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0-0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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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현장의 '쪽대본', 무조건 욕만 할 수 없는 이유

기사입력 2014.01.30 23:19 / 기사수정 2014.01.30 23:19

김승현 기자


[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우리는 종종 드라마 촬영 도중 '쪽잠'을 자는 배우의 사진을 보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기사에서 '빡빡한 촬영 일정'이라는 문구를 접하곤 한다. 매회 촬영이 거듭되면서 배우들의 눈가 밑에는 다크서클이 자리 잡거나, 눈이 충혈되는 것을 보며, 극단적인 피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서 '쪽대본'은 이러한 급박함을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쪽대본은 시간에 쫓긴 작가가 촬영 직전에 급하게 내보낸 대본이다. 전반적으로 촉박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촬영 현장에서, 뜨끈뜨끈하게 전달되는 대본은 초조함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배우들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대본을 숙지할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욱 완성도 높은 연기를 펼치고 싶어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배우 또한 이에 동의하며 "연기할 때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쪽대본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동안 많은 배우들이 쪽대본의 문제점을 꼬집은 바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사전 제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개혁 수준으로 판을 엎는 물갈이가 없으면 사전 제작은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 드라마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쪽대본의 문제는 방송국 편성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한 드라마 PD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심혈을 기울여 대본을 미리 작성해 놓으면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 방송될 지 편성이 보장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대본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보통 4회분 정도만 먼저 집필한 다음 방송국에서 편성이 잡히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본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는 시기가 매우 촉박하기 때문에 촬영을 병행하면서 대본을 써 나갈 수 밖에 없다"며 쪽대본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했다. 

편성이 된 뒤에도 대본이 수정될 수 있다는 점도 쪽대본을 유도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다. 제시된 대본을 드라마 감독이 보며 작가와 조율을 거치고, 방송국 고유의 색깔이 입혀지며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또 캐스팅이 최종 확정된 뒤 배우가 가진 분위기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과 내용에 변화가 생긴다. 

사실 시청자들과의 피드백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 드라마 PD는 "한국 사람의 정서는 반응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는 제작진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대중의 여론은 무시할 수 없는 측면으로 자리 잡았다. 반응을 보면서 대본을 수정하고 캐릭터 변화를 꾀한다"라고 설명했다. 

드라마는 편성이 정해져야 본격적으로 제작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제작진은 짧게는 한 달, 아무리 길어도 석 달이라는 긴박한 시간 안에 캐스팅과 촬영지 선정을 마쳐야 한다. 이러다 보니 쪽대본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이 업계의 하소연이다. 결국 촬영 속도가 방송 날짜에 따라 잡히고, 작가들은 생방송 수준으로 글을 넘길 수밖에 없다. 극이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배우들은 현장에서 대본을 바로 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반대로 영화는 느긋하다. 영화는 첫 방송일을 공표하는 드라마와 다르게, 개봉 날짜를 정해 놓고 만들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써 놓고 투자사와 배급사가 정해지고 캐스팅이 확정되면 촬영에 임한다. 영화는 사전 준비, 촬영 작업, 후반 작업 등 최소 1년의 제작 기간을 가진다.                    

배우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연기 활동을 병행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드라마와 영화는 이렇게 전혀 다른 제작 환경을 지니고 있고, 이에 따라 배우들의 선호도도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한 영화 PD는 "충무로에서 주로 활동한 배우는 드라마의 생소한 작업 환경에 힘들어한다. 자신의 방식과 맞지 않아 꺼리는 것이다. 이는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도 마찬가지다"라며 두 영역에 함께 발을 담그는 것이 힘들다고 암시했다.

환경적인 제약과 시간에 쫓기는 제작 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은 쪽대본을 유도한다. 이순재와 박근형 등 원로배우들은 쪽대본의 단점과 사전제작의 절실함을 피력했지만, 이는 아직 '이상'일 뿐이다. 또 다른 드라마 PD는 "현재 시스템상으로는 쪽대본이 나온다고 무조건 욕부터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전 제작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편성을 여유롭게 하거나, 제작을 보장 해줘야 하는 등 방송국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사진 = 김지민(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 KBS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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