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피오리아(애리조나), 나유리 기자] "올 것이 왔구나." 팀을 옮기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정재훈(35,롯데)은 이렇게 생각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FA로 이적한 투수 장원준의 보상 선수로 정재훈을 지명했다. 예상 외의 지명이었다. 많은 이들이 롯데가 두산에서 젊은 야수를 데리고 갈 것이라고 예측했고 분위기도 그렇게 흘러가는듯 했다. 하지만 롯데는 프로 13년차 베테랑 정재훈을 선택했다. 놀랍지만 수긍이 가는 결정이었다.
두산에서 프로에 데뷔해 12시즌을 두산에서만 뛴 베어스맨. 아직도 '롯데 정재훈'이라는 단어가 입에 안붙지만 그는 생각보다 더 빨리 새로운 팀에 녹아들고 있었다. "고작 보상 선수 따위"라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올해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다"고 각오를 밝힌 정재훈은 유쾌하면서도 진중했다. 분명 새로운 환경이 그에게 확실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 분명했다.
-보상선수 지명 발표 당일로 돌아가보자. 롯데로 이적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어땠는가.
"비시즌 동안 (김)성배랑 같은 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임)재철이형도 자주 봤는데 전부터 이야기를 하더라. 만약 내가 20인 명단에서 빠지게 되면 뽑힐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길래 긴가민가했다. 또 롯데 프런트 직원 중에도 대학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발표 나기 1,2시간전 쯤 전화가 오더라. 그걸 보고 '아 됐구나.' 싶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당하거나 하지 않았다. 물론 아내나 가족들은 조금 섭섭해한다."
-적응을 굉장히 빨리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롯데에 아는 선수들이 많으니까 다른 팀보다 적응이 빠르다. 김성배, 김승회, 최준석, 임재철 등 두산에 있었던 선수들이 많다. 팀 분위기도 좋다. 자율적으로 맡기는게 많고 고참들을 배려해준다. 그런 분위기는 두산과 비슷하다. 물론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 권리와 책임은 동반된다."
-공교롭게도 두산이 바로 옆 구장을 캠프 훈련지로 쓰고 있다. 선수들과 만났나.
"당연하다. 우리 숙소는 취사가 안되는데 두산 숙소는 된다. 가끔 놀러가서 라면도 끓여먹고 그렇다(웃음). 두산 시절까지 포함해서 한 4년째 여기를 오기 때문에 롯데도 이곳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니폼만 바뀌었지 합동 훈련이구나 싶었다. 나에게는 잘 된 일이다."
-두산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을 것 같다.
"두산에 있을땐 몰랐는데 옮기고나니 드는 생각이 한 팀에서 유니폼 하나만 입고 은퇴하기 쉽지 않은 거구나 싶다. 장단점이 있는것 같다. 한팀에 계속 있는 것도 괜찮지만 막상 옮겨보니까 여러팀 가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나중에 제가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전환점만큼은 확실히 만든 것 같다.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야구는 어디서 하든 다 똑같다. 어디서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낯선 환경인데 스프링캠프 훈련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두산에서 했던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을 그대로 할 수 있도록 코칭스태프가 많이 배려를 해주셨다. 그래서 내 루틴대로 훈련을 하고 있다. 12월달부터 혼자서 준비했던 것들의 연장선상으로 진행되고, 무리 없이 잘 하고 있다.
-올 시즌 기대 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늘 시즌이 들어가기전에 두려움 반, 설렘 반인데 올해는 기대를 하셔도 좋을 것 같다(웃음)."
-두산에서도 고참이었지만 롯데에서도 고참이다. 분위기가 어떤가.
"롯데는 고참들이 많아서 더 편하다. 친구들도 많다. 두산에서는 (이)재우형 정도를 빼면 내가 최고참이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좀 외로웠다(웃음). 대화 상대도 별로 없고. 사실 후배들이 더 어렵다(웃음). 물론 여기에서도 지금 룸메이트가 김유영인데 94년생이라 22살이다. 나와 14살 차이다. 씁쓸하다."
-롯데에서 정재훈에게 거는 기대가 크더라.
"그러니까 말이다. 저도 처음에 와서 부담이 됐다. 인사를 드리러 부산에 내려가서 감독님, 단장님 등을 뵀는데 부담을 주시더라. 한낱 보상선수일 뿐인데. FA로 온 것도 아닌데(웃음). 편하게 잘 맞이해주셔서 저도 기대가 된다."
-이적하자마자 롯데 내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선수들이 그러더라. 여러가지로 좋아졌다고. 그래서 잘된 것 같다. 롯데의 불펜은 그동안 상대팀으로 봤을때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명만 잘 던진다고 해서 좋은 불펜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을 수록 그 체제가 오래갈 수 있다. 저도 그 좋은 불펜 무리에 낀다면 저에게도 플러스고, 팀에게도 플러스라고 생각한다. 다시 예전의 그 강한 롯데 자이언츠 불펜이 될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다."
-두산팬들이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래요? 시원해하는 것 같은데. 앓던 이가 빠졌다고 생각하시는것 아닌가(웃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오고나니까 아쉬운 것도 많다. 더 잘 할껄 싶다. 팬들 대하는 것도 그렇고."
-팬들에게 살갑지 않나.
"저는 팬이 별로 없다(웃음). 살갑게 해주고 싶어도 팬이 별로 없어서 티가 안난다. 나름대로 살갑게 한다고 했는데 아니었나보다. 팬을 많이 확보하는 것도 프로 선수의 역량인데 이것이 저의 역량인가."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갈망도 있을 것 같다.
"두산시절을 떠올려 봤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역시 우승에 대한 것이다. 준우승만 4번을 했고, 우승은 한번도 못했다. 아마 제가 최다 준우승자일 것 이다. 준우승만 할거면 차라리 4강에 안가는게 낫다. 내 현역 생활의 최고 목표는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제가 비중이 적어도 상관 없다. 아내도 '이제는 우승 반지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더라. 삼성이나 SK 선수들 참 부럽다(웃음). 우승 한번 해봤으면 하는게 목표다. 만약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다면 기자님과 다시 인터뷰를 할 때 우승 반지를 꼭 손가락에 끼고 하겠다(웃음)."
-개인 커리어에 대한 목표는.
"개인적인 욕심이 없어지더라. 그런데 어느새 499경기를 나갔더라. 롯데 구단에 굉장히 죄송하다. 두산에서 499경기 나오고 롯데에서 달랑 1경기 등판한 후에 축하를 받을 것 아닌가. 이를 어쩌지. 그것 외에는 최대한 많은 경기를 나가고 싶다. 그러다보면 세이브, 홀드 같은 기록도 따라오겠지."
-앞으로 응원해줄 롯데팬들에게도 한마디.
"작년에 팀 성적이 안좋아서 사직구장에 팬들이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바뀐게 많기 때문에 성적도 당연히 더 좋아질거라 믿는다. 팬분들도 많이 찾아와 주시길 바란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 = ⓒ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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