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댓스케이트 2014' 기자회견 중 데이비드 윌슨(왼쪽)이 김연아(오른쪽)에게 볼키스를 하고 있다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바늘의 실. 어느 한 쪽이 존재하지 않으면 바느질을 할 수 없다. 서로 뗄 수 없는 이들을 가리킬 때 비유된다.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48, 캐나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김연아는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 특별한 재능과 지독한 노력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에 정상급 스케이터로 우뚝 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김연아는 윌슨의 영향으로 최고의 표현력을 갖출 수 있었다. 습득이 빨랐던 김연아는 10대 초반 정상급 여자싱글 선수가 갖춰야할 기술을 모두 완성했다. 문제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반열에 오르는 점이다. 그저 '잘하는 선수'와 '기술과 예술을 모두 갖춘 선수'는 차원이 다르다.
국내 피겨 선수들의 약점 중 하나는 퍼포먼스다. 댄스 문화가 발달된 북미, 유럽과 비교해 한국 선수들은 표현력이 약하다. 비범한 천재였던 김연아도 노비스와 주니어 초기 시절 이 문제에 고민했다. 기술만큼 표현력의 중요성을 인지했던 김연아는 자신의 내제된 '끼'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캐나다를 대표하는 안무가인 윌슨을 만난다. 윌슨은 표정의 변화가 없고 스케이팅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김연아를 자극했다. 대회에 출전해 좋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스스로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도록 유도했다. 또한 유머를 발휘해 김연아를 자주 웃게 만들었다.
데이비드 윌슨(왼쪽)과 김연아(오른쪽)가 '올댓스케이트 2014' 공연을 마친 뒤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마침내 김연아의 표현력은 활짝 꽃피기 시작했다. 김연아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윌슨은 이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윌슨이 김연아를 위해 처음으로 만든 프로그램은 '종달새의 비상'이다. 한 마리 새가 빙판에서 날아가는 듯 묘사한 이 작품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다.
이후 김연아와 윌슨은 피겨 여자싱글의 판도를 바꾸는 걸작들을 발표한다. '종달새의 비상'부터 시작해 '박쥐' '미스 사이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8~2009시즌 작품인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로 세계선수권 정상에 등극한다.
윌슨은 김연아의 개성을 한 가지 틀에 맞추지 않았다. '죽음의 무도'를 통해 누구보다 강렬한 표현력을 끄집어냈다. '세헤라자데'와 '미스 사이공'에서는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조지 거쉰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로 기술과 표현력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줬다.
마지막 순간까지 '바늘과 실'이었던 두 사람
2010 밴쿠버 올림픽 이후에도 이들의 '찰떡궁합'은 계속 진행됐다. 2012~2013시즌 김연아와 윌슨은 '뱀파이어의 키스'와 '레미제라블'로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은퇴 무대인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는 현란한 탱고인 '아디오스 노니노'를 선보였다. 김연아는 왈츠(박쥐) 뮤지컬(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영화 캐릭터(제임스 본드 메들리, 뱀파이어의 키스) 그리고 탱고(아디오스 노니노) 등 다양한 영역을 모두 소화했다.
데이비드 윌슨(왼쪽)과 김연아(오른쪽)이 '올댓스케이트 2014'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김연아가 대단한 것은 기술적인 완성도와 역대 최고점(228.56) 보유를 넘어 '팔색조' 같은 다양한 연기를 펼쳤다는 점이다. 한 가지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변화를 이끈 윌슨의 전략은 주효했다.
이들은 은퇴 기념 아이스쇼인 '삼성 갤럭시★스마트에어컨 올댓스케이트 2014'에서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선택했다. 김연아는 이 프로그램을 3회 공연에서 모두 깨끗하게 소화했다.
마지막 3회 공연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애써 눈물을 꾹 참고 있던 김연아는 윌슨의 말 한마디에 눈물을 쏟았다. 윌슨은 "안무가로서 김연아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최고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연아의 은퇴 무대를 바라보면서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달콤했다. 사람이 겪는 인생의 한 부분 중 큰 고비를 지금 그녀가 지나고 있다"고 덧붙었다.
오랫동안 함께한 안무 스승의 말에 제자도 화답했다. 김연아는 "윌슨과 안무를 작업한지 7~8년이나 됐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올라갈 때 나의 레벨을 올려주셨다"며 "윌슨에게 받은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할 정도로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밝혔다.
김연아는 윌슨을 만나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넘어 '천의 얼굴을 가진 스케이터'가 됐다. 또한 윌슨도 김연아라는 걸출한 인재를 만났기 때문에 창작의 영감을 넓힐 수 있다.
이들은 여자싱글 최고점과 밴쿠버 올림픽 우승 그리고 세계선수권 2회 우승 등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할 부분은 여자싱글의 개념을 바꾼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는 점이다.
김연아(왼쪽)와 데이비드 윌슨(오른쪽)가 '올댓스케이트 2014' 커튼콜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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