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임지연 기자] 배우 김래원(34)에게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펀치’ 속 남자 주인공 박정환의 첫인상은 썩 매력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경수 작가의 작품은 ‘인정’하지만, 1년 내내 촬영한 전작 영화 ‘강남 1970’과 비슷한 색깔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펀치’를 끝낸 후 그는 “이 작품에 출연해서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3개월 동안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검사 ‘박정환’으로 살아온 남자 김래원을 만났다.
◇ “붓지 않으려 식사 조절, 그런데 나쁘지 않더라고요.”
‘펀치’는 정치권력을 다룬 ‘추적자’와 재벌들의 권력을 담아낸 ‘황금의 제국’을 히트시킨 박경수 작가의 권력 탐구 3부작의 완결편이다. 법조계 인물들의 탐욕과 부정부패를 날카롭게 해부한 ‘펀치’는 나쁜 놈들 가운데 ‘덜’ 나쁜 놈만 있는 권력부를 힘 있게 까발리며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첫 회 시청률 6.7%로 동시간대 꼴찌로 시작한 드라마는 지난 17일 최고 시청률 14.8%(이상 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래원은 ‘펀치’ 출연 승락에 앞서 한 차례 거절했다고 밝혔다. ‘강남 1970’ 촬영 후 제안을 받은 터라 소속사 측에 제안에 “다른 작품 없을까요”라는 뜻을 내비쳤다고. 그러나 다시 ‘펀치’ 대본을 내민 소속사 대표의 설득에 넘어가 출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며 박경수 작가의 여러 작품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또 다른 난관도 있었다. ‘펀치’ 박정환 역에 김래원을 캐스팅하는 것을 두고 방송사 측 고위 관계자들이 반대를 했던 것이다. 이유는 “김래원이 연기할 경우 너무 무거워 보이지 않을까”였다. 그러나 “김래원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이명우 감독의 제안에 출연을 결정했다. 김래원은 “여기까지 온 건 이명우 감독님의 힘이 크죠. 만약 캐스팅 당시 서로 재고 그랬다면, ‘펀치’를 안 한다고 했을 거예요. 박경수 작가님 작품이 좋은 건 알지만, 전작을 세고 힘든 걸 했기 때문에요. 전혀 다른 작품이지만, 연기하는 인물들의 패턴이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하길 참 잘했죠. 이렇게 사랑도 받고요”라며 웃었다.
2011년 드라마 ‘천일의 약속’ 이후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김래원은 ‘펀치’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힘을 짜내 복수와 응징에 매진하는 박정환 검사를 연기했다. 1회부터 뇌종양 판정을 받은 남자 주인공 정환을 김래원은 극 후반부로 흐를수록 실제 병자와 같은 모습으로 사실감 있게 보여줬다.
“영화 ‘강남 1970’을 찍으면서 보기 좋은 모습을 유지했는데, ‘펀치’에서는 1회 때만 딱 보기 좋은 모습이었죠(웃음). 드라마는 아침 일찍 촬영을 시작하잖아요. 조금만 먹어도 붓는 편이라 샐러드로 식단을 조절했는데, 화면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정환을 표현하기에 더 진정성이 있어 보였죠. 그때부터는 일부러 저녁을 안 먹었어요. 나중에는 얼굴이 해골같이 변해서 폭식을 했는데도 살이 안찌더라고요.”
‘펀치’는 친절한 드라마는 아녔다. 시청자들에게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보여줄 듯 안 보여주면서 빠르게 사건과 사건이 맞물려 진행된다. 극을 끌고 간 김래원이 ‘박정환’이라는 인물을 더 사실적이게 그려낸 이유다. 그는 ‘~척’ 허투루 연기하지 않기 위해 힘썼다.
“작품의 흐름과 결말은 작가 선생님 마음이잖아요. 결말까지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는데, 또 그걸 억지스럽지 않게 푸는 게 감독과 배우들의 몫이니까요. 배우들이 잘 풀어낸 거 같아요. 박정환이라는 인물도 죽음이라는 이유만으로 끈끈했던 이태준과 등을 지는데, 사실 확 이해가 될 만한 상황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정환이 아플 때 진짜 아픈 것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초반에 정환이라는 인물을 잘 만들어놔야, 그가 무엇을 해도 고통 속에 사는 인물로 받아들여져 연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초반에 노력한 부분이 힘을 얻으니, 이후부터는 정환이가 못 된 행동을 해도 다 동정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 예로 정환이 태준의 ‘편’이 되는 결정적인 장면. 정환은 검찰로부터 비리 조사를 받던 중 이태준으로부터 “10분만 버텨라”라는 말을 듣는다. 정환은 시간을 끌기 위해 난간에 매달려 10분을 버텨냈다. “아픈 척하는 게 용납이 안됐다”는 김래원은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며 스스로를 괴롭혔고, 힘이 축 빠진 정환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 “조재현 선배와의 호흡? 척하면 척.”
‘펀치’에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이 등장해 잽 펀치를 주고받는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중심에는 박정환이 있다. 결국 ‘펀치’는 박정환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래원은 자신이 돋보이기보다 주변 인물들이 함께 도드라지길 바랐다. 배우들의 호흡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나 혼자 연기를 했을 것 같아요. ‘펀치’는 박정환의 이야기인데, 박정환이 살아야 드라마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욕심을 부려서 나만 빛나게 했으면 그럴 수도 있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다른 배우들은 안 보였을 수도 있죠. 하지만 배우들과 주고받는 호흡에서 시너지를 얻고자 했어요. 딸로 나온 예린이(김지영)와도 마음을 열고 진심을 주고받으며 연기하고자 호흡을 나눴죠.”
한때는 친형제처럼 끈끈했으나, 등 돌리기 무섭게 서로를 물고 뜯는 정환과 태준(조재현)을 연기한 조재현과 김래원의 불꽃 튀는 연기 향연은 ‘펀치’의 커다란 재미였다. 김래원은 조재현과의 연기 호흡을 두고 “척하면 척”이라고 표현했다. “조재현 선배와의 호흡을 말 그대로 환상의 호흡이었죠. 서로 의논하지 않고도 밀고 당기며 호흡을 맞췄어요. 척하면 척, 정환과 태준이 맞붙는 장면은 착착 감길 정도였죠. 이는 조재현 선배가 많이 도움을 준 덕분이에요.” 두 배우는 합의 없이 카메라 앵글에 들어서고도 밀고 당기며 찰떡 호흡을 보여줬다.
김래원은 “박경수 작가의 ‘펀치’는 설명 없이 인물들이 감정을 훅훅 주고받아요. 초반부터 다른 드라마의 8~9회를 찍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이럴 경우 배우들도 힘들거든요. 감정이 쌓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조재현 선배님이 너무 잘 이끌어 주셨어요. 말하지 않아도 내가 패를 ‘쓱’ 놓으면, 재현 선배가 어느 순간 ‘싹’ 집으세요. 그런 호흡이 너무 좋았죠”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 “배우 19년 차, 제 대표작이요?.”
김래원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대표작을 새롭게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청자들은 김래원을 두고 “박정환 같았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아쉬움이 남는 눈치였다. 김래원은 정환이 쓰러지던 마지막 회 장면을 곱씹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모든 배우들이 그렇듯 작품이 끝나면 아쉬움이 커요. 한 장면을 꼽자면 마지막 회에서 정환이 쓰러질 때 가족사진을 들여다보고 진통제 앰플을 깨고 하는데, 그때 복합적인 감정 둥 하나 더 첨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한 비릿한 웃음까지 담았다면, 더 강렬하지 않았을까요? 정환이 죽은 후에도 사람들은 정환의 이야기를 하거든요. 만약 그 표정까지 담아냈다면 남은 이야기를 풀어갈 배우들의 이야기에도 힘이 더 실렸을 것 같아요. 당시 며칠을 잠을 못 자고 찍었는데, 2시간만 잤어도 그 감정을 생각했을 거 같은데…(웃음). 정신이 없어서 생각을 못했어요. 이 이야기를 회사 대표님께 했더니 ‘그만하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1998년 청소년 드라마 ‘나’로 데뷔한 김래원은 벌써 19년 동안 필모그래피를 빼곡히 채워가고 있다. 그는 ‘배우 김래원의 대표작’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목표만 밝혔다.
“대표작으로 영화 ‘해바라기’를 꼽아주시는 분들도 있고, 최근에는 ‘펀치’를 이야기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대표작을 모르겠어요. 다만 좋은 작품을 만나고 또 하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생각했을 때 대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좋아하는 장르의 작품을 말이죠.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런 작품을 남기면 연기 그만해도 되겠죠(웃음).”
임지연 기자 jylim@xportsnews.com
[사진 = 김래원 ⓒ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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