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7-0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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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뷰] 슬픔 강요하지 않아 더 먹먹한…'아리랑'

기사입력 2015.08.04 11:58 / 기사수정 2015.08.04 12:01



[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좋은 호시절이 오겄제.”

일제 강점기 수국과 득보, 그리고 민초들은 호시절을 희망한다. 한 치 앞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상황이지만 언젠가는 호시절(好時節)이 올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뮤지컬 화한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산 민초들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그렸다. 전반적으로 애이불비(哀而不悲)를 지향한다. 제작발표회에서 고선웅 연출이 밝혔듯, 애통하지만 겉으론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정서가 깔려 있다.

옥비의 아비가 총살당할 때 옥비는 아비의 옆에서 구슬픈 소리를 들려준다. 옥비의 어미가 자살한 뒤 송수익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두발로 딛고 일어서자고 외친다. 일본 앞잡이 백남일에게 유린당하고 어머니를 죽인 양치성의 아이를 배는 등 기구한 삶을 산 수국 역시 그래도 살아가겠다며 의지를 보인다. 애이불비의 정서는 수국과 득보가 상여를 타는 마지막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관객에게 억지로 슬픔을 강요하진 않는다. 그래도 눈시울을 훔치는 이들이 있다는 건 작품 자체만으로 공감과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지만 이 작품은 예외에 해당한다. 관객을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시종 엿보인다.

선택과 집중이 좋다. 사실 16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침략부터 해방기까지 다룬 방대한 원작을 따라가기에는 무리일 터다. 그래서 20년대 말까지로 시대를 한정하고 감골댁 가족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렸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 행하기 쉬운 단점 중 하나는 전개 과정에서 디테일이 생략되는 것인데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어도 이해하기 크게 어렵지 않게 구성했다.

물론 한계는 있다. 각 신은 흠잡을 데 없지만 이들을 엮는 전체적인 흐름이 끊기는 감이 있다. 1막과 2막이 시작되기 전, 영상에 흘러나오는 설명 그대로 전개되지만 7명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왔다 갔다 전개된다. 관객이 감정에 충분히 몰입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인 송수익은 감골댁과 양치성의 이야기에 밀려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송수익과 옥비와의 사랑도 그려지다 만 느낌이다.

영상과 음악, 배우의 열연이 서사의 단점을 보완한다. 득보와 수국의 설레는 감정을 담은 ‘진달래와 사랑’, 죽은 감골댁과 이승의 수국이 마주 보고 부르는 ‘어미와 딸’ 등 애절함을 더한다. 이육사와 김수영의 시를 인용한 ‘절정’, 한의 정서를 흥으로 승화한 마지막 장면에서 부르는 진도 아리랑 등은 몰입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LEC 스크린의 활용은 의외로 단순하다. 다만 간도 지역 불령선인 초토 계획에 따라 일본군들이 조선인을 학살하는 장면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마적들의 영상만큼은 역동적 느낌을 풍긴다.

배우들은 감정을 쏟아내며 흔들림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까맣게 타 죽은 감골댁을 발견한 수국이 양치성에게 이대로는 못 간다며 오열하는 장면에서 윤공주의 연기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차옥비 역의 국립창극단 배우 이소연은 성공적인 뮤지컬 데뷔 무대를 보여준다. 그의 창은 극에 어우러지며 서정성을 배가한다. 애끊는 모정을 지닌 감골댁을 연기하는 김성녀와 일본군의 앞잡이가 될 수밖에 없는 양치성을 연기한 김우형도 깊숙한 한을 끌어내며 호연을 펼친다.

9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LG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160분. 만 7세 이상. 문의:1544-1555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엑스포츠뉴스DB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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