테에서 몇 명이 나갔다. 입대와 취업 문제가 걸린 팀원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인원 충원이 필요했는데 노아가 해체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그래서 다른 팀 가느니 같이 하자고 제안해서 힘을 합치게 되었다. 2013년 내내 치고받던 두 팀이 합병해서 2014년에서 국제 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도 이루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국내 대회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 떠나가는 빈자리를 채우기 힘들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년 WGL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하고 팀을 해체하려 했다. 하지만 계속 게이머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하더라. 나도 많이 지쳐 있었지만 같이 하자는 팀원이 있어서 성적보다는 즐겁게 게임 하는 분위기로 팀을 결성했다. 다행히 콩두에서 팀원을 모집한다고 하길래 우리 팀이 들어갔다. 다만 여태까지 아르테 중 가장 약할 거라는 이야기는 전했다. 아마 아시아 지역 준우승을 하는 거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즐겁게 게임을 하자고 했지만, 결성 후 3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아르테 초창기에 열정으로 연습했다면 지금은 독기를 품고 연습했다. 이렇게 해서 아시아 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거 같다.
아시아 파이널 첫 날 일본 팀을 꺾기만 해도 소원이 없을 거 같았다. 경기를 해보니 우승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것 보다 포 명중률이 너무 떨어졌다. 평소 같으면 명중했을 탄들이 전부 도탄 되거나 비켜 나갔다. 그리고 지휘를 내리는 오더가 없는 것도 패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뽑는 팀원은 피지컬이 좋은 사람으로 구하는 중이다. 성격이나 인격은 기대하지 않고, 무조건 잘 맞추기만 하면 된다.
이제 나이가 서른이다. 프로게이머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작년까지는 내가 프로게이머라 생각하지 않았다. 스폰도 받지 않고 대회에 나가 성적만 올리는 잘하는 아마추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전 곰TV에서 월드 오브 탱크 해설을 하던 (정)인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혼난 적이 있다. 스폰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니 생각을 바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아르테 정도면 모든 종목 프로게이머를 합해도 상위 10% 정도에는 들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더라.
올해 나이가 서른이고, 내년이면 서른하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년 그랜드 파이널이 끝나고 박수받으며 떠났어야 했다. 프로게이머도 좋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정을 미룰수록 미래가 힘들어 질 거 같다. 아직 철이 덜 들 거 일지도 모른다.
주위에서는 서른 살 프로게이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월드 오브 탱크 리그 내에서는 먼저 알아봐 주시는 분도, 좋아한다고 해주시는 분도 많다. 집에서도 자랑스러워 하신다. 어머니께서 직접 가방도 만들어 주실 정도다. 하지만 내가 프로게이머를 계속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슬슬 다음 길을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걱정도 하신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며 힘든 게 있었다면.
월드 오브 탱크는 단체전이고, 팀 생활을 하는 만큼 팀원들끼리 싸울 때 말리는 게 힘들었다. 국내 최고 팀으로 있던 만큼 수성에 대한 부담도 심했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면 상금 외 수입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나야 혼자 살면서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지만, 팀원 중에는 상금 수입으로 가정을 꾸리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아시아 파이널 준우승을 하며 조금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우승을 못 하면 팀원에게 미안하지 않았는데, 팀원 가족들한테는 미안하더라. 그래서 항상 상금 외의 다른 수입을 찾고 있는데 개인 방송을 해도 월드 오브 탱크로는 힘들다. 팀 경기라 한 명이라도 다른 게임 방송을 하면 바로 팀 전체 경기력에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그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이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후회는 없나.
그렇다. 월드 오브 탱크가 아니었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을 거고 성취감도 얻지 못했을거다. 아마 쓸모없는 인생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그래도 화려한 선수 생활을 거쳤고 국가를 몇 번이나 대표했다. 이런 경험은 아무나 못한다. 스물 다섯 부터 서른까지, 이 나이에 이런 경력을 쌓기 쉽지 않은데, 월드 오브 탱크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에도 여자친구를 만난 것도 프로게이머를 해서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올해 목표는 어떻게 되는가.
일본에서 열리는 '럼블'이라는 대회에 참가해 우승하는 게 목표다. 북미와 아시아에서 각각 두 팀씩 총 네 팀이 참가하는 대회이다. 그리고 11월에 진행되는 시즌3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올해도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하는 것도 목표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다른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게 목표다. 올해까지는 어떻게든 성적을 내도 내년에는 힘들 거 같다. 이쯤 되니 손이 못 따라온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리고 내 미래 생각도 해야 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임 쪽이면 어떤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을 거다. 이게 안 되면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지켜본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지난 아시아 파이널에서 2위를 한 다음 날 새벽 한 시에 (정)인호 형에게 연락이 왔다. 우승을 못 해서 괜찮냐고 물어봐 주더라. 인호 형이 이정도로 날 생각해 준다는 게 뿌듯했다.
그리고 내가 애증의 대상일 워게이밍 코리아에게도 감사한다. 내가 천덕꾸러기일 때도 있고 자랑스러웠을 때도 있으셨을 거다. 그래도 내가 빛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
월드 오브 탱크 리그를 보시는 팬들도 내가 애증의 대상일 것이다. 국내 리그에서는 상대 팀에 엄청난 도발을 날리는 바람에 미워하기도 했지만, 아시아 대회나 세계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하면 그래도 많이 응원해준 거로 알고 있다.
상대 팀이 밉거나 무시해서 도발을 날린 게 아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같은 재미없는 인터뷰를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상대 팀을 도발하고, 라이벌 관계를 만들고, 거기서 스토리를 만드는 건 피디나 기자가 아닌 선수가 해야 할 일이다.
기껏 방송 무대까지 올라갔는데 기억에 남지 않을 인터뷰를 하기는 싫었다. 그 기회로 어떻게든 월드 오브 탱크가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도록 하고 싶었다. 내가 욕먹어도 리그가 흥하면 결국 나도 잘 되는 거니까. 그동안 계속 바라봐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이후에 내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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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기자 valle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