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김승현 기자]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차두리(35)가 아버지인 차범근(62) 전 감독을 언급했다. 역시나 아버지는 어렵고도 편안한 존재였다.
차두리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A매치 평가전에 선발 출격했다.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에 등장한 차두리는 전반 42분 김창수와 교체되며 정든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월드컵 4강, 아시안컵 준우승 등의 영광을 안았던 차두리이지만, 1980년대 세계 최고의 무대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갈색 폭격기'로 이름을 날린 차범근은 넘어야 할 산이자 어려운 꼬리표였다. 차두리에게 차범근은 가장 가까운 아버지이자, 선수생활 내내 떠안고 다닌 과제이자 족쇄였다. 차두리 또한 차범근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에 부담감을 고백한 바 있다.
차두리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아버지의 명성에 도전했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어느새 현실의 벽을 느끼게 됐다"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 홀가분해졌다"고 말했다.
오른쪽 측면 공격수였던 차두리는 살아남고자, 오른쪽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기술적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본인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 차두리가 선사한 엔돌핀은 대표팀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차범근이라는 어려운 짐을 스스로 내려 놓은 차두리는 최고의 오른쪽 수비수로 거듭났고, 노장임에도 대표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리고 이날 대표팀과 작별하며 차범근도 부러워할 은퇴식을 가졌다.
차두리는 은퇴를 실감한 듯, 그간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아버지가 등장하자 품에 안겨 아이처럼 펑펑 눈물을 흘렸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차범근과 가장 뜨거운 차두리의 포옹은 많은 의미를 남겼다.
2013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2015 호주아시안컵 준우승 등 놓친 우승 타이틀 만큼 차두리의 가슴 한 구석에는 아버지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하다. 차두리는 "아버지의 아성에 도전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해 안타깝다. 한편으론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 축구를 잘해도 그의 근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면서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롤모델로 삼은 인물이다. 세상을 살면서 받은 가장 큰 행복이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차두리는 아버지를 결국 넘지 못했다고 털어 놓으며, 월등한 실력에 밉기도 하다면서 웃었다. 그가 생각한 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차두리는 이미 차범근에 버금가는 희열을 안겼다. 세대는 다르지만 차부자는 그라운드 위 감동을 전하는 피를 나눴다. 차두리가 "팬들의 성원을 받는 나는 행복한 축구 선수"라고 뿌듯해 한 것에서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은퇴식에는 차범근과 그의 아들이 함께한 것이 아니라, 차두리의 아버지와 차두리가 포옹했다. 그리고 경기장에 모인 3만3514명의 관중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사진= 차두리, 차범근 ⓒ 엑스포츠뉴스 권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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