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1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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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중국축구의 한 맺힌 역사‏

기사입력 2013.10.28 14:06 / 기사수정 2013.10.28 14:07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중국의 공세가 무섭다. 26일에 있었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 얘기다. 중국 선수단에세서도, 기자들에게서도 그리고 응원단에게서도 공통적으로 풍겨나오던, 마치 이 한 경기로 한(恨)풀이를 하고 말겠다는 결연한 기운.

다른 종목에서는 세계 정상급의 경기력을 자랑하는 중국이 유독 축구에서만은 힘을 쓰지 못한다. 광적인 축구팬으로 알려진 시진핑 국가주석의 평생소원 세 가지가 중국이 월드컵을 개최하고, 월드컵에 출전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축구를 사랑하기는 중국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소망만큼 대표팀의 경기력이 출중하지 못하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3차예선 B조에서 중국은 3승3패를 기록하며 이라크와 요르단에 밀려 최종예선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여름엔 홈으로 태국을 불러들인 친선경기에서 1-5로 대패해서 국가적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중국 축구도 중흥과 도약의 기회가 확실하게 있었다. 약간의 운이 따라 주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결정적 순간. 중국의 월드컵 지역예선 데뷔는 1958년 스웨덴 대회다. 1957년 5월 12일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에 0-2패. 6월 2일 베이징에서 4-3 승리. 당시 룰에 따라 6월 23일 버마의 랑군에서 재대결을 펼쳤고 결과는 0-0. 규정에 따라 골득실차를 적용한 끝에 지역예선 탈락. 대만은 꾸준히 지역예선에 출전했지만, 중국이 월드컵에 돌아온 건 한참 후의 일이다. 문화대혁명의 광기(狂氣)와 기타 여러 사정이 겹쳐 국제무대를 떠났다가 모처럼 출전한 1982년 스페인 대회 예선. 본선 진출국 숫자가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불었고, FIFA는 아시아/오세아니아에 사상 처음으로 두 장의 본선티켓을 배정했다. 한국은 쿠웨이트에 밀려 1차예선 탈락. 총 6개국이 홍콩에 모여 80년 12월 21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보름 동안 다섯 경기를 펼치는 강행군 끝에 가려진 아시아 4조의 최종 승자는 중국. 준결승 홍콩과의 0-0 무승부 후 승부차기 승을 빼면 중국은 나머지 네 경기를 모두 이겼다. 일본은 준결승에서 북한에 0-1로 졌고 중국은 최종전에서 북한을 4-2로 물리쳤다.

쿠웨이트, 뉴질랜드,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4개국이 홈앤드어웨이로 맞붙은 최종예선. 중국은 81년 9월 24일 24년 만에 다시 열린 베이징 홈경기에서 뉴질랜드와 0-0으로 비긴다. 10월 3일 뉴질랜드와의 어웨이 경기는 0-1 패. 10월 18일 베이징에서 쿠웨이트를 3-0으로 잡고 외교문제로 제3국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에서 사우디와 벌인 2연전(11월 12/19)을 4-2, 2-0으로 모두 승리. 중국 전역이 월드컵의 꿈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11월 30일 쿠웨이트 원정경기를 0-1로 내주고 전 일정을 소화한 중국의 성적은 3승1무2패, 승점 7점(당시는 승점이 승리 2점, 무승부 1점이던 시절이다), 9득점 4실점. 3승1패의 쿠웨이트가 2위, 1승2무1패의 뉴질랜드가 3위. 사우디는 1무3패로 탈락 확정. 12월 7일 쿠웨이트가 사우디를 2-0으로 꺾고 14일 뉴질랜드와 2-2로 비기며 본선행 티켓을 확보했다. 12월 19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벌어진 사우디 대 뉴질랜드 와의 최종전에서 뉴질랜드가 다섯골을 몰아치며 2승3무1패, 11득점 6실점으로 중국과 승점 득실차 동률을 기록. 다득점 원칙이 적용되기 전이어서  FIFA는 두 팀에게 82년 1월 10일 싱가폴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르라고 명한다. 이 경기는 82년 지역예선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열린 경기다. 어느 팀이 이기든 월드컵 첫 출전의 설렘을 담은 일전. 불과 엿새 후가 본선 조편성 추첨일이었다. 중국은 졌다. 잉글랜드에서 뛰던 윈턴 루돌프(Wynton Rufer)에게 결승골릉 얻어맞고, 종료 직전 프리킥으로 한 골을 만회했다. 골을 넣고 거의 전원이 뉴질랜드 골문 쪽으로 뛰어가 얼른 공을 집어다 센터서클로 가져다 놓던 간절한 동작이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전설의 승부.



요즘처럼 승리를 3점으로 계산했다면, 담합경기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려는 목적에서 같은 조 마지막 두 경기를 동시에 킥오프했더라면 중국의 월드컵 데뷔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아니라 82년 스페인 월드컵이 될 수도 있었다. 한 팀이 일정을 모두 마쳤는데, 다른 세 팀이 각각 두 경기를 남겨논 불합리한 일정의 피해자. 그 때 중국의 경기복은 붉은색 상의, 흰색 하의였다. 86년 대회 때는 23득점 2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도 1985년 5월 19일 홍콩과의 마지막 홈경기를 1-2로 역전패하며 4승1무1패로 5승1무의 홍콩에 밀려 1차 예선에서 탈락했고, 90년엔 이란을 잡고 최종예선까지 진출했지만 6개국 가운데 4위로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2002년 한국과 일본이 빠진 지역예선을 통과, 드디어 월드컵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터키(0-3) 브라질(0-4) 코스타리카(0-3)에 3연패하며 쓸쓸이 귀국. 그 이후로 중국축구는 프로축구를 창설했는데도 최종예선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하는 역설적 결과를 보여주며 장기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논어에 나온다.

자왈(子曰)인능홍도 (人能弘道)요 비도홍인 (非道弘人)."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축구계의 전반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는 다음 칼럼에서 논하기로 하고 다시 AFC 결승전으로 돌아가 보자. 중국축구는 습관화된 패배감과 선수들의 안주(安住)에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그것은 다소 구조적인 문제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클럽 축구다. 엄청난 거금을 들여 탈아시아급 선수들을 수입하고 당장 눈앞에서 성적을 내는 방식. 비록 대표팀은 아니지만, 클럽 대항전에서라도 성적을 내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 대표팀은 물론이고, 중국 클럽팀도 아직껏 아시아 정상에 올라본 일이 없다. 그래서 이번 결승전을 두고 한풀이의 열망이 간절한 것이다. 중국 챔피언인 광저우 에버그란데는 중국리그 매 경기 승리 수당이 1인당 5,000만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구단이 내건 결승전 승리수당이 선수당 1억원을 넘어선다는 소문도 있다. 전 세계의 도박사들이 FC서울의 열세를 예측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돈’이 강력한 동기유발책인 것은 맞다. 하지만, 축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능히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란다. 11월에 열릴 결승전 어웨이 경기, FC 서울이 보여줄 수 있었으면. 축구에는, 돈만으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FC서울과 광저우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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