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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극적인 골' 승부조작 유령이 사라졌다

기사입력 2013.12.04 14:58 / 기사수정 2013.12.04 14:58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지하철 동영상 광고에 K리그가 걸려있다. 12월 1일에 있었던 울산 대 포항의 경기다. 포항의 막판 골 장면과 종료휘슬 장면, 그리고 포항의 골대 뒤에서 울산 진영을 잡은 카메라. 90+5분에 김원일의 골이 터질 때 울산 골대 뒤편 포항의 응원단이 일제히 솟구치듯 튕겨 일어나는 장관. 감회가 새롭다. 2년 전(2011년 5월30일) 소생이 모 신문에 기고했던 글이 생각나서다.

프로레슬링은 쇼다. 그래서 망했다. 누가 이 말을 했느냐는 중요치 않다.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느냐도 관심 밖이다. 핵심은 사람들이 프로레슬링을 스포츠가 아니라 쇼라고 믿게 됐다는 사실이다. 경기 때마다 TV 생중계에 암표상이 따라붙고 대통령 영부인이 장안동 어귀에 연습용 체육관을 차려주던 시절, 승자가 링 위에서 대통령의 축하전화를 받던 시절의 이야기는 그저 흘러간 꿈속의 일화일 따름이다. 1970~80년대 인기절정을 구가했던 프로복싱도 판정시비와 가짜 도전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철저히 몰락했다.

스포츠 세계에선 승부의 진정성이 사라지면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다. 조작과 우연, 연고주의나 외부압력 같은 불공정한 요소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믿음이 깨지면 팬들은 분노한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승부가 진짜배기가 아니고 야바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부터 대중은 더 이상 경기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프로축구 K리그가 시끄럽다. 불법도박과 얽힌 승부조작 때문이다. 폭력조직에 매수된 선수들이 서로 짜고 경기를 했다는 의혹은 이제 선수들 스스로가 돈을 걸고 내기를 했다는 지점까지 번졌다. 현역선수만 범죄에 가담한 것도 아니다. 한 번만 도와달라며, 같이 잘 살 수 있다며 은퇴한 선수들이 후배들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구단들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몇 년 전부터 승부조작 징후를 감지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으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연루자를 조용히 은퇴시키고 외국에 이적시키는 등 소문내지 않고 문제를 덮을 생각만 했다.

한국 축구는 지금 사면초가(四面楚歌)다. 무엇보다 대체재와의 경쟁이 용이하지 않다. 프로야구는 금년 들어 평일경기 매진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매진'은 경기의 상품적 가치가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음을 알리는 지표다. 창원·대구·광주에 현대식 야구장이 신축되어 관람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축구와 야구의 간격이 더 벌어질지 모른다. 축구가 주요 인기종목에서 밀려나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유럽 각국의 축구리그도 K리그의 경쟁자다. 현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아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정한 승부'를 갈망하는 축구팬들은 언제라도 충성의 대상을 바꿀 수 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다. 승부조작 관련자를 최후의 한 사람까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단호한 대처를 통해 걸렸을 때 감수해야 하는 위험부담의 크기를 극대화해야 한다. 불법행위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로 만들면 검은손의 유혹과 잘못된 온정주의가 발붙일 공간이 사라질 것이다. 부상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고 30대 초반이면 현역생활을 접어야 하는 직업적 속성이 선수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이것이 승부조작의 원인이라는 동정론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모든 종사자들의 고용안정을 평생 보장하는 직업은 없다. 축구라고 예외는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통산최다안타 1위(4256개), 최다출장 1위(3562경기)의 영웅 피트 로즈가 감독 시절 자기 팀이 지는 쪽에다 돈을 걸고 도박을 하자 야구계에서 영구추방했다. 이 정도의 단호함으로 칼날을 갈아 완벽하게 도려내지 않으면 암세포는 다시 살아나 조만간 한국 축구판 전체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한국 축구는 지금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 



그 때는 한국축구계에 ‘승부조작’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었다.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관여했는지 몰라 모두가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사태를 주시했다. 자칫하다간, 축구판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퍼져나갔다. 그런데 2013년...두 경기를 남기고 선두는 22승 7무 5패 승점 73점의 울산. 2위는 19승 11무 6패 승점 68점의 포항. 11월 27일 포항은 원정경기에서 서울을 3-1로 물리쳤고 울산은 부산 원정경기를 1-2로 역전패했다. 특히 89분에 파그너에게 허용한 마지막 골이 아쉬웠다. 부산은 어차피 5위 아니면 6위. 3위 팀에게 까지만 주어지는 ACL 출전권도 물 건너간 상태였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우승향방을 안개판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울산의 연패와 포항의 막판 2연승이면 우승컵의 임자가 바뀔 수도 있다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현실’로 마주하고 맞선 최종전. 역시 종료 직전의 골로 승부가 갈렸다. 이제, 한국축구를 두고 ‘승부조작’을 운운하는 사람은 없다.

顔淵問仁 子曰克己復禮爲仁(안연문인 자왈극기복례위인)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爲仁由己 而由人乎哉:위인유기 이유인호재) 顔淵曰 聽問其目(안연왈 청문기목)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자왈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12/1

해석) 안연(顔淵)이 인에 대하여 묻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이겨내고 예를 되찾는 것이 어짊을 도모하는 것이다. 어느 하루 자신을 이겨내고 예를 되찾는다면 천하가 어짊에 돌아올 것이다. 어짊을 도모하는 것이 자기에게서 비롯되지 남에게서 비롯되겠느냐?”
안연이 말했다.

“그 세목을 묻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에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라.”

중요한 점은, 축구계가 외부의 도움이나 강제력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힘으로, ‘승부조작’이라는 괴물을 사냥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징계나 처벌, 제명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정정당당한 승부와 극적인 골을 통해. 본질적 요소로 암적인 존재를 다스렸으니, 유령과 괴물은 이제 두 번 다시 한국축구계에 출몰하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12월 4일 상주, 7일 강원의 홈경기장에서 벌어지는, K리그 클래식 잔류냐 승격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또 하나의 ‘외나무다리 혈투’가 축구팬들을 기다린다. 축구가 있어서 행복한 겨울이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포항-울산전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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