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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스포츠 뮤직] 대구 월드컵 경기장의 상반된 두 뮤지션

기사입력 2005.10.12 01:36 / 기사수정 2005.10.12 01:36

편집부 기자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 번이라도 경기를 관전한 팬들은 음악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귀에 익은 두 곡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국가대표 서포터인 붉은 악마도 사용하고 있는 대구FC 서포터의 공식 응원가 중 하나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Love me tender' 와 홈팀인 대구FC가 골을 기록했을 때 나오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이다.


  트럭 운전사에서 슈퍼스타로,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팝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가수이며 ‘로큰롤(Rock & Roll)의 황제’로 불린다. 전설적인 밴드인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엘비스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라고 할 정도로 후세 팝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엘비스는 어릴 적부터 부모와 함께 가스펠을 부르고 배웠고, 11세 생일에 기타를 선물을 받아 음악의 기초를 다진다. 5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엘비스는 트럭 운전사로 일 하던 중 어머니에게 개인적으로 헌정하기 위해 'My Happiness'를 작곡하여 녹음을 위해 선 레코드사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비서인 마리온 키스커의 눈에 띄어 연습 끝에 직업가수의 길을 가게 되었다.


  56년 뉴욕으로 진출한 그는 ‘Tommy & Jimmy Dorsy'의 스테이지 쇼에 출연해 세계적인 스타의 길을 가게 된다. 방송을 계기로 그는 세계 틴에이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방송이 끝난 후 발매된 ‘Heartbreak Hotel'이 무려 8주 간이나 차트 정상에 오른다. 그 후 내는 앨범마다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신드롬을 일으킨다. 당시 독특한 엉덩이의 움직임과 관능적인 무대매너에 기성세대들의 많은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의 인기를 가로 막을 수는 없었다.


  엘비스는 흑인의 사운드와 흑인의 창법과 감각으로 노래를 하는 유일한 백인으로 꼽힌다. 당시 선(Sun)스튜디어의 사장인 샘 필립스(Sam Phillips)가 그런 식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백인이 있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한 예상을 엘비스가 증명한 것이다.

 

  엘비스는 일생동안 무려 31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웬만한 주연급 영화배우보다 더 많은 영화를 찍은 셈이다.  'Love me tender' 는 엘비스 자신이 출연한 영화 동명의 영화 주제곡이다. 가수에서나 영화에서나 그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무더기로 영화를 찍어 작품성은 떨어졌지만 엇비슷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흥행불패를 달렸던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마 엘비스의 섹시한 외모도 분명 한 몫 했으리라.


  혹독한 훈련이 후에 천재로, 베토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함께 고전파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로 꼽힌다. 집안 살림을 잘 돌보지 않고 술주정뱅이였던 아버지 요한이 베토벤이 조금씩 악재를 나타내자 당시 천재음악가로 명성을 날리던 모차르트 같은 신동으로 키우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주어진 피아노 과제를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면 끼니도 주지 않을 정도였으니 어린 베토벤에게는 얼마나 혹독한 것일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릴 적부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던 베토벤의 인생 역시도 순탄하지 않았다. 16세 때는 어머니가 사망하여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두 남동생을 부양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동생인 칼이 죽자 조카의 양육권을 놓고 제수와 소송 끝에 승소하기는 했지만 조카의 행실이 불량하여 큰아버지인 베토벤을 끊임없이 괴롭히다 나중에는 권총자살까지 기도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베토벤을 괴롭힌 것은 귓병이었다. 25세 때부터 귀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어 30세에는 귓병이 악화되었다. 당시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음악가로서의 생명이 위태로워짐을 자명했기에 몰래 치료도 받아보고 요양도 했지만 잠시 회복의 기미가 보였을 뿐 말년에는 완전히 청각을 상실하게 되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혹독한 훈련으로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그가 하필이면 음악가로서 가장 소중한 청각을 상실해야 했음은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피아노 소나타 제8번 비창은 1798년에 작곡되어 1799년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되어 출판된 곡이다.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제 3악장이다. 인터넷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창의 3악장과 인기 게임인 스타크레프트 사운드를 결합시킨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곡으로 익숙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진 박이 전자바이올린으로 편곡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잘 정돈되고 유연함이 돋보이는 이곡은 당시 출판된 당시 빈의 피아노 학도들이 이 곡의 악보를 앞 다투어 입수하려고 했을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곡이 베토벤의 명성을 전유럽에 드높게 해준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후기리그 1위 대구FC


  대구FC에는 다들 알다시피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 최근 뜬 선수라고는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산드로 선수와 지난 시즌 도움 1위로 국가대표에도 발탁된 홍순학 선수가 꼽힌다. 하위권 전력이라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은 현재 후기리그 1위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마 대구FC의 선수들이 박종환 감독의 혹독한 훈련을 잘 소화해낸 덕분이리라. 혹독한 훈련으로 엄청난 호평을 받는 두 사람처럼 성적으로도 평가받는 구단이 되길 기대해 본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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