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0-0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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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의 '시네리뷰'] '마돈나' 우리는 왜 그녀 마음을 알 수 없는가

기사입력 2015.07.11 08:35 / 기사수정 2015.08.02 08:47

이영기 기자
[엑스포츠뉴스=김동진 대중문화평론가] 병원의 VIP병동에서 일하게 된 해림(서영희)은 식물인간 상태의 병원설립자를 돌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상우(김영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무연고자로 병원에 실려 온 의식불명의 임산부 미나(권소현)에 관해 알아오는 것이다. 상우는 미나의 심장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식시킬 계획이다. 해림은 수술동의서에 싸인을 받기 위해 미나의 지인들을 하나둘 만나면서, 미나가 살아온 끔찍한 삶의 전모를 마주하게 된다.



여자의 일생
‘마돈나’는 19세기의 신문연재소설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을 준다. 주인공 미나가 겪어내는 삶은 ‘파란만장’이라고 부르는 걸로는 부족하다. 끝도 없이 나빠지는 미나의 상황은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섭다. 관객은 사회면 기사에서나 봤던 일들을 풀 패키지로 차례차례 경험하게 된다.

‘마돈나’는 미나의 별명이다. 단지 가슴이 크다는 이유로 그렇게 불린다.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곁에서 자라난 미나는 학창시절부터 ‘존재감이 없는’ 가난한 집 아이였다. 이 자존감 부족은 성인이 된 미나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밑바탕이 된다. 상사의 인정을 받기위해 ‘그의 정부’가 되는 그릇된 선택을 하고, 성폭행을 당하고서도 오히려 자신이 도망친다.

우리가 ‘마돈나’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한 여자의 불행한 일생’이다. 영화를 보게 되면 ‘일생’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마돈나는 매번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여자다. 사과를 받아야 할 상황에서, 거꾸로 사과를 하는 여자. 내면의 ‘텅 빈 방’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입속으로 무언가를 집어넣어야 하는 여자. 가련한 여자. 결국 죽어가는 부자집 노인에게 심장까지 뺏겨야하는 여자다.



미나가 아닌 마돈나
미나가 ‘콜센터’와 ‘화장품 공장’에서 당하는 일들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미나를 이용해서 회사 기밀을 빼돌리고, 성적 착취를 일삼는 ‘무자비한 남자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국지성호우처럼 미나라는 캐릭터의 하늘위에서만 연이어 쏟아지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마돈나’는 미나라는 캐릭터의 어깨 위에 너무나 과중한 짐을 쌓아올린다. 각각의 극적사건들이 현실적일지라도 그것들이 하나의 총합으로 묶이는 순간, 미나라는 인물은 현실적인 토대를 잃는 것처럼 보인다. ‘마돈나’라는 제목부터가 이런 추상화를 부채질한다. 팝스타 마돈나가 지닌 섹슈얼한 측면과 성모(聖母)로서의 마돈나가 ‘미나’라는 이름 속에서 양립한다. 이 양립은 상징성을 도모하지만, 역으로 ‘미나’의 구체성이 갖는 힘은 떨어트린다. 단지 별명일 뿐인 ‘마돈나’가 온갖 고난을 겪는 ‘여성성’의 상징으로 호출되면서, ‘미나’가 당한 사건들은 거의 신화적인 이야기처럼 추상화되고 현실에서 뜯겨져 나간다.



미나의 마음
신수원 감독은 어느날 카페에서 여자노숙자를 보게 됐다. 젊은 여자라는 점이 색달랐다. 그리고 저 여자는 왜 저기서 노숙자가 됐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됐다. ‘마돈나’는 이 의문에 대한 역추적에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관객은 한 여자가 몰락하는 광경을 지켜본다. 감독은 비가 내리는 학교운동장과 콜센터사무실 옆의 복도계단, 화장품공장의 창고, 심야의 공용주차장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때로는 미나 지인들의 시선이고, 때로는 그저 엿보는 자의 시선이다.

관객은 이 모든 것들을 본다. 상황은 충격적이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럼에도 정작 미나에게 다가설 수가 없다. 미나는 지금 의식불명 상태로 병실침대에 누워있다. 우리가 듣고 본 이야기는 미나의 주변사람들이라는 필터를 거친 몇 가지의 각색본이다. 조각난 이야기들. 각 이야기를 꿰매고 덧대야만 전체의 윤곽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렇게 짜 맞춰도 어딘가 비어있다. 우리는 정작 미나의 마음이 어떤지를 모른다.

미나는 리액션으로만 존재한다. 물어야 답을 하고 당해야 화를 낸다. 자신으로부터 길어 올린 본연의 감정이나 말을 들을 기회가 없다. 이것은 정말로 아쉬운 점이다. 감독이 우리를 불행한 사건의 순간으로 호출했던 것처럼, 미나가 삶에서 느꼈던 단 한 번의 기쁨의 순간이라도 보게 해줬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좋은 영화들에서 인물들은 고통과 시련에 시달린다. 그 시련은 예술적인 의도를 가지고 설계된 것이지만, 때로 그것이 과도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마돈나’는 그 과도함의 한계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김동진 대중문화평론가(nivriti@naver.com)
 

이영기 기자 leyoki@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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