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재용 기자] 뮤지컬 배우와 관객의 관계가 어딘지 불편하다. 성숙한 공연 문화로 성장해 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는 듯 하다.
공연이 끝난 뒤, 뮤지컬 배우는 또 하나의 일과를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공연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객과 마주하는 일이다. 관객은 배우들이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입구에 길게 늘어선 채 기다린다. 남자 배우들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준비를 마치고 귀가를 하기 때문에, 해당 배우의 팬이 아닌 관객도 호기심에 발걸음을 멈추며 입구는 금세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렇게 뮤지컬 배우가 등장하고 짧게는 40분, 길게는 1시간이 넘도록 그 곳에서 싸인과 셀카 요구에 응한다. 관객은 이를 당연시 여기고, 뮤지컬 배우도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혹여라도 다른 사정에 의해 관객을 그냥 지나친다면 따가운 눈살은 물론, 안티 팬이 늘어나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 암묵적인 상호 합의하에 이뤄지는 뮤지컬 배우와 관객의 관계라 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뮤지컬 공연은 대략 5만원에서 14만원선. 여기에는 팬 서비스 비용까지 포함돼 있는 것일까?
평일 뮤지컬 공연은 대부분 저녁 8시에 시작해 밤 10시가 넘어서 끝난다. 공연 종료 후 공식적인 싸인회가 있는 날이면 금세 자정이 가까워진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과 배우 모두 지치는 시간이다. 하지만 1주일에 1번 혹은 한 달에 1번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배우와의 소중한 추억을 위해 끝까지 남아 있는 수고도 마다치 않는다. 분명 배우 입장에서 감사한 일이지만, 매일 벌어지는 이러한 상황이 부담스럽다.
여기에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견디기 힘들다고 배우들은 입을 모은다. 일부 관객은 이 자리에서 직접 배우에게 해당 공연의 연기를 지적 하기도 하고, 과한 팬 서비스를 요구하기도 한다. 도가 지나친 행동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함에도 이에 대한 관객들의 망설임은 없고, 뮤지컬 배우도 불쾌한 기분을 애써 숨긴다.
특히 뮤지컬 관객의 95% 이상이 여성 관객들인 상황에서 젊은 남자 배우들의 스트레스는 더욱 크다. 이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 하기도 하고, 아예 팬들과 거리를 두는 방법을 택한 배우들도 있다.
- 뮤지컬 배우와 관객, 동업자 정신이 필요할 때
뮤지컬 배우와 관객의 이러한 관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를 논하기 앞서 공연(연극)의 3요소가 무대, 배우, 관객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연기자(배우)가 무대에서 관중(관객)들에게 연기를 보여 주는 것을 공연이라 일컫는다. 관객이 없으면 무대 또한 존재하지 않는 동업자 같은 존재지만, 배우와 관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끊임없이 계속 돼 왔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연말 '지킬앤하이드' 막말 논란으로 공연계가 떠들썩했던 기억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지킬앤하이드' 공연 직후 한 관객이 "앙상블과 오케스트라가 제대로 자신의 몫을 하지 못한다"고 글을 올리자, 원미솔 음악감독이 이에 대해 자신의 SNS를 통해 반박 글을 올렸고, 이후 공연 스태프가 올린 댓글이 화근이 돼 홍역을 치렀다.
또한 그에 앞서 '두도시 이야기'에서는 배우 백민정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인회 싫어, 사인회 싫어. 공연 끝나고 피곤한데 방긋 웃음 지으며 '재미있게 보셨어요? 성함이?' 방실방실. 얼굴 근육에 경련난다고! 아이고 귀찮다"라며 불만을 토로해 관객들의 원성을 샀다.
'지킬앤하이드'는 제작진의 사과로 논란이 다소 진정됐지만, 백민정은 해당 논란 이후 은퇴까지 고민하며 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야 하는 주체간의 갈등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처럼 배우는 관객들이 자신을 '딴따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섭섭해 하고, 관객은 뮤지컬계가 비싼 티켓만큼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갑과 을이 상황마다 뒤바뀌는 현실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만난 뮤지컬 배우들은 관객이 있음에 감사하고, 이는 자신을 더욱 정진하게 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매일 1시간 가까운 관객의 과도하고 당연시 되는 요구는 불편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뮤지컬 배우는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관객은 아티스트로서 존중해주는 일. 선진 공연문화로 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조재용 기자 jaeyong2419@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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