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김형민 기자] 후반 29분 윤일록(FC서울)의 발을 떠난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순간 윤일록은 하늘을 바라봤다.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골이었다. 득점 후 윤일록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가르키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윤일록이 뜻 깊은 득점포를 터트렸다.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4라운드에서 후반 29분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을 기록해 서울의 2-0 완승을 이끌었다. 후반, 박희성 대신 투입된 윤일록은 팀의 리그 첫 승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폭넓은 움직임으로 제주 수비진을 휘저은 윤일록은 공격에 물꼬를 트는 활약으로 서울을 춤추게 했다.
이를 악물고 뛰던 그라운드였다. 경기 후 최용수 감독은 "지난주 (윤)일록이가 조부상을 당하셔서 좋은 곳에 내려가서 인사를 드리고 오라고 했었다"며 사연을 전하면서 "체력적으로 지쳐 있었는데 후반전에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경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윤일록은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지난주 금요일, 할아버지와의 사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곧바로 전남 나주로 내려간 윤일록은 장례식에 참여한 뒤 하루만에 팀에 복귀해 부산전을 앞둔 훈련에 참가했다.
할아버지와의 사이는 각별했다. 선수 생활로 인해 자주 보진 못했지만 늘 손자, 윤일록을 끔찍히 여기시던, 한 분뿐인 할아버지였다. 윤일록은 "할아버지께서 많이 챙겨주셨는데 축구를 하다보면 명절에 못내려가 마음에 걸렸었다. 이번에 내려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며 눈물을 꾹 참았다.
팀 복귀 후 마음은 무거웠다. 하지만 승리가 간절했던 팀을 생각해 슬픔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윤일록은 "저번 부산과의 경기 때 그런 일이 생겨 잠시 내려 갔다 왔었는데 감독님만 알고 계셨던 일이고 운동장에서 그런 내색을 안 보이려고 했다"면서 "골이 들어가자 우선은 힘들었던 팀에 골로 보답하는 느낌에 기뻤고 할아버지께서 큰 선물을 주신 거 같아서 더 기뻤던 거 같았다"며 목을 메었다.
김형민 기자 khm193@xportsnews.com
[사진=윤일록 (C) 엑스포츠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권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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