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최종 엔트리에 14명의 투수를 포함시켰지만 선발 투수는 3명, 로저 클레멘스(44), 제이크 피비(25), 돈트렐 윌리스(24) 밖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WBC가 투구수 제한 규정으로 인하여 선발 투수의 비중이 작아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얼마나 강력한 불펜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부가 갈릴 것이란 것을 예상한 투수진 구성이었다.
미국은 8일(한국 시각) 열린 1라운드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7명의 투수들이 이어 던지며 멕시코의 타선을 무득점으로 봉쇄하며 완봉승을 이끌어내 계산이 맞아 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의도는 다음날 열린 캐나다와의 1라운드 2번째 경기에서 산산조각 나버린다. 미국은 코리 코스키-저스틴 모뉴-매트 스테어스 등 좌타자가 주축을 이룬 캐나다를 상대하기 위해 돈트렐 윌리스(24·플로리다 말린스)를 선발로 투입시켰다. 그가 2005시즌 좌타자들을 상대로 .222의 피안타율과 0.87의 낮은 WHIP(=이닝 당 주자 출루 허용) 그리고 1개의 불과한 피 홈런을 기록하며 ‘좌타자 킬러’로 리그를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돈트렐 윌리스는 초반부터 극심한 컨트롤 난조를 보였고(볼넷 2), 그의 천적인 좌타자에게만 6개의 피안타를 허용하며 5실점의 부진을 보여 2.2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강판되고 말았다.
미국 대표팀의 벅 마르티네스 감독은 채드 코데로-마이크 팀린-채드 퀼스-스캇 쉴즈-브라이언 푸엔테스-휴스턴 스트리트-조 네이선-브레드 릿지의 초호화 불펜 진을 보유하고도 2이닝동안 2실점을 하며 난조를 보이는 돈트렐 윌리스를 고집하다 결국 초반 대량 실점을 허용했다. 결국 미국은 초반 대량실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6:8로 경기에 패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14일(한국 시각)에 벌어진 WBC 2라운드 첫 경기인 일본전에서도 재현되었다. 멕시코 전에서 3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던 미국 선발 제이크 피비(25·샌디에이고 파드레스)는 1회 초 1번 타자 스즈키 이치로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허용하며 불안한 출발을 하더니 2회 초에는 일본의 9번 타자 가와사키에서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0:3으로 리드당하며 초반부터 경기를 어렵게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도 벅 마르티네스 감독은 불펜투수들을 조기에 투입시키지 않았다.
적절한 투수 교체 타이밍을 놓치는 미국의 마운드 운용은 결국 15일(한국 시각) 벌어진 WBC 2라운드 한국과의 경기에서 큰 화를 부르고 말았다. 미국 선발 돈트렐 윌리스는 1회 말 한국의 선두타자 이종범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불안할 출발을 하더니 3번 ‘라이온 킹’ 이승엽에게 선제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그가 2005시즌 메이저 리그에서 좌타자에게 허용한 홈런이 단 1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빠른 투수 교체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윌리스는 1회 2사 1,3루에서 이범호에게 1타점 적시타를 허용하였고 3회 말 또다시 이범호에게 실점을 허용하는 등 4개의 볼넷을 남발하며 3점이나 내주고 말았다.
최악의 상황은 4회에 터져 나왔다.
미국은 4회 투수를 댄 휠러(29·휴스턴 에스트로스)로 교체하였다. 2아웃을 잘 잡은 휠러는 2번 김민재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3번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출루시키며 2사 1-2루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은 4번 김태균 자리에 좌타자인 최희섭을 대타로 기용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미국 벤치는 우완인 휠러를 교체하지 않았고 휠러의 가운데로 몰린 87마일(140km/h)짜리 직구가 스리런 홈런으로 통타 당하며 사실상 승리를 한국에 내주고 말았다. 미국의 불펜에 특급 좌완 브라이언 푸엔테스(2005시즌 2승 5패 31세이브, 방어율 2.91)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마운드 운용이었다.
선발 투수가 3명에 불과한 미국의 마운드는 선발 투수가 난조에 빠질 경우 경기를 이끌어나갈 ‘롱릴리프’가 없다. 이번 WBC에서 철벽 마운드를 과시하며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한국이 배영수-박명환-김병현 등의 선발 투수들을 불펜에 대기시켜 선발이 초반 난조에 빠질 경우 한 박자 빠른 교체를 할 수 있는 ‘롱릴리프’를 가지고 있는 것과 무척 비교되는 부분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불펜 진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투수 교체 타이밍을 놓치면 이길 수 없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미국의 벅 마르티네스 감독의 한 발 늦은 투수교체는 '한국전 대패' 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WBC의 초대 챔피언을 노리며 조 편성과 경기 일정, 심판 판정 등 개최국인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대회 운영을 하며 횡포를 부리는 미국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마운드의 운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